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백의 방랑자 ~
붉게 빛나는 태양이 저물고, 암월의 밤이 밀려온다.
급격히 어두워지며 안개가 깔리는 산기슭에서, 화톳불이 타오른다.
나선의 불꽃 앞에 지친 기색의 귀인이 털썩 주저 앉았다.
한 동안 가만히 쉬다가, 병에 재를 채우며 장비를 손질하던 중
이상한 낌새를 느낀 귀인은 급히 몸을 날려 자리에서 벗어났다.
- 콰앙!
땅에 깊숙히 박힌 대형 화살이 어디에서 날아온 건지 확인하기 위해
나무 뒤에서 고개를 내민 귀인에게, 용의 활을 멘 방랑자가 대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신기루처럼 붉게 일렁이는 방랑자는 재수없을 때 나타난다는 소문의 그 암령이었다.
암령은 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서도 자기만큼 거대한 대검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귀인은 대검이 나무에 가로막힐 줄 알고 나무 사이사이로 움직였지만,
대검에 닿은 나무는 풀떼기처럼 잘려나갈 뿐, 검의 궤적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의 괴물같은 공격을 가까스로 피하던 귀인이 도착한 곳은 낭떠러지.
당연히 떨어질 생각은 없었던 귀인은 뒤로 돌아 암령을 마주했다.
하지만 나무도 숭덩숭덩 베어넘기는 무식한 대검과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한 귀인이
다시 낭떠러지 쪽으로 몸을 돌린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마력병에 암령이 맞아 날아갔다.
마력병이 날아온 방향에는 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가 서있었다.
휘청거리며 일어난 암령이 백색의 기사를 보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자,
기사는 탈리스만을 자신의 검에 대고 기적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가 진중하게 기적을 읊자, 검이 밝게 빛을 발했다.
암령의 몸이 흔들리고 발이 땅에 박힐 정도로 전력으로 휘둘러진 거대한 대검이
기사의 빛나는 검과 부딪치자 충격파가 일어 주변의 풀과 나무들이 흔들렸다.
나무도 저항 없이 잘라버린 위력의 대검이었지만, 그에 맞선 기사는 전혀 밀려나지 않았다.
암령은 양손으로 대검을 잡고 기사를 힘으로 밀어붙였으나
암령만 부들거릴 뿐, 기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직한 기도의 힘이었다.
이번엔 기사가 검의 핸드가드를 이용해 대검을 옆으로 밀어내자,
대검을 양손으로 쥐고 있던 암령이 간단하게 밀려났다.
기사가 암령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수세에 몰린 암령이 무언가 눈치챈 듯 기사의 손을 바라보았고,
다음 순간 품에서 단도를 꺼내 재빨리 기사의 손가락을 잘라냈다.
손가락이 잘린 기사는 주춤거리며 물러났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암령이 다시 한번 전력으로 대검을 휘둘렀다.
손가락이 잘려 검에 힘을 제대로 싣지 못한 기사는 자신의 검과 함께 대검에 퉁겨져 나가떨어졌다.
잘려나간 기사의 손가락에는 여러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광기에 젖은 표정으로 쓰러진 기사에게 다가가던 암령의 뒤통수에,
웬 돌멩이가 날아와 부딪쳤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끼어들 수준이 아니란 것은 느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구해준 기사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던 귀인이 던진 것이었다.
암령은 그제서야 본인이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난 것처럼
다시 귀인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귀인을 향해 달려드는 암령의 뒷모습을 본 기사는 무언가 결심했는지,
갑옷과 투구를 벗어두곤 암령을 뒤쫓아갔다.
귀인과 암령이 맞붙기 직전, 기사가 암령에게 몸을 던져 함께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졌다.
암령의 이성을 잃은 표정과, 자신을 위해 처절하게 몸을 던진 기사를 본 귀인은
다리가 풀려 한동안 낭떠러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난 귀인은 기사가 놓고 간 순백색의 갑옷과 투구를 챙겼다.
혹시라도 살아있을 기사에게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잘려진 기사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들을 본 귀인은 그 자리에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다.
잘려진 손가락의 굴곡은 매우 익숙했고,
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들은 어두운 거짓의 반지를 제외하곤 모두 자신과 똑같은 반지였다.
그는 분명 자신이 기억하는 기도를 읊었고, 자신과 똑같은 탈리스만을 들고 있었다.
귀인은 그제서야 그 기사가 다른 세계의 자신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결심한 듯, 순백의 갑옷을 차려 입고 길을 나섰다.
어딘가 지쳐서 쉬고 있을 또 다른 귀인을 돕기 위해.
fin.
나 도와주러 온 백령이었는데 거짓 반지 끼고 있던 거랑
그 백령 룩이 괜찮아서 갑빠 따라입고
백령 지원 가던 거 생각나서 써봄
무한루프 영체물인가 - dc App
뭐지 똥3인가? 근데 하얀 갑옷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