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묘소》 - 재의 심판자, 군다



 
  댕- 댕- 댕-


  잿빛 하늘에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이내 종소리는 새벽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가라앉았다. 그 종소리는 불사자들을 깨우는 소리. 이미 꺼진 장작에 불을 지피는 소리였다. 그건 장작이 되지 못하고 전소해 재가 되어버린 재만 남은 자들도 예외 없는 소리였다.

  불사자. 죽어야하지만 죽지 못하는 저주받은 자들. 망자가 되거나 몸을 불살라 검은 숯댕이가 되어버린 이들. 끝없는 고통 속에서 겨우 찾은 안식을 방해할 종소리는 감히 함부로 울릴 수 없는 것이었다. 누가 울렸는지 모를 종소리에 안식을 찾은 장작의 왕들이 일어섰다.

  그들은 무덤에 누워 다음 불을 계승할 후계자에게 왕좌를 내어주어야했다. 그러나 그들이 안식을 취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을 깨우는 종소리가 울려퍼졌고 그때문에 무덤에서 일어나게 된것이다. 그들은 무엇에 이끌린듯 불의 계승장으로 모여들었다. 그곳에는 왕들의 이름이 새겨진 5개의 왕좌가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허나 그 왕좌는 후계자들이 앉아야할 자리였다. 텅빈 계승장 사이에서 느껴지는 것은 불을 연맹한 후계자의 불씨가 아닌 점점씩 꺼져가는 태초의 불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불의 계승장 주변, 그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재의 묘소라 불리는 무덤지 사이로 한 사내가 일어섰다. 그는 불을 계승하지 못하고 재만 남게 된 자, 재의 귀인이었다. 그 또한 종소리에 이끌려 안식에서 벗어났지만 그는 이미 재가 된 존재. 불을 계승할 수도, 장작의 왕이 될 수도 없었다. 그런 운명에도 여타 다른 불사자들이 그랬듯 그는 종소리가 나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재의 묘소에는 재의 귀인 뿐만 아니라 다른 불사자들또한 잠에서 깨어 있었다. 하지만 재의 귀인과는 다르게 정신을 잃고 소울만을 탐하는 존재, 망자가 되어 묘소를 떠돌고 있었다. 재의 귀인은 자신을 방해하는 망자들 하나하나 죽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그 앞에 보이는건 나선의 검이 꽂혀 옅게 불타고 있는 작은 불씨, 화톳불이었다. 재의 귀인은 화톳불에 손을 가져다댔다. 화톳불에 불이 붙으며 그가 앉아 쉴 수 있게 따뜻한 불꽃이 타올랐다.

  앞으로 나아가던 재의 귀인은 이내 넓은 원형의 공터에 도착했다. 앞에는 굳게 닫힌 문이 있었는데, 저곳을 지나야 할것 같았다. 공터의 중앙에는 가슴에 검을 꽂고 오른손에 도끼창을 쥔 체 쭈그려 앉아있는 과거의 위용이 느껴지는 기사의 시체 한 구가 있었다. 재의 귀인은 기사의 시체에 다가섰다.
 
  차갑게 식어버린 그의 갑옷에는 과거의 전투의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들이 보였다. 가슴에 꽂힌 검의 상처 사이로 검은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칼은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재의 귀인은 검을 쥐어잡고 잡아당겼다. 스르륵- 깊게 박혀있던 칼은 쉽게 빠져나왔다. 그러자 기사의 시체가 몸을 일으켜 재의 귀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오른손의 도끼창을 귀인에게 내려찍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재의 귀인이었지만 그는 불타버린 재. 비록 왕의 자격은 없었지만 그에 준하는 능력을 증명하는 자였다.

  재의 귀인은 왼쪽에 찬 직검을 뽑아 꽉 쥐어잡고 자신을 내리치는 도끼창을 응시하였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자신을 향해 내려치는데도 물러서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죽음의 두려움까지 극복한 용사와 같았다.
 
  귀인은 쾅 소리를 내며 바닥을 치는 도끼창의 일격을 피해 기사의 오른쪽으로 돌아들어갔다. 기사가 오른손 잡이라는 것을 눈치챈 아이디어였다.
 
  기사의 옆구리에 칼날이 들어갔다. 그러나 중갑을 뒤집어 쓴 기사에게 큰 피해를 주진 못한 듯 했다. 귀인은 포기하지 않고 방패를 들어올렸다. 내려치는 공격을 방어하며 다시 공격할 틈을 노렸다. 간간히 옆으로 둘러 베는 횡공격이나 찌르기, 잡아던지기 등 다른 식의 공격도 했으나 귀인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쏟아지는 공격을 막고 피하며 빈틈을 노려 공격하자 단단했던 그의 중갑도 한계에 다다랐다. 결국, 단 한방. 급소를 노린 칼날이 깊숙하게 들어오자 기사는 다리를 꿇을 수 밖에 없었다.



  "......"


  쿠구궁... 꾸룩.. 꾸루룩... 파쾅!!!!



  기사의 몸에서 검은 덩어리가 솟구쳤다. 징그럽게 꿈틀대는 고름 덩어리가 검은 진액을 내뿜었다. 덩어리는 뭉쳐 귀인을 덮쳤다.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차마 피하지 못하고 강한 공격에 멀리 튕겨져 나갔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방패를 들어 공격을 방어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늑골이 부러진 것 같다. 살짝 움직일때 마다 옆구리를 찌르는 고통에 집중력이 흐려졌다. 귀인은 허리춤에 찬 병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에스트 병. 방금 전 밝혔던 화톳불의 잔기를 담아 모은 것이었다. 에스트 병을 한모금 마신뒤 기합소리를 냈다. 다시 전투에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기사는 귀인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공격을 퍼부었다. 이번에는 어깨위에 덮힌 고름 덩어리까지 합세해 재의 귀인을 몰아붙였다. 빈틈이 느껴지면 고름 덩어리가 덮쳐오고, 고름을 피하면 강력한 횡공격이 들어오는 등 제법 고전을 거쳤지만 에스트병과 방패, 그리고 굳은 직검 한자루를 꽉 쥔 체 의지로 버티는 재의 귀인을 쓰러트릴 순 없었다.
 
  결국 다시 한번, 기사의 급소로 칼날이 들어왔다. 이번 일격만큼은 버티지 못한건지 결국 기사는 쓰러지고 말았다. 긴 난투끝에 재의 귀인이 승리한 것이다.
 
 
  재의 귀인은 겨우 끝난 전투에 안심하며 바닥에 꿇어 앉았다. 잠시 쉰다는 생각으로 전투 후 나타난 화톳불에 에스트 병을 충전시키고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가 닫힌 문을 밀어보았다. 방금 전까진 굳건히 닫혀 전혀 열리지 않던 문이 쉽게 밀려났다. 그는 기사의 가슴에 꽂혀있던 검을 챙기고 문을 넘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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