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내용을 빛바랜 자의 일지에서 발견했습니다. 라니 님. 그러니까 저 말고 이지나 셀브스를 전쟁 축제에 보내면 안 되겠습니까?”
라니는 머리를 짚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저번에 함께 대리윌을 처단할 때까지만 해도 블라이드는 무위가 대단한 자를 만났다, 반드시 영입해야 한다면서 주인 만난 개처럼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길 하나는 지지리 못 찾는 탓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빛바랜 자의 일지를 찾았고, 그게 발단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라니 님. 저를 묶어두고 라니 님 앞에서 그... 젠장, 그걸 하고 싶다든지, 심지어 이지와 저를 그런, 그, 괴상망측한 관계로 묶고 싶다는 내용까지 있었단 말입니다!”
분명 충성 서약을 하고 대화를 나눌 때까지는 괜찮았다. 빛바랜 자가 유독 블라이드에게 여러 번 말을 걸 때도 전사끼리의 동질감이니 동료애니 그런 건 줄 알았다. 하지만 블라이드가 가져온, 그러니까 빛바랜 자의 일지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온갖 흉악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특히 블라이드에 대해서. 라니는 뒤쪽에 그랭까지 언급되자 그만 읽다 말고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그걸 블라이드가 본능적으로 주워오고 나서도, 그 물건은 둘 다 손도 대기 싫은 에오니아 꽃 같은 존재였다.
“그래. 셀브스나 쓸 법한... 아니지. 셀브스도 안 그러겠군. 어쨌든 빛바랜 자가 그런 내용을 썼다고 쳐. 하지만 블라이드, 어떠한 욕구를 단지 기록하는 것과 행하는 것엔 큰 차이가 있어. 그리고 그는 분명 훌륭한 전사잖아.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라니 님!”
“그래. 이지나 셀브스를 보낼 수도 있지. 하지만 이지는 너도 알다시피 학자고, 셀브스는 마법엔 뛰어날지언정 강하지는 않아. 그리고 설령 빛바랜 자가 너를... 한다고 해도, 너는 충분히 저항할 수 있잖아. 그렇지?”
“...예, 그러겠습니다.”
블라이드는 더 반박하지 못하고 황송하게 물러났다. 저래놓고 또 빛바랜 자가 자신을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면서 돌아올 게 뻔했지만, 그래도 지금의 두통은 면할 수 있었으니까.
의외로, 블라이드는 그 이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 축제가 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오, 너인가.”
빛바랜 자가 블라이드의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블라이드는 대놓고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최대한 외면했다. 하지만 빛바랜 자는 블라이드 앞에서 방방 뛰며 관심을 주지 않을 수 없게 행동했다.
“그래, 죽지 마라. 라니를 위해서라도.”
빛바랜 자는 나름 만족했는지 검을 어깨에 이고 통곡 사구로 향했다. 곧 제렌이 축제를 선포했다. 그래도 전사로써, 블라이드는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칼과 엄니로 길을 연다. 라니를 위해.
가장 전설적인 데미갓이 다시금 별을 부수기 위해 일어선다.
라단의 힘은 여전히 강대했다. 블라이드는 생에 처음으로 압도적이라는 표현을 체감했다.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운석이 떨어지고, 모래가 파도처럼 출렁이며, 하늘이 불타올랐다. 블라이드 자신도 위압감에 잠시 굳을 정도였다.
하지만 빛바랜 자는 장검 하나만 들고, 자유자재로 영마를 부리며 라단의 운명을 종결지었다. 그야말로 영웅적인 무위에 라단 축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폐회식을 맞았다. 사구의 정점에 서서, 블라이드는 땅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별을 보았다. 그리고 비록 전락했더라도, 저런 영웅을 패퇴시킨 빛바랜 자가 어떤 존재인지도.
밤하늘을 바라보던 블라이드에게 빛바랜 자가 다가왔다.
“아, 너를 기다렸다. 싸우는 모습이 굉장하더군. 이 축제의 영예는 틀림없이 라단과 너의 것이다.”
축제 전까지만 해도 빛바랜 자에 대한 의심이 가득하던 블라이드였지만, 그가 얼마나 뛰어난 전사인지 다시 확인하자 태도가 유해졌다. 라니에게 큰 도움이 될 테니, 조금은 믿어도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항상 진지한 그지만 웬일로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그리고, 봤나? 설마 눈앞에서 별이 떨어지다니! 라단도 엄청난 걸 봉인하고 있었군그래. 그야말로 신화의 영웅이야.”
빛바랜 자는 동의를 표하듯 연속적으로 앉았다 일어났다. 블라이드는 미소를 지우고 기쁨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이걸로 길이 열렸다. 라니의 운명, 노크론으로 가는 길이. 별이 떨어진 곳에서 만나자. 그리고 또 함께 싸우자, 라니를 위해.”
그리고 블라이드는 몸을 돌렸다. 거성이 떨어진 곳은 림그레이브 어딘가. 블라이드는 방향을 가늠해보고 높은 곳을 향해 울부짖은 후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도르래 석궁이 작동하는 소리와 함께 블라이드에게 세 발의 화살이 꽂혔다. 블라이드는 반사적으로 화살을 뽑고 확인했다. 은은한 보라색 기운, 수면 화살이었다.
“이게... 무슨, 짓...”
그리고 세 발의 화살이 추가로 날아들었다. 블라이드는 기습, 그것도 빛바랜 자에 의한 기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게 블라이드가 황금나무의 빛을 본 마지막 날이었다.
씨발새끼가
내용은 좆같지만 잘 썼다 - dc App
게이퍼리충은 또 신박하노
시발ㅋㅋㅋㅋ
흥미롭네요.....
"유혹의 나뭇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