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알터고원에 내려가 살 때다. 파름아즈라 왔다 가는 길에, 불가마역으로 가기 위해 로데일에서 일단 멜리나를 내려야 했다. 로데일 맞은편 왕좌에 앉아서 사자를 찢어 파는 노인이 있었다. 사자를 한 마리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사자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찢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찢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찢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찢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태워야 할 멜리나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찢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뒤질 만큼 뒤져야 엘데의 왕이 되지, 불사대가 재촉한다고 엘데의 왕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쌀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찢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멜리나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멜리나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찢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재상이란 제대로 죽여야지, 찢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찢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하수도에 모르고트를 버리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사자를 찢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사자다.


멜리나를 놓치고 미친불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황금나무 속 후타나리 마리카 야짤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사자를 내놨더니 라니는 예쁘게 찢었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라니의 설명을 들어 보니, 모가지가 너무 멀쩡하면 전투를 하다 참견을 잘하고 내좆대로 하기에도 힘이 들며, 모가지를 대충 찢으면 역으로 주인을 찢어버린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모독(冒瀆)은 가족이 떨어지면 배율자를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성검으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모독 가족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모독에 가족을 붙일 때, 질 좋은 용암에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화산관의 규율대로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목을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화산관의 규율대로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불량배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삶은 새우를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九拯九暴)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새우를 쪘는지 대변을 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새우를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모판으로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룬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룬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룬을 만들어 냈다.

이 사자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빛바랜자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재상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날고기경단에 녹의 오줌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황금나무 속 후타나리 마리카 야짤을 바라보았다. 검은 돌무대에 날아갈 듯한 룬의 호 끝으로 마리카가 라다곤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TS물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사자를 깎다가 유연히 황금나무 속의 후타나리 여신 야짤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조라야스가 삶은 게를 뜯고 있었다. 전에 라야를 사자로 위협해서 목걸이를 빼앗던 생각이 난다. 사자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 하는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擣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擣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20220225년 전 사자 찢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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