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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데문학] 군주로 가는 길 -프롤로그- m.dcinside.com/board/fromsoftware/3481632
[엘데문학] 군주로 가는 길 <1> m.dcinside.com/board/fromsoftware/3481662
"지랄맞은 바람. 지랄맞은 바다..."
전생에선 이리 욕을 달고 살진 않았지만, 아무에게라도 잡고 한번 물어보시라. 이 망할 세계에서 단 며칠만 살아도 이리 안 바뀌겠냐고? 외려 자기 정도면 참 잘 참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벨은 자신이 매우 자기정당화에 능숙한 유형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딱히 그런 본인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판인데, 정중한 체 하는 거야말로 위선 아닌가?
"아.. 한번 죽었었지."
문득 떠오른 진실 앞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여긴 이상한 세계다. 죽어도 죽는 걸로 그냥 끝이 아니다. 분명 이 정체불명의 대륙, 혹은 섬으로 오기 전, 저 다섯 괴물을 상대하기 전, 자신은 저 괴물보다도 더 괴물같은 노전사의 도끼에 반갈쭉이 되었다. 늑골이 갈려나가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깔끔한 타격이었다.
용병왕으로서 나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봤기에 안다. 그 노전사는 그냥 힘만 센 강골이 아니었다. 자기 몸체보다도 큰 그 도끼를 거의 도 수준으로 저리 정교하게 휘두르는 건 인생 전부를 무(武)에 바치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이미 진 싸움에 변명은 필요없다. 그 정도로 깔끔한 승부였다. 시비도 자기가 먼저 걸었으니 더욱 할 말이 없기도 했고. 빌어먹을 에쉬튼. 이럴 때만큼은 허풍이 아니었다니.
그 노전사는 지금쯤 어디있을까? 바다를 건넌다는 헛소리를 중얼거렸던 것 같은데.. 그럼 이곳은 분명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닌 걸까? 근데 그럼 무슨 수로 자신이 바다를 건넌건지, 아벨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보니 되살아난 자들에겐 아주 희미하게나마 황금의 광채가 깃들였다는데... 설마?
거울을 찾아보려다 문득, 아 이곳은 빌어먹을 중세랜드지, 그것도 모든 게 엉망진창에 박살난.. 이라는 현실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 망가진 예배당엔 진짜 얼굴을 비춰볼 아무 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검신에라도 얼굴을 비춰볼까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물가라도 잔잔하면 좋겠는데, 이렇게 거친 파도와 바람이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뭘 기대하겠는가? 그리고...
"무슨 놈의 교회를 이리 깎아내릴 절벽 위에 세워놨어? 자재조달은 어떻게 한 거야? 이 돌들 다 실어올린 건가?"
혼자 외딴 섬에 버려진 느낌이었다. 아니, 실제로도 그러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저 동북쪽으로 거대한 성채가 안개 너머로 흐릿하게 보였다. 물론 워낙 성이 커서 가까워보이는 거지, 머리를 냉철히 비우고 차근차근 둘러보니 정상적으론 도무지 갈 길이 없었다. 일단 이 교회부터가 아득한 절벽 위에 세워져있었고, 그 절벽 밑으론 파도가 넘실거렸다. 요약하자면, 거친 바다 위에 우뚝 솟은 바위섬이 거친 해협을 두고 저 성채와 맞닿은 형국이었다. 성이고 나발이고 일단 이 절벽을 '내려간 후', 또 저 바람이 휘몰아치는 해협을 '건너야'하는데.
"허들이 너무 높잖아? 어떤 수로 저기로 가지?"
이대로 교회에 죽치고 있어봐야 굶어죽기 밖에 더하겠는가? 아무리 이 세계의 인간이 전생의 인간들보다 강인하다해도, 안 먹고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안 그래도 괴물 다섯놈과 연전을 펼치느라 지독할 정도로 허기가 졌다. 하다못해 낚시를 하더라도(할 순 있을진 둘째치고), 여기서 내려가야 했다.
예배당을 샅샅히 뒤져봤지만 이 망할 돌조각엔 먹을만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괴이한 자루에 든 이상한 뼛가루 비스무리한 거 하나만 찾았을 뿐. 버려버릴까 했지만, 뭔가 머리를 울리는 기묘한 울림에 자신도 모르게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나저나 저 시체들은 어떻하지?"
용병왕다운 생각이었다. 비록 온갖 더럽고 잡다한 일을 거듭하며 손을 피로 씻었지만, 그럼에도 용병답게 전쟁도 무수히 치뤘다. 전장 정리는 병사에게도 꽤 중요한 덕목이었다. 시신을 방치하면 그대로 썩어서 전염병의 온상이 되거나 시체를 뜯어먹는 괴물들을 부른다. 더 최악의 경우 언데드로 되살아나거나. 그렇기에 일단 전투가 끝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체는 태워버리는 게 원칙이었다. 매장을 할 수 있는 건 그럴 사치를 부릴 상황 정도가 되어서야 가능했고.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설마 저 괴물들이 언데드로 되살아나면 그게 더 끔찍하지."
한숨 자며 휴식을 취한 덕인지 머릿속은 비교적 명료했다. 잠시 고민하던 끝에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바다가 알아서 해주겠지."
이상하게도, 아니 이 세계의 '인간이란 종'부터가 전생의 인간이 아니다. 몸체만한 특대검조차 무리를 하면 어떻게든 휘두르는 게 이 세계의 인간이다. 비록 아벨에겐 별로 맞지 않아서 애용하진 않았지만. 그런 완력을 가진 게 이 세계의 인간이었기에, 아벨은 낑낑거리면서 귀공자의 시체 하나를 절벽 아래로 차내렸다. 덩치가 저리 큼에도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지간히 높은 절벽이었다.
"염병할..."
탈출이 쉽지 않다는 사실만 재확인했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시체까지 전부 바다 밑으로 굴러떨어뜨렸다. 물론 벗겨낼 건 다 벗겨냈다. 아벨은 어디까지나 용병이다. 돈 될만한 건 다 챙겨야했다. 특히나 아무 것도 믿지못할 이 세계에선 더더욱. 저 끔찍한 악취가 풍기는 두건은 전부 버렸지만, 대충 녀석들이 장비했던 직검과 방패는 몇 챙겼다. 격전 중 부서지거나 금이 심하게 간 건 모조리 버렸고, 대충 직검 두 자루와 방패 하나를 챙겼다. 전부 황금색이었다.
"이건 전투용이라기보단 의장용에 가깝군."
용병다운 시선으로 기다란 직검을 내려다보며 평을 내렸다. 썩 좋은 칼은 아니었다. 허나 완전히 의장용으로 치부하기엔 제법 날카롭긴 했다. 일단 적당히 써먹을 정도는 될까? 방패는 좀 더 나았다. 아벨의 취향엔 전혀 안 맞았지만, 대방패를 하나 갖추고 안 갖추는 것의 차이는 전장에서 생과 사를 가른다. 그렇게 방패를 등에 메고, 클레이모어를 다시 수습한 후, 새로 획득한 직검을 허리에 찼다.
"그럼 이 녀석은... 응?"
왜 이제야 보인거지? 어느 한 여인이 두 팔을 벌리고 있던 석상 근처. 마지막 전투를 지룬 곳이었다. 그 오른편에 아치형 통로가 있었다. 저리 떡하니 있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뭔가 마법이 걸려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 자신의 인식을 저해한 걸까? 어느 쪽이던 실로 불쾌했다.
살짝 아치를 통과해보니 나무조작과 밧줄로 엉성히 이어진 출렁다리가 있었고, 그 너머로 거대한 성채가 보였다.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안개가 너무 흐릿해서 이 거리에선 알 수 없었다.
"설마, 저 다리를 지나면.. 저 성채와 연결된 다리가 또 하나 있는 건가?"
그렇다면 일이 쉬워진다. 이 지랄맞은 절벽섬을 어찌 탈출할지 이런저런 수를 다 떠올려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떡하니 성채와 통하는 길이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자신의 본업은 용병이다. 수없이 많은 중세 영주들을 봐왔고, 일부는 계약에 따라 섬겨보기도 했다. 계약과 돈. 저 두 개면 충분했다. 약속? 물론 떼먹기도 했지. 용병과 성주 둘 다 서로의 잇속을 챙겨먹는데는 이골이 난 족속들이다. 일단 가봐서 나쁠 건 없었다.
혹여나 불운한 기척이 보이면 바로 피할 준비를 갖추며, 아벨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ㅡ삐걱삐걱
출렁다리가 좌우로 흔들리는 모양새가 썩 달갑진 않았다. 그런데...
"...그르르..."
"응?"
갑자기 들려온 스산한 소리. 약간 목을 긁는 듯한 불쾌한 음성. 망설임은 없었다. 아벨은 즉각 앞으로 몸을 힘껏 굴렸다. 바로 그 자리에 뾰족한 다리 하나가 박혔다.
"끼아아아악~~~!!!"
"젠장!"
실수했다. 처리한 놈은 분명 다섯이었지. 이 중 넷은 확실히 시체를 바다로 떨구는 와중에 검을 한번씩 더 박아보며 확실히 숨을 끊었다. 근데 미처 한 마리를 깜빡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방심했다.
살아남은 귀공자가 괴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치명상을 입은 건 확실해서 움직임 자체는 확실히 굼떴다. 문제는 이 빌어먹을 출렁다리가 전장이라는 것만 빼면. 도무지 좌우로 피할 공간이 안 나왔기에, 자연스래 아벨은 뒤로 몸을 뺐고 괴물은 그런 아벨을 쫓아 밀고 들어왔다. 뒤를 살짝 돌아보니 그곳엔 좁은 공간만이 있었다. 성채와의 연결통로는...
"이 빌어쳐먹을 세계!"
없었다. 그냥 좁은 공간이 끝. 그 아래론 깎아내릴 절벽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아래로 다이빙한다면, 그거야말로 신종 자살이겠지. 몇 번이나 속으로 욕을 내뱉는 와중에도 아벨은 침착히 노획한 대방패를 내세우고 괴물에게서 얻어낸 직검을 들었다. 클레이모어를 휘두르기엔 다친 팔이 너무 욱신거렸다. 가벼운 직검이 차라리 최선이었다. 그렇게 몇 번 괴물의 일격을 막아내며 뒤로 물러서던 중.
"키악!!"
피칠갑이 된 귀공자가 갑작스럽게 몸을 띄우며 거칠게 도약했다. 너무도 급작스러워서 아벨은 그만 시선에서 귀공자를 놓쳤다.
"X같은!"
귀공자가 몸을 띄우며 자연스럽게 다리 쪽으로 공간이 생겼고, 아벨은 순진히 용병으로서 본능에 따라 앞으로 굴렀다. 뒤로 던져버린 방패가 괴물의 몸체와 부딪치며 산산조각이 났다. 허나 그 작은 미끄러짐에 괴물의 일격이 살짝 빗나갔고, 그렇게 아벨은 거칠게 다리 중간까지 굴렀다. 녀석의 팔을 튕겨내는 과정에서 손에 쥔 직검도 날아갔다.
어쩔 수 없이 등에 맨 클레이모어를 꺼내 양손으로 굳게 쥔다. 바스타드 소드와 함께 용병들이 흔히 애용하는 이 대검은 몇 번이나 아벨의 생명을 구했다. 에쉬튼은 이 곱쌍한 대검은 힘이 약하다고 평가절하했지만, 글쎄? 빠른 움직임과 묵직한 일격을 함께 선호했던 아벨에게 찌르기와 베기가 모두 용이한 클레이모어는 최선은 아니라도 든든한 친구였다. 천천히 검신을 뒤로 당겼고, 괴물이 막 달려들던 순간.
"뒤져라!"
힘껏 검을 앞으로 쭉 내지르며 찔렀다. 클레이모어 특유의 긴 검신이 공간을 가르듯 찔러나갔고, 그대로 괴물의 얼굴을 후려쳤다. 살짝 빗나간 게 외려 득이 되었다. 빰을 찢기며 얻어맞은 격이 된 괴물이 본인의 힘을 주체못하고 옆으로 굴렀다. 그리고...
ㅡ콰르릉!!
"응?"
예상치 못한 소음이 아벨의 예민한 귀를 때렸다. 순간 바로 검을 들어 얼굴을 가린 채, 아벨은 몇 번이나 뒤로 몸을 굴려 아까 전의 아치까지 되돌아왔다. 그리고...
"이 씨발.. 뭐야?"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며 표정을 구겼다. 아니 경악했다.
다리와 연결되어 있던 저 좁은 공간이... 그대로 무너져내렸던 것이다. 그 위로 굴러내린 괴물의 단발마와 함께...
녀식이.. 본의 아니게, 아벨의 목숨을 건져냈다.
운명의 뒤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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