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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자연을 객관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서양의 자연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연은 그저 인간을 둘러싼 배경일 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주변 세상을 변화시킬 주체라는 사고방식이다. 아마도 저 고독한 남자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안개 너머에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가 꿈꾸는 이상세계일 것이다.


출처 : 세이프타임즈



엘든링을 포함한 소울류 게임들은 배경이나 설정이 달라도 큰 틀은 항상 같다. 부조리하고 불친절한 세상에 난데없이 떨어져 평범한 신분으로 시작하는 주인공은 끝도 없이 구르면서 플레이어와 함께 성장해나가며 결국은 신이나 신에 가까운 천재지변과도 같은 존재를 쓰러뜨리고 결국 엔딩에서는 세계의 법칙을 좌지우지하는 자리까지 오른다. 그윈을 죽이고 불의 시대를 끝내고, 앵룡을 제압하고 불사를 끊고, 달의 존재를 죽이고 본인이 위대한 자가 된다.


이런식의 인간승리를 외치는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은 낭만주의적이다. 당장 위 엘든링 포스터가 오마주한 그림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그림 하면 거의 항상 제일 첫번째로 언급되는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다. 노인과 바다, 모비 딕, 죠죠의 기묘한 모험, 베르세르크, 진격의 거인 같이 좆간지 씹상남자 주인공이 거대한 운명과도 같은것에 대항하며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면서 인간 찬가를 부르짖으면 거의 대부분 낭만주의적이라고 부르면 된다.


이런 열혈 소년만화스러운 낭만주의가 고추밭인 게임시장에서 굉장히 잘먹히는 컨셉이라 미야자키가 채용한것일수도 있겠지만 베르세르크 오마주도 엄청 많은데다가 본인피셜 인터뷰에서 베르세르크 광팬이라고 한걸로 봐서 사실 그냥 자기 취향을 게임에 100% 반영한것 같다. 애초에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했다면 제일먼저 개좆같은 늪지대먼저 뺐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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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낭만”?



엘든 링도 이 큰 낭만주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이번작은 거기서 한층 더 발전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건 바로 전작들의 이지선다적인 선악구분에서 탈피했다는 점이다. 말로는 불을 계승하라 하지만 그러는건 실질적으로 부질없다는 티를 풀풀내는 닥소3, 순수악에 가까운 재앙과도 같은 위대한자들을 사냥하는 블본, 대놓고 불사는 나쁜거니 없애야 한다고 하는 세키로와 비해 엘든링 에서는 거대한 의지가 만든 황금률 체제도 나름 괜찮아 보이고, 미친불로 하드리셋 하는것도 좋아보이고, 라니눈나랑 별의 세기를 여는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빛바랜자는 명확하게 흑백으로 나뉜게 아닌, 애매한 회색빛의 이데올로기들 사이(Between) 에 놓여져있는 땅(Land), 틈새의 땅(Lands Between)에서 마음에 드는 이데올로기 하나를 골라서 엔딩에 다다랐을때 세계에 덮어씌운다.


야망이 엘든링의 키워드인것에서 알수있듯이, 엘든링에서 이런 회색빛 이데올로기를 실현시키려는 주체들인 데미갓과 일부 NPC들은 독늪 꾸역꾸역 쳐넣는 미야자키 본인 성격이 반영된건지 존나게 고집이 세고 자기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더러운짓도 서슴치 않는다. 툭하면 토사구팽하고 배신하고 이용해먹는 라니, 자기 마을 사람들 다 “가족”으로 만든 라이커드, 사람은 좋은데 황금률의 한계는 본척도 안하고 맹목적으로 체제유지만 하려하는 꼰대할배 모르고트와 라단, 자기 계획 틀어질까봐 부패싸개가 된 말레니아와 페도네크로필리아게이게이 모그는 말할것도 없다.


결국 요약하면 데미갓들은 기존의 선악 기준과 도덕 관념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신념과 가치관을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잔인하게 실천하는 자기초극의 의지와 능력을 가진 자들이라고 묘사되는데 사실 이쯤 되면 내가 누구를 언급할지 눈치챈 사람도 있을거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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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시대가 만들어낸 미친불 같은 새끼 프리드리히 니체다. “신은 죽었다”에서부터 어느정도 알수 있듯이 툭하면 신 고로시하는 프롬겜 전반에 니체철학이 스며들어 있는데, 이건 내 뇌피셜이지만 아마도 마찬가지로 니체철학이 많이 배여있는 베르세르크가 미야자키의 가치관 형성에 크게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니체는 이런 데미갓같은 인물을 위버멘쉬(초인/극복인)이라고 불렀고 인간이 추구해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착하다고 해서 위버멘쉬인것도 아니고, 나쁘다고 해서 아닌것도 아니고, 원래체제에 반발을 해야 위버멘쉬인것도 아니다. 예를들어 예수는 죽기 직전까지도 자기의 옳고 그름을 인류의 평화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설파했기에 위버멘쉬(에 가깝)고 나폴레옹도 사람 여럿 죽였지만 데미갓처럼 자기가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에 따라 행동했기에 위버멘쉬(에 가깝)다. 자기가 자기의 삶의 주체가 된, 나쁘게 말하면 중2병걸린 애새끼같고 좋게 말하면 낭만있는 인생이 니체가 말하는 이상적인 삶이다.


사실 소울류 게임을 한번이라도 클리어한 사람은 모르고 있는 개념이 아닌데 왜냐하면 모든 프롬겜에서 플레이어의 서사가 곧 위버멘쉬로 가는 길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 게임을 누를때마다 평범하게 시작하고, 목표로 이끌어주는 퀘스트마커 따위는 없으며, 존나게 어려운 강자들을 만나서 수십번 패배하지만 그 과정을 오히려 어린아이처럼 즐기면서 성장해가며 자기만의 고유한 세팅과 빌드를 만들어내고 결국 그 끝에서는 자기의 빌드로 스토리상 기존의 체계를 유지시키던 신을 극복하고 자기만의 신념과 가치관을 세상 전체에 반영시키는 엔딩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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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딴게…우버멘쉬?



이번작은 특히나 더 니체맛 함유량이 많아진걸 느끼는 것이, 니체가 당시 그렇게 죽이고 싶어했던 신이 기독교의 신(=기독교적 선악기준과 가치판단)이였는데, 이번작에서 거의 모든 데미갓이 적대했던 체제가 너무 노골적으로 룬의호에 못박히고 까먹지 않고 옆구리에 창까지 찔리신 뒤에 돌아가신 마리카님이 대표하는 황금률이였기 때문이다. 황금률 체제 유지파였던 모르고트의 “사랑받았기에 사랑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사랑했던 것이다”는 아가페적 사랑을 연상시키고, 황금률의 축복이 보장하는 영원불멸 서비스는 기독교의 영원한 사후세계를 떠올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애초에 굿과 배드가 정의되지 않은 세계에서 굿 엔딩이나 배드 엔딩은 있을수가 없고 사람 성격과 가치관마다 굿과 배드가 나뉠 뿐이다. 거대한 의지가 지금까지 잘못한것도 없는데 왜 굳이 모험을 하냐고 생각하거나, 기독교 신자거나, 인간이 아닌 공정한 AI판사가 지배하는 세상이 좋으면 완전률 엔딩 보고, 그래도 죽음은 돌려놓고 싶으면 죽음의 왕자 엔딩 보고, 난 세상이 무너져도 통제당하는건 싫으면 별의 세기 엔딩 보고, 싹다 밀어버리고 싶으면 미친불 엔딩 보고, 모두가 공평해지는 세상을 바라면 좀 좆같긴 해도 똥먹는자 엔딩도 괜찮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아온 미야자키의 가치관을 봤을때 “미야자키가 제일 좋아하는 엔딩”과 “미야자키가 존나 싫어하는 엔딩”은 있다. 그리고 니체뽕을 한사발 들이킨 미야자키 입장에서는 자기의 신념을 노골적으로 안드러낼 이유가 없다.




“사나이 클럽” 별의 세기 엔딩이 진엔딩인 진짜 이유


일단 선행 퀘스트 난이도도 높고, 유일하게 빛바랜자의 반려가 생기는데다가, 컷씬마저 공들였다는 점에서 다들 진엔딩이라고 평가하지만 이 엔딩이 진엔딩인 이유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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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다면 어느정도 눈치챈 사람이 있겠지만 바로 라니의 사상이 그냥 TS된 니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당신은 지금까지 저 털보 아저씨를 보고 고추를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니체의 어록을 하나 보자.


“Indeed, at hearing the news that 'the old god is dead', we philosophers and 'free spirits' feel illuminated by a new dawn; our heart overflows with gratitude, amazement, forebodings, expectation - finally the horizon seems clear again, even if not bright; finally our ships may set out again, set out to face any danger; every daring of the lover of knowledge is allowed again; the sea, our sea, lies open again; maybe there has never been such an 'open sea'.”

“실제로 우리 철학자이며 ‘자유로운 정신’인 자들은 ‘늙은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새로운 새벽빛을 받는 기분을 느낀다. 이때 우리 가슴에는 놀라움, 예감, 기대가 흘러넘친다.


비록 아직 밝지는 않다 하더라도 마침내 수평선이 우리 앞에 다시 펼쳐진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우리 배는 다시 모험을 떠날 것이며 온갖 위험을 무릅쓸 것이다.


인식의 모든 ‘모험’이 다시 허락되었다. 바다가, 우리의 바다가 다시 열리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까지 ‘열린 바다’는 아직까지 한번도 없었으리라.”



그리고 별의 세기 컷씬 엔딩을 위 어록을 머리에 그려보면서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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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라니의 대사를 보자.


Mine will be an order not of gold, but the stars and moon of the chill night.

나의 규율은 황금이 아니야, 별과 달, 차가운 밤의 규율이지.


I would keep them far from the earth beneath our feet.

나는 그것을 이 땅에서 떼어놓고 싶어.


As it is now, life, and souls, and order are bound tightly together, but I would have them at great remove.

생명과 영혼이 규율과 함께 있더라도, 그것이 아득하게 멀리 있으면 돼.


And have the certainties of sight, emotion, faith, and touch... All become impossibilities.

확실하게 보지도, 느끼지도, 믿지도, 접하지도, 전부 못 하는 게 좋아.


Which is why I would abandon this soil, with mine order.

그러니 나는 규율과 함께 이 땅을 버릴 거야.


Wouldst thou come to me, even now, my one and only lord?

그래도, 따라와줄 거지? 하나뿐인, 나의 왕이여...


To every living being, and every living soul.

나는 맹세하겠어, 모든 생명과 모든 영혼에.


Now cometh the age of the stars.

이제부터는 별의 세기.


A thousand year voyage under the wisdom of the Moon

달의 섭리, 천 년의 여정


Here beginneth the chill night that encompasses all, reaching the great beyond.

모든 것이여, 차가운 밤, 아득한 저편을 생각해라


Into fear, doubt, and loneliness...

두려움을, 망설임을, 고독을


As the path stretcheth into darkness.

그리고 어둠으로 가는 길을…


기존의 황금률 체제의 통제를 싫어하고,

실제로 신(두 손가락)을 죽인적 있고,

거대한 의지가 정하는 운명대로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개개인의 자유의지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며(이지의 최면방어헬멧),

남의 자유의지를 뺏으려 하는 사람(셀브스)을 극도로 혐오하고 가차없이 죽이고,

달과 별의 신이 정하는 운명이 있을지언정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서 영향력을 최소화시키고

황금률의 인도가 없어져 두렵고 고독하고 망설일지언정 자기가 자기의 삶의 주체가 될수 있도록, 모두가 위버멘쉬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세상으로 바꾸려 하는 씹상여자 라니…


이정도면 그냥 미야자키의 정신적 이상형을 그린거나 다름이 없음.


그러면 반대로 별의 세기와 정반대되는, 미야자키가 제일 싫어할 엔딩은 뭘까?


“겁쟁이들의 쉼터” “씹게이” 미친불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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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인생에는 고통밖에 없으니 그냥 다 죽고 하드 리셋 시키는게 낫다고 주장하는 미친 불 엔딩이다. 반출생주의가 주로 “힝 낳음당했어ㅠㅠ 그냥 죽을래ㅠㅠ” 하면서 우울증 갤러리 앰생들이 자주 가지는 가치관이라서 좋게 보이지 않을 뿐이지, 불교도 반출생주의고 쇼펜하우어도 “삶은 비존재의 축복받은 고요를 방해하는, 이로울 것이 없는 사건으로 여길 수 있다”며 염세주의의 일부로서 반출생주의를 지지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은유적으로 이런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구역질난다고 개같이 깐적이 있다.


미야자키가 의도적으로 개입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시리즈의 주제와 정반대 노선을 타는 엔딩이라 그런지 어떻게 보면 똥먹는자 엔딩보다 대우가 더 안좋다. 일단 당장 미친불 엔딩을 보려고 하면 얻기 존나 힘든 아이템을 찾기 존나 힘든 장소에서 쓰지 않는 이상 다른 엔딩을 못보고, 미친불 관련 퀘스트라인 NPC들은 부처나 쇼펜하우어처럼 오랜 철학적 고뇌의 결론으로 반출생주의를 택하고 미친 불을 쫓은게 아니라 “아 낳음당한것도 좆같고 세상도 좆같네 그냥 싹다 불타 없어졌으면 좋겠다”에 가까운, 조커가 되버린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이 도달하는 곳이 앰생의 미친 불이다.


제일 결정적으로 스토리상 한건 황금나무용 번개탄 역할 말고는 없는 멜리나가 처음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는게 흉조 지하에서 미친불 루트를 타기 직전이다.



“…당신이 만약 미친 불로 향할 생각이라면


그것만큼은 그만둬


그것은 닿아서는 안 되는 것


모든 삶을, 그 마음을 삼키는 혼돈


이 세계가 아무리 무너지고, 고통과 절망이 있다 한들


삶이 있다는 것, 태어난다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야


그러니까 왕이 되고자 하는 당신이,


그것만은 부정하지 말아줘


…미친 불로 향하지는 말아줘”


뭘 해도 옆에서 멀뚱멀뚱 쳐다보던 애가 미친불만은 악을 쓰고 막는다. 생각하는게 라니랑 비슷한걸로 봐서 라니랑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지만 사실 미야자키 본인이 멜리나 입을 빌려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결론


미야자키는 베르세르크 영향을 많이 받았고, 베르세르크는 니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니체는 낭만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미야자키가 만드는 게임은 전부 <노인과 바다>나 <모비 딕> 처럼 나약한 인간이 존나쎈 몬스터를 악으로 깡으로 때려 죽여서 인간승리하는게 메인 컨텐츠가 됐고, 이번 엘든링은 거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서 등장인물들의 야망 묘사를 통해 니체맛을 더 끌어올렸다. 작품 내에서 "추천"하는 엔딩은 없지만 미야자키가 생각하는 제일 이상적인 엔딩이 진엔딩이라고 본다면 라니 엔딩이고 그 반대는 미친불 엔딩이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