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에 문뜩 생각이 나 끄적임
나는 다크소울 1 2 3 그리고 세키로를 끝까지 깼는데
가장 오래 했던 건 다크소울3이고 가장 짧게 했던 건 세키로이다
전부 엔딩까진 봤지만 닼소3외엔 회차 플레이는 하지 않았다
ㅡ내가 닼소 1과 3을 좋아하는 이유
이는 내가 세키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닼소1이나 3은 나에게 일종의 모험과 같은 느낌이었다
닼소1의 아노르론도나 닼소3의 이루실은 마음 깊이 감명을 남기는 그런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것은 단지 그래픽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전해지는 어떠한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다크소울 시리즈를 통틀어 드는 느낌이 고독함이었다
소울 시리즈를 접하기 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리뷰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인생의 거듭된 실패로 좌절감에 휩싸여 있던 사람이 다크소울 세계관을 통해 힘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다크소울 세계관은 유독 암울한 편에 속한다. 멸망에 이르고 있으며 그걸 막을 뚜렷한 방법도 없다. 모든 건 그저 일시적인 저항에 지나지 않고 사태가 악화되리란 건 이미 결정된 수순이다.
이는 인간의 인생과도 언뜻 닮은 부분이 있다. 절정기는 짧고 한창 지나가고 있는 와중이다. 다크소울을 접하는 연령대는 보통 그렇다. 지금이 지나면 쭉 내리막길이다. 사람은 늙고 쇠하며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모든 건 비참한 몸부림이 된다.
다크소울은 그런 식으로 저물어 가는 것들의 가장 추하면서도 가장 극적인 부분들을 보여준다. 쓰러져 가는 것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 역설적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재조명한다.
아노르론도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더 극적이다. 비참한 세계에 타오르는 태양과 영광스러운 도시... 그것들을 보자면 슬프다. 그냥 슬프다. 그리고 그 점이 마음 깊이 풍경을 스며들게 해준다. 어떠한 상황 설명 없이 나는 그 장면을 오직 느낌만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다크소울3의 이루실도 그러하다. 고리의 도시 또한... 수식이 없는 느낌만의 논리는 경험을 생생하게 만들어 준다... 감정에 누군가의 개입이 없단 건 그것을 순수히 받아들이게끔 해준다.
내가 세키로를 하면서 이제껏 한 프롬 게임 중에서 가장 재밌었으나 그다지 인상이 깊지 않았던 건 같은 이유에서이다. 세키로의 목적성은 소울 시리즈와는 달리 명확하다. 각 장면에 뒤따르는 부연 설명이 확실히 존재하기에 어떤 장면을 접하든 객관적인 해석이 따른다.
내부군에 의해 불타는 아시나 성이 그러하다.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그것은 플레이어의 세계가 아닌 세키로의 세계이다. 무엇이 다른가? 의무감도 슬픔도 모두 세키로와 주변 인물들의 것이다.
때론 너무나 명확한 논리적 이해는 우리와 그것이 설명하는 세계 간의 뚜렷한 격벽을 형성한다. 우리가 우리 인생을 3인칭 관점에서 볼 수 있다면 대부분의 경험들이 좀 다른 느낌으로 변할 것이 분명하듯 말이다.
무엇이 아름다운가? 때로 그것은 한정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생각한다. 모름은 우리가 보고자 하고 느끼고자 하는 것들만을 알 수 있도록 적절히 가려준다.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딱히 그런 건 없다. 그저 한때의 아름다움을 단지 그런 느낌만으로 알 수 있도록 해줄 따름이다.
나는 다크소울 1 2 3 그리고 세키로를 끝까지 깼는데
가장 오래 했던 건 다크소울3이고 가장 짧게 했던 건 세키로이다
전부 엔딩까진 봤지만 닼소3외엔 회차 플레이는 하지 않았다
ㅡ내가 닼소 1과 3을 좋아하는 이유
이는 내가 세키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닼소1이나 3은 나에게 일종의 모험과 같은 느낌이었다
닼소1의 아노르론도나 닼소3의 이루실은 마음 깊이 감명을 남기는 그런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것은 단지 그래픽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전해지는 어떠한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다크소울 시리즈를 통틀어 드는 느낌이 고독함이었다
소울 시리즈를 접하기 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리뷰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인생의 거듭된 실패로 좌절감에 휩싸여 있던 사람이 다크소울 세계관을 통해 힘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다크소울 세계관은 유독 암울한 편에 속한다. 멸망에 이르고 있으며 그걸 막을 뚜렷한 방법도 없다. 모든 건 그저 일시적인 저항에 지나지 않고 사태가 악화되리란 건 이미 결정된 수순이다.
이는 인간의 인생과도 언뜻 닮은 부분이 있다. 절정기는 짧고 한창 지나가고 있는 와중이다. 다크소울을 접하는 연령대는 보통 그렇다. 지금이 지나면 쭉 내리막길이다. 사람은 늙고 쇠하며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모든 건 비참한 몸부림이 된다.
다크소울은 그런 식으로 저물어 가는 것들의 가장 추하면서도 가장 극적인 부분들을 보여준다. 쓰러져 가는 것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 역설적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재조명한다.
아노르론도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더 극적이다. 비참한 세계에 타오르는 태양과 영광스러운 도시... 그것들을 보자면 슬프다. 그냥 슬프다. 그리고 그 점이 마음 깊이 풍경을 스며들게 해준다. 어떠한 상황 설명 없이 나는 그 장면을 오직 느낌만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다크소울3의 이루실도 그러하다. 고리의 도시 또한... 수식이 없는 느낌만의 논리는 경험을 생생하게 만들어 준다... 감정에 누군가의 개입이 없단 건 그것을 순수히 받아들이게끔 해준다.
내가 세키로를 하면서 이제껏 한 프롬 게임 중에서 가장 재밌었으나 그다지 인상이 깊지 않았던 건 같은 이유에서이다. 세키로의 목적성은 소울 시리즈와는 달리 명확하다. 각 장면에 뒤따르는 부연 설명이 확실히 존재하기에 어떤 장면을 접하든 객관적인 해석이 따른다.
내부군에 의해 불타는 아시나 성이 그러하다.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그것은 플레이어의 세계가 아닌 세키로의 세계이다. 무엇이 다른가? 의무감도 슬픔도 모두 세키로와 주변 인물들의 것이다.
때론 너무나 명확한 논리적 이해는 우리와 그것이 설명하는 세계 간의 뚜렷한 격벽을 형성한다. 우리가 우리 인생을 3인칭 관점에서 볼 수 있다면 대부분의 경험들이 좀 다른 느낌으로 변할 것이 분명하듯 말이다.
무엇이 아름다운가? 때로 그것은 한정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생각한다. 모름은 우리가 보고자 하고 느끼고자 하는 것들만을 알 수 있도록 적절히 가려준다.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딱히 그런 건 없다. 그저 한때의 아름다움을 단지 그런 느낌만으로 알 수 있도록 해줄 따름이다.
올해의 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