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어떤 책에서 지나가듯 읽은 문장이 왜 지금 와서 떠오르는 건지. 다른 사람들은 죽어가면서 주마등을 본다고들 하던데 내게 떠오르는 건 겨우 저따위 잡학이라니.
그래도, 뭐. 육지문어에게 목을 졸려 죽어가는 상황에서 생각하기엔 적당한 주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책에서 본 문장의 뒷부분이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뭐 뻔하지 않겠는가, 인간을 '먹는다' 말고는 다른 내용이 있을리가 없지.
"그러..니까... 빨... 죽이라고" 산 채로 먹히긴 싫거든. 힘겹게 쥐어짜낸 목소리에 응답하듯 문어의 촉수가 더욱 강하게 조여온다.
슬슬 숨쉬기도 벅찬지 머리가 점점 멍해지는걸. 이대로 잠이 든다면 다음에 눈을 뜨는곳은 문어의 뱃속이려나.
......질퍽이고 철벅거리는 둔탁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기쁜 소식이 두가지가 있다는걸 깨달았다. 하나, 우선 난 아직 죽지 않았다. 둘, 최소한 여기가 문어의 뱃속인거 같진 않다. 아마 어딘가의 동굴이겠지, 문어 녀석의 식량 창고일까?
그러나 영원의 여왕, 마리카가 말씀하시길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다고 했던가, 불쾌한 소식도 두가지다. 하나는, 사지가 움직여지지 않는다는거. 또 하나는, 지금 내 다리를 육지문어가 잡고 들어올리는 도중이라는거다.
씨발, 잠들어있을때 먹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머릿속으론 온 힘을 다해 팔다리를 휘저어보지만, 몸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한가지 기묘한것이 있다면 감각만은 살면서 느낀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 민감하게 모든것을 느낀다는것.
그래, 지금 문어녀석의 촉수가 천천히 사지를 휘감고 덩쿨처럼 기어오르는 감각도 불쾌할만큼 또렸하게 느껴진다. 가느다란 촉수 끝자락이 몸을 핥듯이 지나치며 끈적한 점액들을 남기는 감촉.
질척한 점액질들이 피부를 간지럽히자 묘한 쾌감과 흥분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육지문어의 점액질에 최음 효과가 있다는건 책에선 본 기억이 없는데, 죽기 전에 좋은 지식 하나는 얻어가다니 좋네.
촉수가 등허리를 스칠때마다 다리 사이의 골짜기에도 찌릿한 감각이 가볍게 전해져 어느새 축축히 젖어드는게 느껴진다. 그 이상은 참기 힘들다고 생각이 들 즈음, 문어녀석의 촉수중에서도 가장 두꺼운 물건이 파고들어왔다.
"흐으윽.... 아, 아흣"
기습적으로 파고든 촉수가 꿈틀거리며 더욱 깊은 곳으로 올라가는게 느껴진다. "으..흐읏.. 이, 씨발...으흑, 앗!"
길이에 끝이 없어보이던 문어의 촉수는 어느새인가 밑둥만을 남기고선 모두 내 몸 안으로 사라져있었다. 터질듯 부풀어오른 배가 괴로워 차라리 기절하는게 편할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문어녀석은 아직 끝이 아니었던건지 뱃속에서 얽힌 촉수들을 거칠게 꿈틀거리며 잠깐의 휴식조차 주지 않는다. 아니, 촉수가 꿈틀거리는게 아니라... 무언가를, 내 뱃속으로 밀어넣는거다.
이젠 신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저 미끈거리고 꿈틀거리며 천천히 빠져나가는 촉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선 계란정도 크기의 이물들이 하나씩 몸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느낌에 움찔거릴 뿐.
'육지문어는 번식을 위해 인간을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