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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말이지, 아.

별고리나무가 하얗다.
별고리나무가 하얗다는 거야.



---



사냥꾼은 같은 공간을 두 시간째 빙빙 돌고 있었다.

정원의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별고리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그 주변을 맴돌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생각이 길어지면 그 잡념의 가지가 원래의 발상에서 멀어지는 법.

'그녀'를 어떻게 구슬릴까 고민하던 그는 어느새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별고리나무, 별고리나무.
처음 보았을 땐 해바라기인 줄 알았지.
별고리나무는 하얗다. 그러나 순백색은 아니다.
음, 딱 보기좋은 만큼 살구빛이 섞여있는.. 보기좋은 만큼의 보기좋은 하얀색이야.



---



그는 훌륭한 사냥꾼이었다.
어떤 위기가 닥쳐도 물러서지 않았고, 죽음을 반복해도 몇번이고 일어서는 강인한 사내였다.

피를 뒤집어써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장의 파편이 눈앞에서 흩어져도 정신을 붙들고 있었다.
이형의 괴물과 인간의 의식을 뛰어넘는 존재들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그저 꿈일 뿐이니까.
하룻밤의 악몽일 뿐이니까.
그렇기에 그는 '꿈만 같다'는 표현이 참으로 이상하다고 여겼다.

그는 거리낄 것이 없었고, 그렇기에 멈추지 않았다.
나는 훌륭한 사냥꾼이고, 길 앞을 막는 것은 해치워야 할 사냥감이었다.
그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연구동의 별고리나무 정원을 지나
시계탑에 올라 그녀를 만났다.



의자에 앉아 사냥꾼을 기다리는 듯한 그녀의 모습은 의자 뒷편의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뻗어나오는 빛줄기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사냥꾼은 천천히, 천천히 그녀가 앉은 의자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여자는 어떠한 말도, 기척도 없었다.



오, 이런.

죽은 건가.

온 몸의 피가 빠르게 돌았다.
나 말고도 이곳에 먼저 온 누군가가 있는 건가. 주변에 숨어서 날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숨죽여서 기다렸지만 기습하는 무언가의 기척이나 공격 따윈 없었다.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여자의 시체에 손을 뻗었다. 아아, 이 여자가 마리아 인가. 정말이지 가여운 여자구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시체가 움직여 나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인간은 크게 당황하면 두뇌의 회전이 빨라지나, 인지능력을 비롯한 이성적인 판단능력은 짐승의 수준으로 크게 떨어진다.

훌륭한 사냥꾼 또한 예외는 아니므로, '사후 경직인가, 시체가 어째서 움직이는 것이지-' 따위의 멍청한 생각을 하는 사이 그 손아귀에 단단히 붙잡혀 버렸다.

그녀는 사냥꾼을 강하게 밀어붙였고, 중심은 그의 몸 뒤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이대로 그녀가 사냥꾼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심장에 칼을 꽃아 넣었다면,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별빛처럼 반짝이는 청옥색의 두 눈을 그에게 마주하고는 부드럽고 우아한 목소리로 속삭일 뿐이었다.



- 시체는... 영면하게 두어야 하는 법.



마리아는 손에 쥐가 나도록 붙잡고 있었던 그의 손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간 듯 내려간 얼굴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름답다.



- 아, 매우 잘 알지. 비밀이 어찌 달콤하게 손짓하는지 말이야.



간드러지는 달콤한 목소리... 조금만 더 듣고싶다.
다른 말도 듣고 싶다. 사뿐하게 손짓하듯 부드럽고 예쁜 목소리야, 다른 말고 듣고 싶다. 아아, 울리는 듯 내려앉으면서도 솜털처럼 가벼운 목소리다.

아름답다.



- 이제 명예로운 죽음만이 널 치유할 수 있어.



빛나는 눈 만큼이나 새하얀 피부.
그러나 순백색은 아니다.
딱 보기좋은 만큼 살구빛이 섞여있는, 보기좋은 만큼의 보기좋은 하얀색이야.

궁금해졌다, 마리아.
너가 어떤 여자인지 조금 더 알고싶다.



- 야만스러운 호기심으로부터 널 해방해주마.

나는 눈을 감았고, 차가운 쇳소리와 함께 의식은 끊어졌다.



---




눈을 떴을 땐, 시계탑의 천장이 아닌 정원의 넓은 파란 하늘이었다.
사냥꾼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세웠다. 죽어서 돌아온 건가.

바람에 등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별고리나무의 이파리도 시원한 바람을 따라 흩날리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은 새하얗고 이쁘다.
그러나 순백색은 아니다.

딱 보기좋은 만큼 살구빛이 섞여있는, 보기좋은 만큼의 보기좋은 하얀색인가.



마리아는 나의 심장에 칼을 꽂았다.
그녀는 나의 길을 막아섰고, 나는 사냥꾼이므로 그녀의 목을 그어버려야 했다.

혹시,
내가 야남의 주민들을 톱날 단창으로 찢어발길 때
그들이 불쌍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던가?

잠시 고민하던 사냥꾼은
다시한번 시계탑으로 올라갔다.



---



여태까지 항상 그랬듯이, 훌륭한 사냥꾼이 거리낄 것은 없었다.

나는 마리아가 앉아 있는 의자를 향해 성큼성큼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앞에 우뚝 머춰 서서, 다시 한번 천천히 손을 뻗었다.





가만히 앉아있던 그녀가 움직여 나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인간은 크게 흥분하면 감성의 비율이 강해지고, 사고는 본능을 중점으로 행해진다.

훌륭한 사냥꾼 또한 예외는 아니므로, '씨발련, 존나게 꼴려서 미치겠다-' 따위의 멍청한 생각을 하는 사이 그 손아귀에 단단히 붙잡혀 버렸다.

그녀는 나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중심은 나의 몸 뒤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얼굴이 가깝다.

이대로 그녀가 나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내 품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면, 청옥색으로 빛나는 눈을 나에게 맞추고 간드러지는 손짓과도 같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면, 그 자리에서 복상사로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여전히 별빛처럼 반짝이는 두 눈을 나에게 마주하고는 여전히 부드럽고 우아한 목소리로 여전히, 다시 한번 속삭일 뿐이었다.



- 시체는... 영면하게 두어야 하는 법.



---



120번이 넘는 죽음을 반복했다.
120번도 넘게 별고리나무의 정원에서 눈을 떴다.

120번도 넘게 마리아와 손을 잡았고,
480번은 넘도록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아, 마리아
더 많은 목소리를 듣고싶다.
더 많이 너와 손 잡고 싶다.
너에게 이 아름다운 별고리나무 정원을 보여주고 싶다.
너의 머리카락에 꽃을 달아 장식해주고 싶다.
의자에 앉은 널 그대로 안아올려 정원에 데려와 눕히고,
나도 그 옆에 나란히 누워있고 싶다.
같이 천상을 올려다보며, 너만큼 아름다운 우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다.
너를 더 사랑하고, 더 강하게 껴안아주고 싶다.
너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아아, 마리아
부디 야만스러운 호기심으로부터 날 해방시켜 주시오



---



사냥꾼은 다시 한번 시계탑에 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그녀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손을 뻗었다. 마치 청혼하려는 듯이.

죽은 듯이 가만히 있던 그녀가 손을 뻗어 내 손목을 붙잡으려 들기 전,
내가 먼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인간은 크게 당황하면 두뇌의 회전이 빨라지나, 인지능력을 비롯한 이성적인 판단능력은 짐승의 수준으로 크게 떨어진다.


나는 마리아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그녀는 휘청이며 중심이 뒤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나는 그대로 그녀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엎어졌다.

쿵쾅-
쿵쾅-

따뜻하고 일정하게 뛰는 심장 소리가 들린다.
조금 빠른 속도로,

쿵쾅.
쿵쾅.



사냥꾼은 품속에서 고개를 들어 마리아를 올려다 보았다.
별빛처럼 반짝이는 청옥색의 두 눈동자는 당황한 채로 크게 일렁이고 있었다.

적의는 없었다.



딱 보기좋은 만큼 살구빛이 섞여있는 하얀 피부.
여전히 손아귀의 감각이 남아있는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약하게 꼬집었다.

그녀는 빨개진 얼굴로 정색을 하며 눈썹을 비틀었다.









너에게 별고리나무를 보여주고 싶다.

딱 보기좋은 만큼 살구빛이 섞여있는, 보기좋은 만큼의 보기좋은 하얀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