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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호들갑도 유분수지. 무시하며 영약이나 배합하려는데 빛바랜 자의 낯빛이 심상치 않다.

장난을 치려는 게 아니었나? 이쯤 되자 이쪽도 덩달아 기분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대체 뭔데? 정약을 먹인게 뭐 어쨌다고?


"이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확실히 그 정약을 먹인 것 맞겠지?"

"어? 어어. 그렇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나?"

"자네가 녹스텔라로 떠난 직후였으니 열흘 정도 지났네. 네펠리에게 먹였을 때처럼 하룻밤이면 꼭두각시가..."

"이런 미친!"


욕은 좀 너무하지 않은가. 빛바랜 자 주제에.



"하루만에 효과가 돈다고?"


그런데 빛바랜 자는 내 농담에 놀란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보게. 정신 차려. 아직 손을 대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빌란 말일세."

"빌어라니? 이미 열흘 전부터 우리 탑에서 살고 있는데?"

"이런 멍청한! 자네는 데미갓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모르긴 왜 몰라. 동물학대하고 부패방구나 뀌고 오래 살고... 생각해보니 잘 모르긴 하네.


"호들갑 그만 떨고 왜 그러는지 말이나 좀 해줘봐. 대체 왜 그러는데?"

"하아. 알겠네. 내 쉽게 설명해줌세. 기본적으로 데미갓들은 거대한 룬과 마법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네."

"그거야 나도 알지."

"자. 그럼 잘 생각해보게. 단순히 살아가기만 해도 강해지는 데미갓이라면? 레날라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강력한 경지에 오르네."

"어... 진짜?"

"내가 거짓말을 왜 하겠나. 거기다 자네가 정약을 먹인 라니가 다른 데미갓들과 같다면... 이미 대마법사의 수준에 올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야."


듣다보니 식은땀이 흐른다.


"그럼 왜 정약을 먹어준 건데?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랐다면 라니가 이런 것에 속을 리가 없잖아."

"속은 게 아니라 속아준 걸세.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원."

"속아줘? 대체 왜?"

"황금률에 권태로움을 느낀 게지.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던 거고."

"그렇다고 노예를 자처해?"

"성정이 좀 변태적인 마녀일수도."


그러니까, 빛바랜 자의 말은 어느 변태적인 데미갓이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미삼아 노예를 자처했다는 소리였다.

그게 말이 되나?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 바람에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약에 담긴 물방울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내가 문득 드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상관없지 않아? 노예 각인을 찍어놓았으니 무슨 수를 써도 나한테 반항하지 못해."

"자네가 방랑상인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그런 머리 수완이면 하루만에 쭀바리에게 죽을테니."

"그건 또 뭔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하. 알겠네. 자네는 노예 각인을 새기는 것을 누구에게 배웠나?"

"그야 레아 루카리아에서...?"


어, 잠깐만. 제아무리 마술에 미친 학원의 마술사라고 해도 데미갓 수준에 들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끽해봐야 백 년을 사는 학원의 마법사들이 부여한 각인을, 오랫동안 마술을 사용해 온 데미갓이 풀지 못할 거라 보는가?"

"그럼 왜 노예 각인을...?"

"아까 말했지 않은가. 자네를 가지고 노는 거라고."


섬칫 어깨가 떨린다. 내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꼭두각시가 사실은 날 가지고 노는 거라고?

말도 안 돼.

그래.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저 빛바랜 자는 나를 골려주기 위해 헛소리를 하는 게 틀림없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남은 영약을 비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