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저, 뱀 모습으로 있었나요...?”

놀란 라야가 살짝 입을 벌렸다가, 본인의 갈라진 혀가 부끄러운듯 재빨리 입을 다물고는 빛바랜 자의 눈치를 살폈다. 어찌보면 멍청해보인다 할 수도 있었지만,  빛바랜 자의 눈에는 그저 한없이 귀여워 보이기만 했다.

“죄송합니다... 제 흉측한 본모습을 보신 이상, 절 믿지 않으시겠죠... 이제 제 이야기도 들어주시지 않겠죠.”

고개를 푹 숙인 라야의 모습에 삧은 쿡쿡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를 듣고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든 라야와 빛바랜 자의 눈이 마주쳤다. 빛바랜 자는 사랑스럽다는 눈빛을 숨기지 않은 채, 부드럽게 고개를 가로지었다.

“제... 제 진짜 이름은 조라야스예요.”

부끄러운 듯 획 눈을 피한 조라야스가 나즈막한 소리로 말했다.

빛바랜 자는 지금껏 틈새의 땅에서 만난 여성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지켜왔었다.
포옹을 요청하는 피아를 정중히 거절했었고, 멜리나와 라니도 그에겐 그저 협력자에 불과했다.
모두 매력적인 여성이였지만, 셀브스같은 인간들의 짓을 봐와서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취향이 아니였던 것인지.
호감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호의. 딱 그정도의 선을 지키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화산관에서 죽여온 뱀들의 생김새와 별 차이도 없는 이 괴물에게 끌리고 있었다.
부드러운 아이보리색의 비늘을 손끝으로 훑어보고 싶었다. 부드러워 보이는 배에 얼굴을 파묻고 싶었다.
갈라진 혀와 얽혀보고 싶었다.
반짝거리는 파충류의 눈동자에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라야, 라야, 조라야스. 윗니를 톡 친 혀가 꼬리처럼 말렸다가 마치 뱀처럼 스- 소리를 내며 풀어졌다. 이름조차 뱀다웠고, 그만큼 아름다웠다.
조라야스, 조라야스, 조라야스. 환각에 걸린 사람처럼 그녀의 이름을 속삭이며 손을 뻗었다.

조라야스는 흠칫, 한순간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그녀도 삧의 손길을 향해 슬그머니 다가왔다.
거칠어지는 숨결을 들킬까, 빛바랜 자는 숨을 참았다. 조라야스의 숨소리도 어느 순간 멎어있었다.
방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빛바랜 자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화산관의 새빨간 배경 위에 매혹적으로 빛나는 조라야스 뿐이었다.

살짝 떨리는 손이 라야에게 닿을락 말락, 머뭇거리고 있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뻗으면 저 비늘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복도에서 타니스의 기사가 걸어다니는 소리였다.
무언가에서 깨어난 듯, 빛바랜 자와 라야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황급히 한발자국 떨어졌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절그럭거리는 갑옷소리와 두 생물의 상기된 숨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빛바랜 자는 천천히 다시 조라야스를 쳐다보았다. 조라야스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 채, 거친 숨만 몰아쉬고 있을 뿐이였다.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실수를 한 게 틀림없었다. 어색해진 관계를 다시 복구하기 위해 어떻게든 사과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빛바랜 자는 황급히 사과하기 위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조라야스는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 손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빛바랜 자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사과같은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참담한 심정으로 별의 물방울을 찾아보려던 찰나, 조라야스가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말을 건넸다.

“화산관의 기사는, 닫혀있는 객실에서 어떤 일이 있던 신경쓰지 않습니다.”

곁눈질로 눈치를 살피는 조라야스와 한순간 눈이 마주쳤다. 갈라진 혀끝이 한순간 낼름, 하고 보였다.

귓속에 혈류가 요동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목구멍에서 뛰고 있는 것 같았다. 땀에 젖은 손으로 엉거주춤 문을 닫았다. 조라야스는 여전히 빛바랜 자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라야...”

빛바랜 자가 라야에게 성큼 다가섰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말끝이 부서질 듯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려는지, 라야가 급하게 발걸음을 뗐다. 하지만 빛바랜 자가 원하는 것은 인간의 형태를 한 라야가 아니었다.
조라야스.
라야의 본 모습이 가장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스럽다는 예쁜 말로 포장하기엔 너무 강렬한 욕망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빛 바랜자가 손을 뻗어 거칠게 라야의 목에 팔을 둘렀다.

“아니, 지금 모습 그대로.”

귓가에 속삭이기엔 귀가 어디 있는지 몰랐기에, 뒤에서 꽉 끌어안은 자세 그대로 라야의 뒷덜미에 스치는 입술의 감각을 즐기며 말했다.

라야의 몸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변온동물이라기엔 너무나도 뜨거운 체온이었고, 너무나도 가파른 숨을 쉬고 있었다. 빛바랜 자의 품에 속박되어 있는 이 생물은 틀림없이 여자였다. 여자인지, 암컷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일까.

라야의 목덜미를 끌어안은 팔이 느슨해졌다. 빛바랜 자의 손바닥이 부드럽게 라야의 몸을 타고 내려왔다. 뱀 수인의 가느다란 팔다리로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

아니, 아니였다.

라야가 원하고 있기에 저항 할 수 없는 것이였다.
라야는 눈을 감고 본능을 받아들였다.
비늘을 쓸어내리는 이 따스하고도 욕심많은 손길에 몸뚱이를 맡겼다.
온몸에 간질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허리를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자신을 지배하는 이 손길이 몸을 타고 내려갈 수록, 몸이 달아올랐다.
애가 탔다.
빛바랜 자의 손끝이 닿는 비늘 하나 하나에 모든 신경이 몰렸다.

라야는 아랫도리가 점점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생식기가 자신의 존재를 라야에게 강요하둣, 뜨겁고 묵직하고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화산관의 주인을 위해 한평생 권유자로 살아온 순진한 라야에게 있어 너무나도 낯설기만 한 발정의 감각이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천박하게 꼬리를 까뒤집고 총배설강을 내보이며 빛바랜 자에게 채워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라야의 욕망에 몸이 응답해왔다. 라야의 꼬리가 점점 들려 올라갔다.

점점 들리던 라야의 꼬리가 빛바랜 자의 가랑이 사이에 턱 걸렸다.

그 순간, 빛바랜 자가 몸을 확 빼더니 라야의 꼬리를 잡아챘다. 이미 흥분되어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꼬리까지 획 당겨진 탓에, 라야는 흐느적거리며 앞으로 풀썩 고꾸라졌다.

라야의 꼬리 끝이 살짝 움찔거리고 있었다.

“...물어봐도 될까?”

말을 건 것인지 혼잣말인지조차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나즈막하게 빛바랜 자가 속삭였다.

“ㄴ...네혜...읍!”

라야는 이런 한심한 암컷같은 대답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수치심에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빛바랜 자는 그 수치심을 곱씹울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빛바랜 자가 라야의 꼬리를 살짝 깨물었다.

“히으윽...!”

차마 참지 못한 신음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졌다. 수치스러웠다. 자신이 나고 자란 화산관에서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이, 자꾸 입으로 음란한 신음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이, 당장 복도에 걸어다니고 있는 타니스의 기사에게 이 소리가 들릴 지도 모른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부끄러웠지만, 조금 흥분되기도 했다.
배덕감으로 이뤄진 안개가 라야의 뇌를 휘젓는 기분이였다.
쾌락이였다.
이 배덕감, 빛바랜 자에게 저항하지 못하는 이 무력함, 이것들에 헐떡이며 굴복하는 자신의 나약함. 이 모든 것이 쾌감이였다.

결국 라야는 완전히 엎드린 채 허리를 들어올렸다.
꼬리를 옆쪽으로 비틀고 살짝 들어올렸다.
부드러운 비늘 사이로 비좁은 틈새가 보였다.
라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컷에게 완전히 굴복한 이 자세야말로, 그녀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해주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였다.

빛바랜 자가 갑옷 끈을 풀었다.

철컹, 철그럭.

갑옷이 바닥에 하나둘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빛바랜 자는 지금 알몸이였다. 라야는 차마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이 기분을, 이 감정을 갖고 고개를 돌려서 그의 남성성을 마주하게 된다면, 자신을 잃게 될 것만 같았다.

라야는 그저 빛바랜 자가 다가와주기만을 기다렸다.

빛바랜 자의 시야에는 꼬리를 까뒤집고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채 소리없이 애원하는 라야가 한가득 차 있었다.
비늘 사이의 틈새에서 약간 촉촉한 액체가 주변을 적시고 있었다. 틈새 입구는 은은한 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살짝 움찔거리고 있었다.

빛바랜 자는 그 틈새에 자신의 대검을 밀어붙였다. 혹시 이 좁은 틈새에 잘 들어가지 못할까 불현듯 걱정이 되기 시작했을 때, 대검이 틈새에 빨려들어가듯 삼켜졌다.

“아으읏...! 하으...하아...”

뱀의 허리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라야의 안쪽이 빛바랜 자에게 달라붙으며 부르르 떨렸다.
라야의 꼬리가 빛바랜자의 허벅지를 휘감아 당겨, 그의 대검을 더 깊숙히 밀어넣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것이 거칠게 움직이며 유린당하기 전에, 라야는 자신의 안을 꽉 채워주는 이 감각을 한순간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 라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빛바랜 자가 상체를 숙여 라야를 끌어안고 허리를 살짝 뒤로 빼버렸다.
스르르 빠져나가는 대검을 붙잡아보기라도 하는 듯, 라야의 안쪽이 빠져나가는 검신에 들러붙으며 대검을 옥죄었다.

“하으…”

어딘가 아쉬운 듯한 탄성이 라야에게서 흘러나왔다.
부족했다. 방금 전의 그 꽉 채워지는 느낌이 벌써 그리워지고 있었다. 조금 더, 조금이라도 더 안으로 들어와주길 원했다. 라야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빛바랜 자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부탁합니다... 더 넣어주ㅅ...히윽! 하...으...흐윽...! 헤읏...! 아... 아읏....읏...하읏....!”

라야의 부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바랜 자의 대검이 뿌리 끝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러고선 만끽할 시간따윈 주지 않은 채, 사정없이 빠져나가다 다시 끝까지 들어와 라야의 구불구불한 생식기 내부를 구석구석 유린하길 반복했다. 가장 안쪽에 박힐 때마다, 라야에게서 요염한 교성이 터져나왔다.

라야의 온몸이 붕 떠있는 느낌이였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탁 풀린 것만 같았다. 라야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해야했던 말들이, 지켜야 했던 모든 것들이, 하나 둘 쾌락에 섞여 날아갔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엔 교미 뿐이였다.
박힐 때마다 한없이 기뻐하고, 입으로는 교성밖에 내지르지 못하는 순수한 암컷 짐승의 모습이였다.

“하아...하아... 흑....읏... 더어...조아...”

액체에 범벅이 된 암수가 접하며 질척거리는 소리, 살갗이 부딫히며 철썩거리는 소리, 빛바랜 자의 밑에 깔린 암컷이 교성을 내지르는 소리.
음란한 소리들이 일정한 박자에 맞춰서 객실 안에 울려퍼졌다.

“하읏! 더어어! 더...! 더조호옷...히읏...!”

반쯤 실신한 암컷은, 모든 것을 망각한 채 그렇게 천박한 부탁만 반복하고 있었다.
더 이상 라야에게서는 순수한 미소도, 호기심 많은 눈빛도, 소심한 목소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빛바랜 자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건 빛바랜 자 자신이 저지른 일이였다.
자신의 대검이 라야를 한번 찌를 때마다, 라야가 자아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빛바랜 자는 멈출 수 없었다.

유연한 뱀의 머리가 뒤를 돌아보았다.
교성을 내지르는 뱀의 입에서 갈라진 혓바닥이 살짝 보였다.
넋이 나간 뱀의 눈은, 계속된 절정으로 초점을 잃고 있었다.
그저 빛바랜 자를 하염없이 응시할 뿐이였다.

그 흐릿한 뱀의 눈과 마주친 그 순간, 빛바랜 자는 오랜 시간 참아왔던 욕망들이 아우성치는 것을 느꼈다.
빛바랜 자는 야만스럽게 라야의 모가지를 끌어안는 동시에 그의 대검을 뿌리 끝까지 깊숙히 박아넣었다.

라야는 그녀의 안쪽에서 대검이 움찔거리며 사랑을 토해내는 것을 느꼈다.

“하아... 하아... 후으... ”

박혀있는 대검을 굳이 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빛바랜 자와 라야는 몸을 섞던 자세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잠시 휴식을 취했다.

“라야, 아니 조라야스”

빛바랜 자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네”

부끄러운 것인지, 라야는 고개를 돌린 채 작게 대답했다.

“사랑해.”

“네? 감...감사합니다. 이 모습의 절 사랑해주신다니... 전...”

“내가 원한 건 그 말이 아닌데”

빛바랜 자가 언짢다는 듯 횡설수설하는 라야의 말을 끊었다.

“다시 말할게. 사랑해, 조라야스.”

긴 침묵이 흘렀다.

“저도, 사랑해요.”

[시리즈] 바레님...
· 바레님...

야설은 처음이라 미숙한티 존나 나는듯
다음에 뭐 쓸지 추천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