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네요."
여자가 또 다시 꽃을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그것만 볼 거야. 남자도 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치만, 이거 말고는 볼 게 없는걸요." 남자는 반박하지 못했다.
"이게 정말로 옳은 선택이었을까요?"
여자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칠흑같은 하늘 사이로 검은 태양이 번들거렸다.
기껏 눈을 뜨게 되니까 볼 수 있는 게 망해가는 세상 뿐이라니. 여자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것보다는 더...예쁠 줄 알았어. 남자가 간신히 대답했다. 예전에는 불이 꺼지니 장작이 필요하니 뭐라 해도, 경치 좋은 곳은 많았는데 말이야.
남자가 아주 오래된 추억을 떠올렸다. 불사자가 아닌 시절이 떠올랐다. 비록 별볼일없는 어중이떠중이 기사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사자가 아니여서 사람 취급은 받고 살았었던 추억이었다.
어쩌면 다시 한 번 그 감각을 느끼고자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여자가 조용히 물었다. "불이 무사히 있던 시대는 아름다웠나요?"
엄청. 남자가 대답했다.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운 수준이지. 어떤 사악하고 속 좁은 대머리가 만우절 장난 말고 진짜 반지를 빨리 만들었으면 더 아름다웠겠지만...
여자는 일어나서 태초의 화로 중간, 태초의 불꽃이 있던 곳으로 움직였다.
"언젠가는 암흑 속에 작은 불꽃들이 나타날 겁니다."
여자가 남자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언젠가 그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눈동자가 비추는 불 꺼진 세계는 영원히 계속되는 암흑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눈을 갖지 못한 저희의 그것과는 달라, 어딘가 저 먼 곳에서 작은 불꽃들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답니다.
그것은 마치 왕들이 계승해온 증거, 잔불과도 같으니.
그렇기에 저는 그 어둠에 마음이 끌려가는 걸까요?
이름도 없고 장작조차 되지 못한, 저주받은 불사. 하지만 그렇기에 재는 잔불을 바란다. 시녀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재를 가리키며 한 이야기였을 태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마음속에도 와닿는 말이었다.
"눈동자는 감사했습니다. 그러니, 보여주시지 않겠어요?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 줄게."
남자가 대답했다.
소울에 좀 미친 것 같더니만. 어두운 영혼을 쫓아 여기까지 오다니.
꽃이란 꽃은 사뿐히 즈려밟으며 패치는 옛 도시의 성당으로 향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나 해야지. 패치가 처음에 했던 생각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별 이유는 없었다. 자신을 도와줬으니, 대신 기도 정도는 해 줄수 있다. 딱 이 정도의 생각이었다.
욕심쟁이인건 변하질 않더군. 도무지 변하질 않는 인간답게도 말이지. 패치는 그를 보고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였다. 패치는 자기 자신에게 놀랐다. 내가 남을 비웃지 않다니.
되찾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는 수없이 많은 불사자들을 보아 왔다. 사명에 매달린 녀석들. 망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사명에 집착하는 녀석들. 사명을 이뤄도, 못 이뤄도 끝내 망자가 되어 나뒹구는 얼간이들.
그러니 내가 등쳐먹어도 상관없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해 왔다. 특별한 녀석들이 있기는 했다. 사명이란 게 끝끝내 땔감이 되어 자기 자신을 태워버린다는, 어떤 초특급 얼간이들도 있었고.
그는 그런 얼간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욕망을 인정하지 않고, 고결한 척, 나는 빛나고 따뜻하고 품위있는 불꽃입니다, 자랑하듯이 사명을 지니고 다니는 녀석들이 싫었다.
오히려 그런 척을 하려는 게 욕심쟁이인 게 아닐까? 패치는 자기 자신이 그런 위선자들에 비하면 무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재니 장작이니 뭐라고 설치는 작자들이 싫었다. 어차피 아주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죽고 싶다고 방방 날뛰는 녀석들이니 가까이 지내봐야 득 될 것도 없었다.
그가 밀쳐낸 남자도 그 정도로 평가했었다.
그런데 그는 불타지 않았다. 불이 꺼지고 무너져가는 세상에서도 그는 남아있었다.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답게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미친 듯이 소울과 잔불을 모았다. 그 정도면 혼자서 한참을 먹고놀아도 괜찮을 양임에도, 남자는 계속 소울을 모았다. 다른 챙겨줄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소울 그 자체에 미친 건지, 아니면 다른 욕심이라도 있는 건지. 설마 더 강해지고 싶은 건가? 아니면... 설마 그 욕망이 사랑은 아니겠지.
어느샌가 패치의 발걸음은 멈춰 있었다. 이 앞에 있는 것은 교회의 창. 어두운 영혼을 향해 나아가려는 불 꺼진 재를 가로막을 적.
제기랄. 이게 뭐하는 짓인지. 패치는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그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지기로 했다.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흰색 납석을 꺼내들었다.
바닥에 글자를 새겼다. '불굴의 패치'.
하하, 그는 웃었다.
아무려면 어때. 사람답게 살자고. 이게 사람간의 우정이지.
교회의 방문객을 축복하듯이 꽃들이 춤을 췄다. 꽃의 군무에 맞추어 꽃잎이 튀었다. 꽃잎 끝의 작은 흰 부분이 햇빛을 받아 주변을 밝게 비췄다. 빛이 춤출 파트너를 찾듯, 새로 온 교회의 방문객을 향해 날아들었다.
밝은 빛을 받고 분홍빛 꽃들은 반짝였다. 꽃의 이름은 플루메리아였다. '당신을 만나서 행운이었습니다.' 그 꽃의 꽃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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