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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부모님은 다른 견해를 갖고 있을지 모르나


아이들이 생각하기에 보통 산타는 12월쯤에 굴뚝을 타고 내려온다고 한다


대다수의 가정들이 굴뚝 없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 안에 자리잡은 21세기에는 그럼 산타가 어떻게 찾아와야 하는가?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럼 뭐 산타가 유도리 있게 발코니나 창문 어딘가로 적당히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 것이다


애들은 원래 그런 존재들이니까


그 방법이야 어쨌든 세상이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좆같은 것들이란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산타가 12월쯤에 큰 병을 앓아서 24일에 NORAD의 추적을 피해 전 세게의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할 수 없게 되었다고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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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해 보면, 그 나이 먹고 이 추운 날에 짐승이 끄는 썰매를 타고 안전벨트도 없이 날아다니다가 굴뚝으로 오르내리는 것이 오죽 힘들었겠는가?


위험 수당을 포함해서 페이라도 올려 달라고 산타 위의 상급자에게 건의라도 하려고 하면


그 사람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애들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냐고?


애들의 꿈이라던가 뭐 하여튼 그런 걸 인질로 잡고 있는 셈이지


소방관의 열악한 대우랑 일맥상통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리고 이건 한철장사라서 모종의 이유로 하지 못했을 경우 그 후폭풍은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이때 벌어 두지 않으면 루돌프인지 산타의 병들고 심약한 딸인지 부인인지 아무튼 그런 짐승과 인간들이 존나 굶어 댈 거고...


어쩌면 우리는 자기 전에 머리맡에 양말보다는 산타의 임금 투쟁을 지지하는 성명이라도 걸어 놓고 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러분은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 놓으면서 산타 할아버지 수고했어요라는 말을 적은 쪽지와 캔커피라도 담아 놓은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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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크리스마스만 되면 거리에 트리라던가 되지도 않는 온간 반짝이들을 걸어 놓으면서 장사를 시작하니까 말이다


이 타이밍에 산타가 파업하면 존나 뻘쭘하지 않을까? 다들 배신당한 얼굴로 산타만 쳐다보지 않을까?


그 중국산 싸구려 플라스틱 트리라던가 반짝이풀로 만든 쓰잘데기 없는 장식들을 사느라 공돈을 날린 점주들과,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이주째 야근을 한 게임 회사의 프로그래머라던가 아무튼 온갖 기업들이 단체로 고소를 걸지 않을까?


근데 나는, 아니 우리 가엾은 산타는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을 것이다.


무국적 불법입국자나 다름없는 신세라 국선 변호사조차 꿈도 못 꾸는 형편일 테니까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자기 하나를 붙잡고 안경 쓰고 검은 양복 빼입고 삼시 세끼 밥에 엘리트를 비벼 먹는 사람들을 세워 고소를 거는 순간


불쌍하게도 그 두툼한 붉은 속옷에 오줌을 지리고 말겠지


그렇다고 한 6월의 어느 아무래도 좋은 순간에 파업을 하면 사람들이 관심이나 가지겠는가?


존나 산타?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어? 하고 말지


지방 신문의 3면 작은 칸에 고작 하루 살짝 나고 마는 정도로 그치고 말 거라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산타는 이 모든 일들에 지쳐 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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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지나고 1월이 지나고 2월도, 3월도 한참 지났을 때쯤


이 병신같은 허무주의(이 위에 멋들어진 궁서체 요미가나로 '니힐리즘' 이라고 적으시오) 가 가시고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아서 썰매에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잘 생각해 보니 이제 와서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밀고서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기엔 단단히 늦어 버렸다


사람들은 12월에 무단 결근을 한 산타한테 잔뜩 화가 났었을 거고 3월이면 이미 화장품 가게에서도 캐롤송 대신 봄바람 휘날리며 어쩌고 같은


진부한 노래를 들어댈 때쯤이니까


그리고 그 사이 끼여 있었던 명절에 대한 기억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제 와서 크리스마스가 어쩌고 하기엔 굉장히 어색한 상황이 될 거란 말이다


또다른 문제가 뭐냐면, 염병할 선물을 누구한테 줬어야 했는지에 대한 목록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전필 과목의 1단원처럼, 알고 있었고 잊을 일 없다고 생각했던 내용들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큼 확고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던 거지


그래서 이제 와서 이 모든 유희왕 카드니 닌-텐-도 스위치니 하는 쓰레기더미를 뒤적거리는데...


뭘 했었고 뭘 했어야 하는지, 뭘 누구한테 줬어야 했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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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었다.


별 생각도 없이 DLC파트를 모두 깨부순 다음 게임과 세이브파일을 지우고, 이제 연재할 일만 남았다고 만족스럽게 대가리를 끄덕거린 뒤


아프고, 바쁘고, 기타 몇 가지 문제를 처리한 다음 돌아오니 내가 씨발 뭘 했었는지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거짓말이겠지


게임이 좆같다고 그렇게까지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 놓고 이제 와서 그걸 다 잊어버렸다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됐으니까


이럴 때 뭘 해야 하는가?


겸허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다음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해야 하는가?


새 세이브파일로 해당 위치까지 진행을 다시 한 다음 기억을 되살리며 성실하게 연재를 재개해야 하는가?


아니, 나는 좆같은 새끼였기 때문에 다른 것을 선택했다


나는 불가능을 선택했다


바로 랩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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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고 그냥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모든 연재를 멈추고 잠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분명 산타에게 같은 일이 일어났었다면 그도 같은 짓을 했을 것이다


물론 그윈과 DLC를 모두 주파했던 것은 확실하다


스크린샷 폴더에는 날짜와 시간과 내 동선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이 스크린샷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낼 길은 내겐 더 없어지고 말았다


모래알같은 기억들에 손을 뻗어 매만지는 순간 없었던 것만 같이 흩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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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 같은 낙사 구간, 소라고둥에 귀를 기울였을 때와 같이 아스라히 멀어지는 킹골바퀴의 엔진 소리,


셰피아 필름 색으로 덧씌워진 '씨발 어디로 가야 해'구간,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지만 미야자키는 자신의 모근을 살리는 데 실패한 것처럼 이 법칙조차 살리지 못했다


스크린샷을 모조리 뒤졌지만 그리운 감정이라곤 조금도 없고 '씨발'이라는 단 한가지 감정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을 따름이다


감정만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살아 있는데...


이 모든 토사물들이 나는 여기에 존재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걸 가지고 적절한 분량의 연재분을 짜낼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스크린샷을 봐도 '씨발'말고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으니까


어디서 왔는지, 어디서 어디로 갔는지 당최 알 수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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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회화세계는, 여기는 길 찾기가 아주 좆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막상 플레이할때도 길을 찾지 못해서 무지성 F12를 누르면서 몇 시간 동안 의미 없는 스크린샷을 오조오억개 남겼는데,


일년하고도 절반쯤 더 지난 이제 와서 이걸 뒤적거려 봐야 내가 어떤 길을 찾아 갔었는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씨발 알 게 뭔가?


도대체 어쩌다 길을 찾았던 건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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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디씨에 무언가를 쓰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조금이라도 게시글에 씹노잼 패턴을 보이는 순간 누군가 후딜을 날카롭게 캐치해 'ㄵ'하고 패링을 걸게 되니까 말이다


좀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쨌든 품속에 게이처럼 넣어둔 말벌 반지와 혼돈 변질 'ㄵ'대거로 마음이 찢기고 싶지 않다면


봐줄 만한 글을 남겨야 한다는 강한 압박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그 봐줄 만한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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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이제 와서 철 지난 스크린샷과 함께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병신같은 변명 글이나 쓰고 있느냐?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변명이라는 게 듣는 것만큼 하는 것도 그닥 재미없는 일이라...


그게 언젠가, 그 다음 날의 언젠가, 그 다음 달의 언젠가, 내년 언젠가의 또 언젠가가 되다가...


어쩌다 보니 오늘이 된 것 뿐인데...


관심받고 싶어서 뒷북친다고 욕을 먹더라도 설명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맙게도 연재글을 재밌게 봤다고 해준 사람들을 위해서


여러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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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리마스터드 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