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려, 나의 왕이시여. ”


마리카는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고드프리에게 손을 뻗었다. 


“나의 반려, 나의 여신이시여. ”


아직 호라 루 의 잔재가 남아있는 거친 손바닥이 마리카의 손을 감쌌다.


황금 나무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났고, 그 빛나는 잎사귀들이 새파란 하늘을 수놓았다.

고드프리와 마리카의 맞잡은 두 손이 하늘 높이 치켜올려지니,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로데일이 떠나가라 울려퍼졌다. 


아름다운 여신과 첫 왕을 태운 황금빛 채리엇이 로데일을 가로지르며 구경꾼의 행렬을 이뤘다. 

형형색색의 꽃다발, 야만 전사들과 기사들이 어우러져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 거북 목 고기와 리에니에산 새우가 지글지글 익는 냄새. 

행진을 끝마치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때쯤, 이미 로데일의 분위기는 신성한 결혼식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먹고 마시는 즐거운 축제가 되어 있었다. 


북적거리던 낮의 축제가 어느덧 밤의 술판으로 넘어갈 때쯤, 묵묵히 자신의 백성들을 바라보던 마리카가 먼저 입을 떼었다.

 

“이제 들어가시지요, 나의 왕이시여. ”


우아하고 우악스러운, 서로 대비되는 한 쌍이 돌아가는 뒷모습이, 한순간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초야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술판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그들을 불러세우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황금 나무의 이파리들이 사박거리며 밤공기에 스치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려올 듯한 별빛들이, 선선한 로데일의 밤공기가, 

규방의 창틈으로 새어들어왔다.


마리카가 침대 위에 살포시 걸터앉았다. 그녀의 희고 매끈한 살결에 은은하게 별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그저 앉아있을 뿐인데도, 여신이라는 존재에 걸맞는 모습이었다. 

여신은 고개를 살짝 들어 어설프게 서 있는 고드프리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호라 루는 야만족의 전사였지만, 단 한번도 정복한 여자를 겁탈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전투, 전투, 피가 튀기고 뼈가 부서지는 전장의 열기를 쫓아왔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고드프리, 첫 왕이었다. 왕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남편이었다. 

갑작스레 떠맡게 된 책임감, 새로운 이름,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마리카의 눈.

아직 초야는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고드프리는 벌써 마리카 앞에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불안했다. 당장이라도 전장으로 도망쳐 누군가의 두개골이라도 박살내어 심신의 안정을 찾고 싶었다. 


고드프리의 불안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인지, 마리카가 손을 뻗어 고드프리의 팔을 살포시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그 손길이 점점 팔을 타고 내려가 손끝끼리 닿았을 때, 하얀 손가락이 부드럽게 야만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끌려간 손의 목적지는 마리카의 어깨, 그 어깨가 받치고 있는 천의 표면이었다. 


고드프리는 흡, 하고 공기를 삼켰다.


야만인의 손길에 천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야만인은 알몸의 여신을 조심스레 눕혔다. 

고드프리는, 호라 루는 그렇게 교접을 시작했다. 황홀경에 빠진 듯, 약간 멍한 눈빛을 하고 살을 섞었다. 그에게 있어서 전사의 희열과는 아예 다른 차원의, 이상야릇한 감각이었다.


한편, 마리카는 신경쓸 것이 많았다.


이 귀엽고 순진한 야만인에게 애초에 기대한 적도 없었다.


기껏 분위기를 잡아 주었더니 목표에 깃발부터 꽂아넣으려 드는 고드프리의 무지함에, 마리카는 속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가로지었다.


그의 부족함을 끌어안기로 마음먹은 마리카는, 아직 촉촉하지도 않은 자신의 육신에 작은 축복을 걸었다. 

이것을 사제들이 알면 대체 뭐라고 이름지을까. “황금 나무의 윤활” 따위의 이름이 붙으려나. 

잡생각을 하며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아직 온화하고 아름다운 여신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루한 교접이 시작되었다.


여자를 다룰 줄 모르는 야만 전사의 무자비한 왕복운동은 마리카에게 쾌락은 커녕 거슬림만 안겨주었다. 

자신의 다리를 어정쩡하게 잡은 채, 마치 개가 교미하는 것처럼 정신없이 허리를 흔드는 한심한 모습에 되려 측은함을 느꼈다. 


행여나 이렇게 실망한 자신의 마음이 드러날까, 여신은 눈을 감았다.


안타깝게도 고드프리는 이 소통의 차단조차 일종의 긍정적인 신호로 여겼는지, 더욱 더 열심히 왕복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로데일의 백성이라면 절대 믿지 못할 이런 방식으로, 결국 하룻밤이 지나갔다.


이런 방식으로, 두 번째 밤도 지나갔다.


이런 방식으로, 일주일 째 밤도 지나갔다.


일주일이 지나고서야, 고드프리는 간간히 원정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원정을 다녀오고, 다시 달이 차오를 동안 생활을 함께 하고, 다시 원정을 떠날 날이 돌아왔다.





“마리카여.”


“또다시 원정이신가요, 나의 왕이여.”


“그렇소. 이번엔 설원을 좀 오래 돌아보게 될 것 같소.”



약간 외로운 듯, 고드프리가 “오래” 라는 말을 강조하며 말했다.


“다녀오시지요, 나의 왕이여. 당신의 처는 이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마리카는 따스한 미소와 함께 고드프리를 다독였다.


짧은 몇 마디 말이 끝나고, 잘 떨어지지 않던 손깍지가 서로 풀리고 나서야, 고드프리는 길을 나섰다. 


첫째 날, 마리카는 정원을 산책했다.

둘째 날, 마리카는 신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셋째 날, 마리카는 로데일의 하늘을 거닐었다.

넷째 날, 마리카는 그저 규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규방에는 마리카와 고드프리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뭔가 심각해보이는 초상화 속 고드프리의 얼굴에, 마리카는 살며시 손을 갖다대며 미소를 지었다. 밤일이 끔찍하면 뭐 어떤가. 고드프리는 정말 따스한 남편이였다.


“절그럭”


무언가 이질적인 발소리에, 마리카는 화들짝 초상화에서 떨어졌다.


절그럭, 절그럭. 무거운 갑옷의 발소리가 규방의 앞을 몇 차례 훑었다. 

무서울 것이 전혀 없는 이 땅의 여신인 마리카였지만, 왜인지 모르게 숨죽여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서성거리던 그 발소리가 이윽고 멀어져갔다.


마리카는 그간 참고 있던 숨을 헉 하고 내쉬었다.

누군가 감히 여신의 침실 앞에서 무장을 하고 기웃거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공포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모른 척 외면하기에는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강렬한 감각이었다.


마리카는 흥분하고 있었다.





다음 날, 비슷한 시각에 다시 그 발소리가 찾아왔다.

절그럭거리는, 묵직한 갑옷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마리카의 욕망도 강해져만 갔다.

그 발소리가 규방 앞 복도에 울려퍼졌다.


마리카는 천천히 규방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 발소리가 규방의 문 쪽으로 다가왔다.


마리카는 문 앞에 다리를 벌리고 주저앉았다.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춰섰다.


마리카는 떨리는 손가락을 자신의 둔덕에 가져다 댔다.


흥분감에 통통하게 부푼 둔덕을 한번 움켜쥔 뒤에, 손가락을 살짝 쓸어올렸다.


살짝 발기된 조그마한 성감대가 그녀의 손가락 끝에 닿았다.


마리카는 부드럽게 작은 로어 열매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언제 그 발소리의 주인이 규방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지 상상하면서, 그녀는 로어 열매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침입자에게 이 상스러운 수음질을 들켜서 그대로 겁탈당하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이, 그대로 겁탈을 당해버리고 싶다는 갈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추악한 망상들과 함께 여신의 두 손가락은 로어열매를 미친 듯이 애무했고, 그렇게 절정에 가까워질 때쯤,


“절그럭”


그 발소리가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그 소리와 동시에 여신은 절정을 맞이했다.

절정의 증거들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여신은 쌕쌕거리는 호흡을 숨기려고 들지도 않은 채, 무언가를 기대하듯이 규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야속하게도 그 발소리는 다시 멀어져갔다.


더이상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마리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서 잠들었다.


다음날의 그 발소리를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