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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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든문학) 미친 불의 왕 1“오랜만이야, 빛바랜 자... 이젠 미친 불의 왕인가.” 멜리나가 오른손에 단검을 쥔 채 빛바랜 자 앞에 서있었다. 미친 불과 하나가 되어버린 빛바랜 자의 얼굴에서 원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노란 불길의gall.dcinside.com별이 선명하게 보이는 깊은 밤, 로데일의 안뜰 축복에 빛바랜 자가 앉아있었다. 평소라면 잠을 청했을 시간이지만 무언가 깊은 고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그가 멜리나를 불렀다.
“룬을 힘으로 바꿔줘.”
멜리나가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었다. 빛바랜 자가 투구와 장갑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가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멜리나의 손을 잡았다.
“맨손을 만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
“... 네 손을 잡아보고 싶었어.”
빛바랜 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멜리나를 바라보자, 그녀는 얼떨결에 시선을 피했다. 멜리나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방황했지만, 빛바랜 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응시했다. 멜리나는 하는 수 없이 눈을 감은 채 그의 룬을 힘으로 바꿔주었다. 그녀는 의식이 끝나자마자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용건 없으면 이만 가볼게.”
빛바랜 자가 떠나려는 멜리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조금만 더 옆에 있어줘.”
멜리나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잠시 고민하더니 빛바랜 자에게 등을 돌린 채로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축복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음에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빛바랜 자는 멜리나 쪽으로 한 뼘만큼 더 다가가 등을 맞대고 앉았다. 별빛 아래서 메아리치는 풀벌레 소리만이 두 사람 주위를 맴돌았다. 한참 뒤에 빛바랜 자가 적막을 깼다.
“나의 무녀가 되어줘서 고마워.”
“... 거래일뿐이야.”
"내가 동굴에서 독 늪에 빠져 쓰러졌을 때, 정신을 차릴 때까지 네가 곁에 있어줬잖아. 사실 그때 네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일부러 늦게 깨어난 척 했어."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리에니에에서 꽃다발을 만들어 너에게 줬을 때, 너는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붉어진 볼이 눈에 띄더라. 그게 어찌나 귀여워 보이던지...”
빛바랜 자가 고개를 슬쩍 돌려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나는 엘데의 왕이 된 이후로도 너와 계속 함께 하고 싶어. 나에겐 너와 함께 하는 순간이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말 미안해, 지금은 그 말에 대한 대답을 해줄 수 없어.”
“그래... 그 이유는 말해주지 않겠지. 언제나처럼.”
멜리나는 그동안 자신의 대한 질문에 늘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녀가 빛바랜 자를 처음 만난 날 말했던 숙명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비밀이 많은 여자는 멀리 하라고 하셨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비밀투성이인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의 착잡함을 대변하듯, 밤공기를 가르는 바람이 한숨소리를 흉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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