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든링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으면서도 가장 가까운 존재를 꼽으라면 아마 멜리나를 떠올리실 겁니다.
극초반부터 등장에서 무녀 없는 주인공을 보조하고 이동수단도 제공하고 힘도 주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아주 제한적인 정보만을 말할 뿐입니다.
최후에는 자신을 희생하여 엘데 나무를 태우는데 이 또한 그저 자신의 사명임을 밝히며 오히려 고맙다고 합니다, 인도를 받은 것은 자신이라면서요.
이런 떡밥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기에 많은 분들이 정체에 대해서 추측을 했는데요 모두 나름의 일리가 있습니다.
멜리나 자신이 언급한 내력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머니가 있다.
-황금나무 기슭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준 사명이 있다.
-불타고 몸이 없으며 영체이다.
게임의 진행에 따라, 혹은 모습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마 토렌트와 함께 다녔으며 그 선택을 존중한다.
-왼쪽눈이 감겨져 있으며 세 갈고리(손가락?) 문양이 새겨져 있다(라니와는 반대 눈이 감겨져 있음).
-미친 불을 혐오한다.
-어머니가 있음에도 그 의미와 태어난다는 것에 무지하다(보크 관련 대화)
-어머니에게서 받은 사명을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인다.
-왼쪽 눈에 봉인된 힘?(미친 불 엔딩)
이렇게 보면 과연 떡밥덩어리라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단순하게 보아서 어머니가 마리카라고 본다면 멜리나는 황금나무를 태우고 새 시대를 열라는 사명을 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 해도, 멜리나의 왼쪽 눈과 미친 불에 대한 혐오, 영체로서 존재하는 상태에 대한 떡밥은 좀 큰 비약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한 번 멜리나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음모에 밤에 고드윈은 검은 칼날들에게 죽었고 라니도 동시에 자신의 육체를 불태웠습니다.
고드윈은 영혼이 죽고 라니는 육체가 죽었다고 게임에서는 표현하고 있으며 모종의 방법으로 자신의 영혼을 옮긴 라니는 인형으로, 황금 나무 뿌리에 묻힌 고드윈은 기형적인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여기서 특기할만한 것은 고드윈의 죽음이 라니의 죽음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두 사람이 죽음을 부여받았으나 실제로 죽은 것은 한 영혼과 한 육체. 그리고 각각의 나머지 죽지 않은 쪽은 살아있습니다.
그 시절 어쩌면 태양의 왕자와 달의 왕녀는 서로 왕과 반려의 관계를 맺기라도 했던 걸까요?
여하튼 둘이 하나가 되었다면 둘 다 죽었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생명을 성립케하는 요소들 중 한 가지만 죽었음은 둘이 어떤식으로든 연결되어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죽음조차도 교차될 정도로 모종의 방법으로 연결된 그들의 삶이 후에는 어떤 '삶'으로 이어졌을까요?
보이는대로 말하자면 라니는 인형으로 영혼을 옮겼으며 고드윈의 육체는 기괴하게 변형되는 중입니다.
라니의 육체는 불타버린 채로 썩어 리에니에 신수탑 위에 남겨져 있습니다. 고드윈의 영혼은 죽었지요.
그런데 고드윈의 영혼이 죽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영혼과 육체가 따로 나뉜다는 설정을 보면 엘든링의 생명들은 혼과 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혼은 음적이고 백은 양적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돌아가거나 망령이 되며 백은 땅에 흩어집니다.
엘든링 세계관에서는 죽음이란 따로 떼어져서 완곡하게 회피되었습니다.
엘든링의 시점에서는 죽은 자들을 항아리에 모아서 수동적으로(?) 땅(혹은 나무)로 돌려보내려는 시도가 보입니다.
그렇다면 혼은 어떨까요?
일반적인 개념으로 혼은 백 보다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윤회, 순환의 개념에서 근본적인 핵심은 이 혼입니다.
엘든링에서는 죽어도 어느정도는 백과 혼이 연결되어 있는 듯 하며 그렇기에 뼛가루에서 영혼을 불러낼 수 있습니다.
엘든링이 부서진 이상 이 축소된 순환은 오류가 생겼으며 고드윈이 죽음의 왕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죽음이란 보통 돌아올 수 없는, 회귀할 수 없는(황금률에 반하는) 상태입니다.
죽음 가운데 산다는 모순적인 표현은 예로부터 undead라고 불리며 사념, 혹은 원념에 잠식당해 움직이는 것으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표현되지 않은 것은, 다름 아닌 고드윈의 혼입니다.
어쩌면 고드윈의 혼은 육체가 죽었고 엘든링이 깨졌음에도 세계에 남아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걷는 영묘를 계속 지키는
목 없는 기사들의 흉갑.
등의 깃털 장식은 죽음의 새에서 유래했다.
스스로 목을 베어 순사한 후
영혼으로 이 땅에 머물기 위한 저주이다'
영묘 병사, 기사들의 장비 설명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목을 베어냄으로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영혼이 이 땅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걷는 영묘는 재탄을 위해 영혼 없는 데미갓들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들 또한 목이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보아 목을 자른다는 것은, 영혼만 사라진 존재들의 영혼이 흩어지거나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한 의식으로 추측됩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영혼만 죽은 데미갓, 고드윈은 어떨까요?
만약 영혼 없는 데미갓들의 목이 없는 것이 모종의 이유로 육체만 살아서 또 다른 죽음의 존재가 되는 것은 방지하기 위함이라면, 고드윈의 목 또한 이미 베였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목은 바로 스톰빌 성 바닥에 묻힌 '성스러운 유물'이 아닐까요?
의식이 성공적이었는지 실패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고드윈의 육체는 다른 영혼없는 데미갓들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죽은 고드윈의 영혼이 틈새의 땅에 남을 수 있었다면 그 행보는 어떨까요?
멜리나는 여러 차례 자신은 영체이며 불에 문드러졌고 몸이 없다고 언급합니다.
바로 떠오르는 인물은 라니인데 몸이 없고 불에 문드러진 묘사는 라니의 최후와 일치합니다.
또한 영체라고 한다면, 영혼만 남은 인물은 바로 고드윈인데 위에서 말했듯 고드윈의 영혼이 남아있다면, 그리고 황금나무 기슭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의 사명을 받았음을 보면 범위는 더욱 줄여집니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그들의 죽음이 연결되어 있듯이, 그들의 '죽은 것들'이 연결된 결과가 바로 멜리나가 아닐까 합니다.
살아있는 것들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만 회귀와 윤회의 고리가 끊긴 것들은 남아서 자신들만의 유대를 이어갑니다.
멜리나는 운명의 죽음과 차별없는 죽음을 언급했는데, 고드윈이 죽지 못해 사는 존재가 된 것을 보면 이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멜리나의 왼쪽 눈에 있는 문신을 보면 누구는 세 손가락이다, 누구는 까마귀의 발이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새의 발을 닮은 것 같았습니다.
위 영묘 기사들의 방어구를 보면 날개 장식은 죽음의 새를 따라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 문양은 죽음의 새, 쌍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죽음의 새들의 무기 설명을 보겠습니다.
'죽음의 새, 그 날개와 나란히 섬을 허락받은
고대의 사제들이 안는 의식의 창.죽음 의례로 사제들은 새의 수호자가 된다.
그것은 먼 재탄의 계약이라고도 한다.'
재탄은 여기서 다시 등장합니다.
재탄은 걷는 영묘와 관련이 있는 듯 보이는데, 언급했듯 영묘 기사들의 갑옷은 죽음의 새의 장식또한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드윈은 평범한(?) 영혼없는 데미갓이 아니었고 죽음의 주흔을 품고 있는 죽음의 왕자였습니다.
이런 존재를 재탄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어쩌면 옛 신들, 죽음의 쌍조의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고드윈이 다른 데미갓들과 달리 재탄에 실패한 이유도 그의 혼이 이미 재탄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미친불의 엔딩 이후 멜리나의 오른쪽 눈이 죽어버린 것과, 왼쪽 눈이 보라색으로 변해 버린 것도 이와 연관되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왼쪽눈은 어떤 분들은 짐승의 눈, 어떤 분들은 밤빛 눈의 여왕이라고 하는데 둘 다 일리있는 말이거나 어쩌면 같은 말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른쪽 눈을 보면 왠지 뒤틀린 고드윈의 눈과 비슷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죽음의 왕자의 영혼이니 뭔가 연결점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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