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리드 브금인데 이걸 들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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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일리드 지역 브금을 좋아하는 게이는 아무도 없을 거야. 듣는 내내 악령과 귀신이 튀어나올 법한 소름 돋는 분위기에 지역 자체도 증오로 똘똘 뭉친 병사, 괴물 개, 거대 까마귀가 돌아다니고 있을 뿐 아니라 북부의 그레이오르 용총지역은 난이도도 매우 높아서 최후반에 잔뜩 렙업하고 와도 어려운 무서운 지역이니까.

 

 

게임 중에서도 공포를 느꼈는데 음악만 따로 들어보기로 했지. 호기심에들어보면 멀리서 정신 잃은 유령들이 울먹거리거나 미쳐버려서 울부짖는 것 같으며 가도가도 끝없는 황량한 사막이나 황무지를 걸을 때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한편으론 공포감 이면에 뭔가 반가운(?) 기시감이 느껴졌는데 분명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음악이라는 것이었어. 물론 우리가 아는 반가움이 아닌 저절로 트라우마가 느껴지는 식의 반가움이었지. ‘공포 음악에 대체 무슨 모티브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는 게이들도 있을 텐데 나는 2개의 클래식 음악이 떠올렸어.

   

 

하나는 폴란드의 음악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작곡한 히로시마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1959)’ (혹은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슬픔의 노래로 불린다)가 있으며다른 하나는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음악가 리게티 죄르지가 작곡한 레퀴엠(1965)’이야.

 

이 두 음악이 떠올라서 무서움에도 계속 들어게 됐지.

   

 

케일리드 브금도 참으로 뭣 같은데,

모티브가 된 것으로 추정되는 히로시마 애가리게티의 레퀴엠은 그보다 더 소름 돋고 무서운 음악이기에 들을 때 주의를 표한다.

 





(2가지 버전의 히로시마 애가)

 



 

(역시 2가지 버전의 레퀴엠)


 

설명을 하자면 히로시마 애가는 현악기들이 요란스럽게 내며 시작되는데 마치 유령들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귀가 아프다. 주로 핵무기를 떨어뜨린 B-29 폭격기의 프로펠러 소리와 공습 사이렌 소리 그리고 폭발로 산화되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연상케 하는 음악이라 볼 수 있어. 다른 애가나 조곡들이 아름답고 도도한 분위기의 조용한 음악들인 거에 비해 히로시마 애가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명에서 비명으로 끝나는 참담한 곡이야.

 

리게티의 레퀴엠은 일반적으로 레퀴엠이 죽은 자들의 안식을 위한 노래라는 인식과 달리 이건 죽은 자들이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정처를 떠돌아다니며 산 자들에게 호소하거나 혹은 죽은 자들이 자신들이 억울하다면서 지옥이나 저승에서 단체로 절규하며 살려달라고 외치는느낌이 절로 드는 클래식 음악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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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펜데레츠키, 오른쪽이 리게티. 사진 출처는 꺼라위키)


 

펜데레츠키와 리게티는 둘 다 동유럽 출신이고 격동의 20세기를 살아간 사람들인데 펜데레츠키는 하시딤 유대인들이 살던 작음 마을에서 1933년에 태어났으며 리게티는 1923, 지금은 루마니아 땅이 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디최센트마르톤(현재의 트르너베니)에서 태어났어. 둘 다 끔찍한 2차 대전의 참상을 어린시절에 겪은 사람들이지.

 

특히 리게티는 1944년 친 나치 정권에 의해 가족들이 모조리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서 자기 자신과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가족과 친척들이 수용소 안에서 죽임을 당했지. 그리고 두 사람의 모국 폴란드와 헝가리 모두 냉전 시기 소련의 강압적인 통치에 신음하며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야 했었고.

 

 

이런 와중에 펜데레츠키는 핵무기의 위력과 공포를 생각했는지 자신의 모국 폴란드를 초토화시킨 나치 독일의 동맹국인 일본 제국이 마지막으로 겪은 비극(허나 한국의 독립과 미군의 희생을 최소화한 아이러니)인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는 음악를 만들었고 그게 바로 위의 무서운 노래야. 내가 볼 땐, 모국의 비극을 애도하는 작품을 만들어도 될 텐데 굳이 히로시마 애가를 만들었을까 생각했지만 어쨌건 핵전쟁의 공포와 반전사상을 담는데 충격요법이 될 만하다 느껴.

   

 

리게티 죄르지의 레퀴엠도 들어보면 악령이 된 망자들이 어째서 신(혹은 세상)은 우리를 이렇게 비참하게 죽이신 겁니까, 우린 지금도 편히 쉴 수 없어요. 우리를 제발 구해주세요. 우린 아직도 헤매면서 고통 받고 있어요라고 소리치며 땅바닥을 뒹구는 기분인데 히로시마 애가가 핵전쟁이 일어난 직후나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한 공포감을 준다면 이것은 완전히 파괴된 세상에서 산자와 죽은 자 모두 절망하며 끝없이 헤매는 허망함도 주는 것 같아. 수용소에서 죽어간 유대인, 장애인, 동유럽 사람들과 연합군 포로들도 생각나고.

 


 

이 무서운 두 음악을 동시에 틀어보자. 말 그대로 생지옥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히로시마 애가랑 리게티의 레퀴엠을 동시에 재생하니까 케일리드 지역의 브금과 비슷한 기분이 드는 게 아닌가?

프롬 작곡가들은 이 두 사람의 음악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 아닐까 든다.

 


설정 상, 케일리드 역시 리에니에랑 림그레이브처럼 멀쩡히 사람들이 거주하던 비옥한 지역이었는데 말레니아가 라단과 싸우다 패배할 위기에 처하자 부패라는 자폭 필살기를 시전 하는 바람에 케일리드 전 지역이 죽음의 땅이 됐고 이는 파쇄전쟁이 일어난 지 수십,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 바뀌지 않은 채 증오만이 가득한 지역으로 전락한 것인데 게임 자체의 어려움, 기분 나쁨 외에도 모티브가 된 것 같은 두 음악의 작곡가들의 인생과 20세기 인류 역사까지 동시에 생각나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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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말레니아, 꼭 부패 자폭을 해야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