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시대,
모든 피조물들이 신의 이름을 알았던 그 눈부신 시대에 나는 미디르를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양육을 맡았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까.
태양의 주민들은 미디르를 괴물이며 파멸의 잔재라고 욕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ㅡ이제는 아버지보다도ㅡ 소중한 존재였다.
옛 세계를 떠나온 지 영겁,
이제 아버지의 이름마저도 아득하나 미디르의 이름, 음성, 날갯짓의 향기는 지금도 가슴속에서 선명하게 흐드러지며 피어난다…….
아아, 미디르, 나의 미디르.
온몸에 눌어붙는 어둠의 찌꺼기에 신음하는 그의 비명은 지금도 들려온다.
그 비명, 나를 찾고 있었다.
나와 왕녀님과의 약속에 묶여, 죽지 못하고 또다시 살아 돌아온 가여운 용.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그 처절한 사명에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던 그 늠름한 기개를 보면서 나는 항상 눈물겨웠다. 그리고 그 고단했던 약속의 끝을 위하여 이곳으로, 나에게로 결국 돌아왔는데…….
하지만 그 약속 앞에서 나는 무력했다.
나는 그 약속의 이행과 왕녀의 안식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나라는 방패가,
이 미약한 방패가 필리아놀님의 안식을 지키는 마지막 한줌이었으니까.
미디르의 신음이 들려올 때마다, 나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너는 누구냐.”
“저는 신의 후예, 공작의 딸 그리고 왕녀의 시녀, 시라입니다.”
“시라, 그 사실을 어느 순간에도 잊지 마라. 네 모든 행동은 신의 명예와 불의 긍지에 합당한 것이어야만 한다.”
‘미디르, 나는 신의 후예이자 공작의 딸인 시라야.’
귀를 막아도 들린다. 나는 울면서 거듭 말했다.
‘나는 왕녀의 시녀이자 교회의 창. 이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아니지.’
또다른 나는 그렇게 말했다.
‘넌 신의 후예, 공작의 딸 그리고 미디르의 친구이기도 해. 넌 미디르와의 약속을 지켜야만 해.’
사정이 허락한다 해도 내가 미디르를 참(斬)할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었다. 나는 미디르와의 인연의 고리를 끊어낼 자신이 없었다. 미디르의 웃음과 울음, 날개와 따뜻한 온기와 그 거칠면서도 포근하던 비늘피부를 잘라낼 자신이, 나에게는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태양과 불에게 간절히 빌고 있었다.
‘태양의 신이시여,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제가 감히 청합니다. 미디르를 도와주세요. 그리고 저를 도와주세요. 미디르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제게 주세요. 저에게 주실 없다면 당신의 이름을 아는 누군가를 이 세계로 보내주세요.’
하지만 기도의 응답은 언제나 희미했고, 신의 그림자조차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긴 꼬리를 끌며 우는 울음이 들릴 때마다, 나는 기도했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응답이었다.
‘당신의 이름을 아는 누군가를 제게 보내주세요.’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힘을 달라는 기도는 올리지 않았다.
‘미디르가 약속 속에서 죽을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의 이름을 아는 누군가를 보내주세요.’
‘신의 이름을 아는 누군가를.’
‘신의 이름을 아시는지요?’
‘신의 이름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윈.”
오늘은 묘하게도 문 너머에서 응답의 메아리가 울려왔다…….
‘그윈이라고?’
나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이제는 환청마저 들리는 것일까.
산 자의 목소리를 들었던 날 또한 까마득하여, 환청과 실체를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설명하자면,
지금 내가 수호하고 있는 이 문 너머에는 오직 망자들만이 득실거리고 있다. 말을 하는 이가 없을 터인데 하물며 신의 이름을 아는 자가 있을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혹시?’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신께서 나의 응답에 대답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환청이 아니라, 진짜 ‘산 자’의 목소리일 수도 있었다.
나는 떨리는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신의 이름을 말씀해주십시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 희망이 절망으로 뒤바뀌는 순간이 두려워 계속 물었다.
“혹시 기억하고 있으시다면, 당신이 섬기는 신의 이름을.”
대답은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들리는, 망자들이 뼈와 가죽과 강철이 격렬히 부딪히는 칼부림의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심연이 속삭이고 있구나. 내가 이 문을 열게 하여 내 사명을 더럽히려고. 태양이여, 부디 제 의지를 굽어살피소서.’
망자들의 내지르는 죽음의 비명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소란이 가라앉을 즈음에는 두 명만이 남은 듯했다. 한 망자가 다른 망자를 압도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나는 문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허공을 가르던 칼날이 세(勢)를 바꾸어 상대의 허(虛)를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 허는 목줄기였던 모양이었다. 울컥거리며 피를 뿜는 소리가 들렸고, 돌바닥에 쓰러지는 육중한 쇳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육신이 혼(魂)이 되어 스러지는 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다.
나는 가슴을 쓸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살아있을 때 대단한 실력을 가진 망자였나 보군. 환청에 현혹되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그때 신이 기도에 응답했다.
“네가 섬기는 신은 그윈이 아닌가?”
위세가 살아있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신들처럼 품격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껄렁했다.
“그윈돌린, 그위네비아, 요르시카. 이외에 더 필요한가? 베르카, 로이드? 이것들도 아니면 호적 파인 왕인가? 빌어먹을, 네 질문에 대답하는 바람에 애꿎은 칼날만 상했단 말이다.”
신의 사자(使者)는 내 예상과는 달리 꽤나 불량했다…….
본래 미디르 이야기 장편 프롤로그로 써두었던 건데 시간이 없으니 단편처럼 살짝 방향을 틀어서 올린다
오셀롯 이야기는 화요일 안으로 써서 올림
트루 문학가는 선추
개추
이건 추천해야겠네 - dc App
쨰가 필리 뭐시기임? - dc App
ㄴ필리아놀?어쨌든 트루문학가 개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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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쟨 시라지
이쪽업계 종사자인가 왠만한 프로 작가들 뺨치게 잘쓰네 - 커여운 늒네쟝
그냥 넘기려다 빠져들었다 - dc App
아조씨 오셀롯써주세요
죄송 기다릴게요 이번거도 좋네요
그래도 대답은 하는 재의 귀인이넹 ㅎ
KKantho// 이 아재는 작가 업계 종사자 맞는 걸로 기억함
아아 미미 나에 미미
찌발 쌌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