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든링 나와서 오랜만에 와봤는데 예전 계정 메일을 해킹당해서 접근이 안 된다.
일단 이 계정으로 글들 옮기고 추후로 엘든링 관련 글도 써볼 예정.

언어가 사회적 약속인 만큼 번역을 자기 좆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동시에 언어는 꽤나 느슨한 약속인 이유로 번역가들마다 생각이 천차만별이다.
그냥 내 생각이 이렇다는 거로 봐줬으면 좋겠음.

예전 글들 댓글 보면 알겠지만 내가 아쉬워하는 번역을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고, 굉장히 날카롭게 지적하는 의견도 많음.


겜 하다가 번역이 아쉬운 게 좀 있어서 정리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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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는 오니키리(鬼切)와 우바다치(姥断)

우리말에서는 도구 이름을 만들 때 베개, 지게처럼 동사 뒤에 -개, -게 같은 접미어를 붙이지만 일본어는 단순히 명사화하는 것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히게소리(髭剃り)라고 하는 것만으로 면도칼이라는 뜻이 된다. 문맥에 따라선 수염깎기라는 뜻도 되겠지.

문맥에 따라 기술 이름을 귀신베기라고 한 건 잘한 거다. 하지만 칼 이름을 '베기'라고 짓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우바다치의 타치(断ち)는 동사 断つ에서 온 것이다. 절단의 '단'자이고 완전히 끊어낼 때 쓰는 말이다. 단교, 단절, 판단, 결단, 일도양단.

가른다는 말은 '배를 가르다', '물살을 가르다'처럼 완전히 잘려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때에도 쓴다.

칼 이름으로 断ち를 쓰는 경우에는 목을 치는 것을 의식하고 쓰는 경우가 많다. 우바를 가르는 검이 아니라 우바의 목을 치는 검이다.


우바 역시 노파가 아니다. 山姥, 야만바, 아마우바 등으로 읽히는 일본 요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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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요괴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나 산을 넘는 행상인 등을 꾀어내어 잡아먹는 노파 요괴다.

지역마다 자세한 전승에 차이가 있으나 일본 전역에서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오니는 요즘 귀멸의 칼날인가 뭔가로 다들 잘 알 테니 넘어가겠다.


즉, 오니키리는 귀신 베는 칼이라는 뜻이고 우바다치는 요괴의 목을 치는 칼이라는 뜻이 된다.

같은 사람이 번역한 것인지 세키로에서 不死切り 역시 불사를 베는 검이라는 뜻이지만 기술명인 것처럼 불사베기로 번역되었다.

참고로 영문에서는 slaying the undying 따위로 번역하지 않고 mortal blade라고 제대로 칼 같은 이름을 붙여줬다.


사실 위에 있는 검 두 자루는 모델이 있는 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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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치메쿠야스츠나, 일명 오니키리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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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바기리


둘 다 일본 중요문화재(한국으로 치면 국보 내지 보물)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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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타 요시사다라는 인간이 오니키리마루로 오니를 베었다는 전설이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배계층이 귀신을 물리쳤다는 전승은 꼭 있는데 문화 차이 때문인지 방법에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말을 잘해서 쫓아내는데(처용가) 일본에서는 귀신 모가지를 친다.

일본 건국 설화에서도 타케하야스사노오노미코토(스사노오)가 야마타노 오로치라는 뱀의 모가지를 친다.

참고로 이 때 스사노오가 루팅한 아메노무라쿠모노쓰루기라는 검은 건국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본 황실에서 보존 중이라고 주장하는 삼신기 중 하나임.

(삼신기는 단 한 번도 실물을 공개한 적이 없다.)


야만바기리의 이름이 지어진 유래는 따로 전해지지 않는데 요괴들 모가지 치는 걸 좋아했던 일본인들 특성상 다른 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지배 계층 중 누군가 저 칼로 야만바(야마우바)의 모가리를 쳤을 것이다.


이쪽 업계가 살인적인 타임라인에 박봉으로 굴러가는 만큼 이런 자료조사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칼 이름을 '베기'로 번역하는 정도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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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면 어차피 학술자료도 아니고 게임에서 간지나면 그만인데 칼 이름이 귀신베기면 어떻나 싶다.
그래도 '노파가르기'의 동사 断つ는 '가르기'와는 거리가 있는 동사라서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보면서 알게 된 건데 아이템 설명 부분은 명백한 오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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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베기를 쥐고 불사자의 거리에 도착한 카무이는

그곳에서 노파가르기를 처단해 왕의 사냥꾼이 되었다고 한다


칼을 어떻게 처단한다는 말인가? '노파가르기'라는 이름을 쓰는 인물이 있었던 것일까?

원문은 이렇다.


鬼切を携え不死街に辿り着いたカムイは

そこで姥断を打ち、王の狩人になったという


오니키리를 지니고 불사자의 거리에 이른 카무이는

그곳에서 우바다치를 벼려내고 왕의 사냥꾼이 되었다고 한다.


'打つ'에는 '치다', '때리다', '토벌하다', '두드리다', '베다' 등의 뜻 외에도 '(날붙이 따위를) 벼리다'의 뜻도 있다. 아마 번역가가 몰랐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