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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가 탈출했던 소동도 어느덧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 겐이치로는 황자와 함께 아시나 성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 처참한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기 위해.

소규모로 침입한 내부군과 그 닌자들이 벌이는 국지전에 수많은 병사와 무고한 농민들이 죽어나갔다. 자식의, 동료의, 부모의 시체를 땅에 묻을 힘도 없어 화장하는 비참한 모습. 병들고 다쳐서 신음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래도, 이렇게 해도 용윤의 힘을 주지 않을텐가.

용윤의 힘만 있다면 이들이 이토록 고통받지 않아도 될 것일진데!


…그럼에도 황자는 겐이치로에게 협조해주지 않았다.

무엇인가 그를 찾아와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이라도 품고 있는 것인지 매번 겐이치로의 제안을 거절했다.

단지, 용윤의 힘이 세상을 해칠 것이라는 말 뿐이었다.


겐이치로에게 세상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이 변방의 작은 나라, 아시나를 지킬 힘이 필요할 뿐.


시간이 없었다. 내부의 쥐새끼들이 자꾸만 성내로 들어와 잇신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아시나 성문은 오니 교부가 지키고 있지만 전면전이 시작된다면 오니 교부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리라.

오늘조차 그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결국 무력을 쓸 수 밖에 없는겐가.'


성인도 채 되지 않은 황자를 폭력으로 굴복시킬 수야 없는 일이다.

원래라면.

어차피 죽일 수도 없지만 불사자라고 해서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겐이치로는 아시나를 위해 무엇이건, 심지어 그의 목숨조차 바칠 각오를 마쳤다. 어떤 더러운 짓이라도 해내고야 말 것이다.


겐이치로는 황자와 함께 천수각 상층에 올랐다.

아시나 성내 전역이 내려다보이는 곳. 본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다과를 먹는 장소지만 오늘이야말로 황자에게 강권(强勸)하기 위해 그를 데려왔다.


약사 에마로부터 그의 조부, 잇신의 몸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숨이 붙어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없었다.

겐이치로는 그의 검을 검집 채로 풀러 황자에게 들이밀었다.


"계승자여, 다시 한 번 말하지. 불사의 계약을 나와 맺으시게."


"아니되오, 겐이치로 공."


또다시 거절.

단순히 어린 소년의 치기 따위가 아니었다. 황자, 쿠로의 눈에는 어떤 열망이 깃들어 있었다.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건가.


"설령 패배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주군을 되찾아오는 것… 그것이 내 닌자이니."


쿠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수각 처마 끝에서부터 그림자가 뛰어오른다.

…그 닌자였다.


분명 왼팔을 베어내 죽을 정도의 상처를 입혔을 터인데.

아니, 애초에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용윤'이다.


계약자에게 불사의 힘을 부여하는 강력한 축복. 황자가 믿고 있었던 구석이 이것이었나.

자신의 권유는 줄기차게 거절했으면서 언제 닌자와 계약을 맺었단 말인가.

아니, 지금 당장 중요한건 그런 사실 따위가 아니었다.


한 번 베어낸 적.

그러나 베어냈던 왼팔은 어디선가 본듯한 금속제 장치로 대신했고, 얼마나 많은 수라장과 고난을 겪은 것인지 행색은 너덜너덜했다.

그러나 저 눈빛. 마치 먹이를 노리는 늑대와도 같은 흉흉한 눈빛은 마치 불타오르는 것처럼 겐이치로의 시선과 엮인다. 어딘가 불안정해보였던 자세도 이전과 비교하면 훌륭하게 중심이 잡혀있었다.


"모시러 왔습니다. 지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닌자는 검을 뽑았다. 그 모습은 닌자라기보단 무사에 가까웠다.

무사 흉내라. 같잖다.


"네놈을 죽여 없애지 않는 한, 용윤을 내 손에 넣을 수는 없단 말이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벼락같이 화살이 날아갔다. 정통 아시나류 검술과 다른, 겐이치로의 검술이 가진 최대의 특징. 그 구성과 연계가 극히 자유롭고 변칙적이다.


불시에 쏘아낸 화살이었지만 닌자는 머리를 터는 것으로 여유롭게 피해낸다. 피한 화살 뒤로 극히 짧은 틈을 두고 속사한 두 번째의 화살이 몸통을 노리고 날아든다.

일명 '그림자 화살'

각기 다른 표적을 향해 거의 동시에 두 발을 쏘아내는 극에 다다른 궁술. 겐이치로는 '검사'로써도 '궁사'로써도 이름 높은 무사였다.


캉!

처음 보는 기술일진데 용캐도 반응해서 막아낸다. 

그러나 잠깐 눈을 돌린 그 사이, 이미 겐이치로는 활을 등에 메고 검 손잡이를 붙잡은 채 한 걸음 앞까지 도달했다.


고속 발도술.

여기까지가 겐이치로 필살의 연계. 사전에 알고 있지 않다면 반드시 당할 수 밖에 없는…


'막혔다?'


이전의 닌자였다면 방금의 공격으로 승부가 났을 터. 그러나 무시무시한 반응속도로 겐이치로의 검을 튕겨냈다. 둘 모두 팔이 올라간 상태지만 균형이 흐트러진 겐이치로에 비해 닌자는 굳건하게 두 다리로 중심을 잡고 있었다. 이제는 닌자의 차례.


한 걸음 전진하여 진각을 밟는다. 내딛은 발에 실린 체중이 단련된 체간을 타고 어깨를 넘어 양손으로 굳게 잡은 칼 한 자루에 집중된다.


천수각에 내려앉은 먼지가 솟구칠 정도로 강렬한 일격. 마치 도끼로 내려찍은 듯한 충격에 손아귀가 얼얼해진 겐이치로가 소리질렀다.


"감히 조부님의 기술로 이 나를 공격하는게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수천, 수만의 검을 휘둘렀던 겐이치로니까. 아시나류 '일문자'.

아직도 손끝을 울리는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닌자의 일문자, 하루이틀로 쌓은 숙련도가 아니었다. 대체 어느 틈에 일문자를 배워 이 정도 경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걸까.


닌자는 날카로운 찌르기로 대답해왔다. 막고, 베고, 찌르고, 피하길 수차례. 순식간에 눈을 어지럽히는 공방이 오가며 공기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놀랍게도 닌자는 그 겐이치로를 상대로 한 치도 밀리지 않고 호각지세의 공방을 펼치고 있었다. 놀라운 실력의 발전이었다. 하지만 둘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으니-


체급의 차이.

실력이 비등하다면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다름아닌 '체급'. 소년기부턴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 무사들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큰 겐이치로에 비해, 닌자의 체구는 간신히 평균에 미치는 수준. 검에 실리는 힘이 다르고, 검을 받아내는 무게가 달랐다.

아시나류 특유의 보법인 '유수(流水)'로 버텨내고 있었지만 한계는 역력했다. 힘에 부쳐서 조금씩, 조금씩 뒤로 밀려나는 것이다.


별안간 겐이치로가 훌쩍 뛰어올라 검을 내려찍는다. 일종의, 일문자의 응용.

캉!

불꽃과 함께 서로의 검이 튕겨나간다. 하지만 아주 잠깐, 닌자의 중심이 흔들린 것을 겐이치로는 놓치지 않았다.


"타앗!"


급가속 직후의 급감속으로 체중을 싣는 강렬한 찌르기. 일문자가 '때려 베는' 느낌이라면, 이 찌르기는 '눌러 찍는' 느낌이 강하다. 막아도 방어 째로 날려버리는 일격.


균형을 잃은 뒤의 공격은 언제나 통한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흩날리며 닌자가 뒤로 날아갔다.


손에 걸리는 감촉이 있었다. 닌자는 일어서려는 듯 잠시 꿈틀거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죽음.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다.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그리운 벚꽃내음과 함께 닌자가 일어섰다. 가슴팍에 난 칼자국이 순식간에 메꿔지는 것이 보인다. 상처가 낫는 순간, 지체없이 달려든다.


"용윤의 힘인가. 그렇다면 몇 번이고 죽여주겠다!"


칼과 칼을 맞대며 겐이치로는 깨달았다. 어째서 이 짧은 시간 안에 닌자가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는지. 수없이 죽음을 반복해오며 남들과 비교도 안 되는 업을 쌓아올린 것이다.

불사라고 해서 통증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상처가 아물면서 동반되는 끔찍한 격통은 자연히 두려움을 만든다. 아프지 않을리가 없다. 이건 이미 광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닌자는 죽음을 뛰어넘어, 다시 한 번 검을 쥔다.


'그야말로 내가 원하는 무적의 병사가 아닌가!'


비록 적이지만 저 닌자야말로 겐이치로가 꿈에 그리던 모습이 아닌가. 계승자가 아니라 닌자부터 회유해야 하나? 아니면 정말 놈이 포기할 때까지 죽이고 또 죽여야하나?

생각이 많아지며 검끝이 무뎌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금껏 감춰두었던 닌자 의수의 장치들이 뻗쳐나온다.


별안간 바닥에서 벽이 솟아나 겐이치로의 검을 막아세웠다.

장치 우산.

마치 이슬을 튕겨내듯, 강철의 우산이 공격을 살짝 밀어낸다. 그와 동시에 나타났을 때처럼 갑작스럽게 우산이 접혀 들어간다. 


시야를 가린 채 던진 붉은 덩어리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심지에 불이 붙은 그것들이 닌자와 겐이치로 사이를 가득 매웠다.

남만 폭죽.

살상력은 없지만 폭음과 섬광이 정신을 현혹한다. 겐이치로는 급하게 소매로 눈을 가렸다.


순간적인 시선 교란. 아주 잠깐, 겐이치로가 닌자를 놓친 사이 그는 이미 공중에 떠있었다.

닌자가 손가락을 꺾음과 동시에 전완 부위에 장착된 기계 장치 통이 돌아간다. 손목을 축으로 회전하며 나오는 도끼를 낚아채듯 잡고는 통나무를 쪼개는 것처럼 내려찍는다.

닌자 도끼.

무거운 흑철로 만든 도끼와 맞부딪히자 겐이치로의 검이 부러질듯이 휜다. 정직하게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흘리거나 피해야만 했다.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겐이치로가 한 쪽 무릎을 땅에 꿇고야 만다. 체간이 완전히 무너진 틈을 타, 닌자가 그의 등을 원숭이처럼 타넘는다. 

무사의 정면은 갑옷의 성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주요 부위들은 전부 튼튼한 철갑으로 가려져 있고 비어있는 틈을 노리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하지만 배후는 다르다.

이는 자세가 무너진 무사를 확실하게 잡아내기 위한 기술. 왼팔로 겐이치로의 목을 휘감아 고정한 뒤, 등의 급소에 확실하게 칼을 박아넣는다.


격통에 겐이치로의 목에서 피끓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여기서 검을 비틀면 확실한 마무리. 손잡이를 꺾기 직전, 거센 몸부림에 닌자가 튕겨나간다.


"크허헉…!"


이미 승부는 난 것과 마찬가지. 겐이치로는 칼에 몸을 지탱하고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치명상을 입었을텐데, 그의 눈빛은 투지를 잃지 않고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훌륭하다… 계승자의 닌자여. 다른 주인을 섬길 생각은 없는가."


검술로는 근소하게 겐이치로가 위. 하지만 죽음을 거듭하여 단련한 전투 감각은 더없이 훌륭하다. 자신을 이 정도까지 궁지에 몰리게 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 정도 실력자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편으로 영입할 의향이 있었다.


"헛소리를."

"…헛소리라고?"


매몰찬 거절에 겐이치로의 속에서 열불이 끓어오른다. 헛소리라.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버렸는지, 무엇을 해왔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그저 운이 좋아 계승자를 만나, 자신의 것이어야했던 불사의 힘을 탈취한 주제에.


심장이 뜨거워질수록 머리는 차가워진다. 겐이치로는 담담한 손길로 자신의 갑옷을 풀어해쳤다. 한 겹, 한 겹 벗을 때마다 갑옷으로 감춰놨던 상처가 하나둘씩 드러난다. 내부의 닌자와 싸우다 암기에 입은 상처, 대련 도중 실수로 입은 상처, 심지어는 아군 오사로 인해 입은 상처까지. 하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검게 타버린 양 팔이었다. 피부가 시커멓게 그을린 그의 양 팔은 검을 쥘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거지?'


산전수전 다 겪은 닌자조차 놀랄 정도로 엉망인 상태. 평범한 인간이라면 저렇게 상처를 입기 전에 진작에 절명했으리라.


쿠르릉-

천둥 소리가 닌자의 생각을 끊어낸다. 어찌된 일인지 방금까지만 해도 잔잔하게 노을이 내리던 하늘에 먹구름과 안개가 잔뜩 끼기 시작했다.


"나는… 아시나를 지킬 수 있다면, 어떤 이단의 힘이라도 따를 것이다."


닌자와 겐이치로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마치 상처 입은 짐승처럼, 겐이치로의 온 몸에서 뿜어진 살기가 천수각을 가득 메운다.


"흐아아아압-!!"


번개가 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겐이치로가 날듯이 뛰어든다. 무거운 갑옷을 벗은 지금, 그의 놀라운 도약력은 마치 한 필의 화살이 된 것처럼 스스로를 쏘아보낸다.

분명 빠르긴 하지만… 너무 직선적이다.


인법, 간파하기.

빨려들듯이, 닌자의 발 옆굽을 따라 겐이치로의 검이 바닥을 향한다. 예리한 칼날은 누구라도 두렵다. 당하면 곧 죽음. 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낸다면 단숨에 적을 죽일 수 있다.


체중을 실어 밟았음에도 겐이치로의 힘에 곧 뿌리쳐진다. 하지만 이미 무너진 중심을 회복하기 위해선 잠깐의 틈이 필요하다. 닌자에겐 차고 남는 시간이다.


드러난 몸통을 향해 쇄골베기. 맨 몸이라면 대각선으로 양단할 정도의 위력이지만, 겐이치로는 어떻게든 흘려보낸다. 대신 한 줄기 붉은 선이 그의 몸에 아로새겨진다.


피를 흘리며 뒤로 물러선 겐이치로가 다시 한 번 뛰어올랐다. 닌자에게가 아닌, 공중으로.


"토모에의 번개를 보여주마!"


번쩍-

밖에서 넘실거리는 구름으로부터 한 줄기 낙뢰가 겐이치로를 강타한다. 낙뢰는 곧 그의 검으로 빨려들어가 검신을 따라 한 자루 검을 형상을 갖추었다.

토모에류, 쿠사나기의 검


"오오오오-!!"


격통에 몸부림친다. 이미 타버린 팔의 껍질이 터지며 진물이 흘러나오다 압도적인 전류에 증발해버린다. 한낱 인간이 자연의 힘을 다루려 한 결과가 이꼴이다. 하지만 그 위력은 말 그대로 압도적.

뇌격이 스스로의 몸을 먼저 태우기 전에 억지로 몸을 움직여 검으로 정렬한 벼락을 내려친다.


조준이 빗나간 것인지, 한 끝 차이로 닌자의 코 앞을 지나쳐 천수각의 바닥이 폭발한다.

단순한 폭발만으로도 사람을 날려보내는 것에는 충분하다. 미처 반응하지 못했던 닌자가 폭발에 휘말려 뒹굴었다.


이건 이미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뇌격은 곧 대재앙이었고, 자연에서 비롯된 압도적인 폭력이었다. 

무시무시한 위력. 그럼에도 그 사정거리에 들지만 않는다면 피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닌자는 급하게 거리를 벌렸다.

그를 보며 거친 숨을 내쉬던 겐이치로가 이번에는 등에 메고 있던 대궁을 꺼내들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의 팔에 남은 상흔처럼 대궁에 새겨진 뇌격의 검은 흔적이.


'설마'


토모에류, 타케미카즈치의 화살.

급히 공중제비를 넘어 벼락을 품은 화살을 피해낸다. 스쳐지나갔음에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근육이 저리다. 빗나간 화살은 천수각 바닥을 박살내버리며 폭발했다.


아시나를 지키려는 결사의 의지인가, 아니면 뇌격에 동반된 격통으로 인한 광기인가.

비명을 지르면서도 겐이치로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중근거리에서는 공간을 덮어버리는 쿠사나기의 검. 원거리에서는 놀라운 정확도의 타케미카즈치의 화살. 그야말로 빈틈이 없었다.

간신히 몸을 피하고 있었지만 닌자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다. 차츰 발이 느려지면서 조금씩 더 가깝게, 뇌격이 그의 주변을 날카롭게 베어낸다.

불사의 힘을 이용해 억지로 밀고 들어간다? 공격을 받는 순간 온 몸 근육이 굳어 불타버릴 것이다. 그런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다 회생의 힘도 마냥 남용할 수 있는 힘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공격할 때마다 공중으로 뛰는 것이지?'


굳이 뛰어오를 필요가 있는 것인가. 계속 도약하다보면 체력 소모는 물론이고 공격 사이의 간격도 길어지기 마련인데.


'아니면… 뛸 수 밖에 없다?'


그제야 머리 속에서 정보들이 맞물려들어간다. 아시나 수련의 장에서 봤던 낡은 족자.

깨달음이 뇌리를 스친다. 닌자는 옆으로 뛰는 것을 멈추고 곧장 겐이치로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번쩍-

또 한 번의 뇌격이 겐이치로의 검에서 쏟아져내려온다. 모든 것을 먼지로 돌려버릴 그 공격에 닌자는 정면으로 도약했다. 이미 피로에 절은 허벅지 근육이 한계를 뛰어넘어 바닥을 박차고 그의 몸을 하늘로 날려보낸다.



과거 아시나에 괴물이 나타났다.


괴물의 번개는 기원의 신울림.

신과 같은 움직임 없이는 물리칠 수 없다.


즉,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번개를 되돌려라.



이 기술이야말로… 번개 되돌리기. 즉, 뇌반(雷返).


"크오오오오-!!!"


굉음, 섬광과 함께 숯처럼 타버린 사람이 연기를 내뿜으며 뒤로 넘어갔다. 그 자리에 홀로 서있는 것은…



겐이치로였다.


뇌반을 위해 뛰어오른 그 순간, 폭풍같은 전류가 닌자의 몸을 내달리며 사지를 굳혔다. 그대로 추락해 지면과 만나는 순간 숯이 되어버렸다.


쓰러지는 닌자를 보면서도 겐이치로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분명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의 예상처럼, 닌자는 일어섰다. 죽음을 딛고 다시 한 걸음 전진한다.


'방금은… 반 호흡 정도 늦었다. 이번엔 늦지 않는다.'


다시금 달려드는 닌자를 보며 겐이치로는 생각한다.


'토모에의 번개의 약점을 파악한건가? 아니면 단순한 우연?'


생각할 시간은 없다. 지금은 그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

이번에도 높게 도약한다. 닌자도 그를 따라서 뛰어오른다.

뇌반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뛰어오른 닌자에게 칼이 떨어져내린다.


수싸움.

공중으로 뛰었다고 한들, 반드시 뇌격이라곤 할 수 없었다. 겐이치로는 닌자가 자신을 따라 도약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판을 짰다.

간신히 막아내고 땅에 발이 닫는 순간, 맹렬한 하단회전베기가 허벅지를 노리고 날아든다. 막기엔 애매한 각도.

높이 뛰어 공격을 피한다.


다음 순간, 닌자는 보았다. 겐이치로가 공중에서 뇌격을 발하는 모습을.


'믿고 있었다. 반드시 도약할 것이라고.'


하단회전베기는 미끼였다. 

닌자에게 도약을 강제한 다음, 지체없이 뛰어올라 뇌격을 준비한다. 그리고 하강하는 순간에 맞춰 공격을 맞춘다. 공중에서 두 번 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분명 그럴 터였다.


겐이치로는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딛고 닌자가 공중에서 다시 도약하는 모습을.

아니, 겐이치로가 본 것은 천수각 천장에 걸린 갈고리와 연결된 쇠줄이 닌자를 당겨올리는 모습이었다.


'믿고 있었다. 반드시 뇌격을 가할 것이라고.'


닌자는 공중에서 뇌격을 받아냈다. 몸 전체로 퍼져나가려던 전류가 마법처럼 그의 검에 빨려들어가며 번개의 검신을 만들어냈다.

뇌신의 검을 든 남자.


순간 겐이치로의 눈에 닌자와 그 옛날 잇신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토모에라면… 토모에라면 어땠을까.

토모에였다면 이 상황을 해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겐이치로는 토모에가 아니었고, 타계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때는 오고야 만다.


"크오오옷-!"


강렬한 전기 충격이 그의 온 몸을 관통하며 구워버린다. 기합으로 많은 전류를 지면에 흘렸지만 그럼에도 피해는 심대.


쉴 틈을 주지 않고 닌자가 달려든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을 들어 검을 맞댄다.

처절한 힘싸움.


동시에 자세가 무너지며 검이 튕겨나와 몸통이 열린다.

동시에 자세를 가다듬고 검끝을 상대에게 향한다.


'검이… 길다…'


승부를 가른 것은 단 한 걸음의 차이.

자세를 잡을 때 닌자는 앞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그 결과, 닌자는 겐이치로의 검끝보다 안쪽으로 파고들게 된 것이다.


피와 함께 닌자의 검끝이 겐이치로의 배를 관통하고는 옆구리로 빠져나온다.

울컥.

내장을 쏟아내며 겐이치로가 무너졌다. 생명이 꺼져가는 그에게서 비통함이 쏟아진다.


"아시…나…"


몇 번의 꿈틀거림 끝에, 완전히 움직임을 멎었다.

비참한 최후.


끝인가.


아니, 끝이 아니다!


두근.

괴이한 힘이 심장을 되살린다.


마치 실에 묶인 꼭두각시처럼 기괴한 자세로 일어서더니 몸에 튀어나왔던 내장이 다시 들어간다. 마치 시간이 되돌아가는 듯한 장면.


그걸 지켜보는 닌자에겐 굉장히 익숙한 장면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용윤의 힘으로 죽음을 극복할 때 모습과 같다.

아니, 조금 다르다.

용윤에 의한 부활이 보는 사람에게 황홀감과 우아함을 느끼게 한다면, 겐이치로의 그것은 불길함과 공포심을 느끼게 한다.


저것은 용윤이 아니다.


"겐이치로 공, 혹시 변약수를…"


싸움 직전, 계승자를 데리고 피신했던 에마가 어느새 다시 돌아와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겐이치로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퍼진다.

어렸을 때는 같이 다과를 먹으며 잡담을 나누던 사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길이 갈려 서먹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 아마도 겐이치로가 힘에 집착했을 때부터 그리 되었으리라.


변약수는 그가 추구했던 힘의 길목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용윤이 가진 불사의 힘을 모방하기 위한 특수한 약물. 그것을 연구하는데 너무나도 많은 인명이 죽어나가 '공식적으로' 그 계획은 폐기한지 오래였다.


공식적으로는.

아시나 성 지하감옥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비밀스러운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고, 그 후원자가 바로 아시나 겐이치로였다. 그리고 그 연구의 결과물… 변약수 중에서도 가장 귀하고 강한 '앙금'을 먹었다.


그렇게 '유사 불사자'를 만들어냈다.

물론 언젠가는 들킬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행한 더러운 짓들을 이런 방식으로 에마가 알게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아시나는, 이 나라는 내 모든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나는…"


부활과 재생의 고통 속에서 그는 느꼈다. 그 또한 순리에서 벗어나고 만 존재라고.

겐이치로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광기와 함께 쏟아져나왔다.


"인간을 포기하겠다."


그 흉흉한 모습에 닌자가 검을 빼들고 자세를 잡았다.

겐이치로는 휘청거리면서도 씁슬하게 미소지었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칼을 맞댈 수도 있다. 하지만 불사자 두 명이 싸워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흘 밤낮… 아니, 아시나가 멸망할 때까지도 승부를 낼 수 없으리라.


아직은 승부를 낼 때가 아니었다.

겐이치로는 알고 있었다. 불사조차 죽일 수 있는 신기의 존재를.

그걸 찾을 때까지는… 잠시 이별이었다.


"잘 있거라…!"


겐이치로는 천수각 난간을 타넘었다. 닌자도 굳이 쫒지는 않았다.

오늘의 싸움은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완전한 불사의 힘을 갖기 위한 겐이치로의 여정은 이제야 중반에 도달했다.





















열심히 쓴데수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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