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리나.”
빛바랜 자가 축복에서 멜리나를 불렀다.
“황금나무를 불태우려면 영혼을 바쳐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멜리나의 표정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로 스스로를 희생할 생각이야?”
그녀가 잠시 침묵했다.
“그래, 그게 내 숙명이야. 이 세계를 바로 잡기 위해서 황금나무를 태울 불씨가 되는 것.”
“지난번에 대답을 미룬 게 이것 때문이구나. 거인의 불가마에 도착할 때까지 비밀로 할 생각이었겠지.”
“미안해...”
“난 이 계획 반대야.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어.”
“다른 방법이라니,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당신 설마...”
“미친 불을 찾아가겠어.”
“그건 저주받은 힘이야. 미친 불의 병에 걸린 사람들을 봐. 그 힘을 다룬다고 해도 고통 받는 건 병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게다가 그 힘은 이 세계를...”
“나는 널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해.”
빛바랜 자는 멜리나를 뒤로 하고 원탁으로 이동했다. 그가 떠난 축복에서는 멈춰달라는 멜리나의 절규만이 울려 퍼졌다.
똑똑, 빛바랜 자가 기드온 오프닐 경의 서재 문을 두드렸다.
“접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드온의 책상에는 정체 모를 서적과 종이들이 쌓여있었다.
“무슨 일인가? 축복의 왕을 쓰러뜨렸다는 소식을 들었네만.”
그는 무언가를 적는 데에 열중이었다.
“미친 불에 대해 아십니까?”
빛바랜 자의 질문에 글자를 써내려가던 기드온의 손이 멈추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빛바랜 자를 바라보았다.
“예상 밖의 질문이군. 무녀를 살리기 위해서인가.”
“결정은 제가 하겠습니다. 미친 불에 대해 알려주십시오.”
기드온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먼 옛날 샤브리리라는 자가 큰 죄를 지어 두 눈이 뽑히는 형벌을 받았다네.”
샤브리리. 분명 조금 전에 빛바랜 자가 거인들의 산령에서 만난 자였다.
“두 눈이 있던 자리에서 미친 불의 병이 처음 생겨났고, 그 병이 틈새의 땅에 퍼져 샤브리리는 이 땅에서 가장 원한을 많이 산 사람이 되었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 처음으로 엘데의 왕에 가까워진 빛바랜 자가 나타났네. 그의 이름은 바이크. 그 역시 자네처럼 무녀를 살리기 위해 미친 불을 받아들였지만 그 뒤로 돌연 행방불명이 되었어. 그밖에 미친 불의 증상에 대해 아는 바가 있지만 자네가 궁금해 할 것 같지는 않군.”
“다른 내용은 없습니까?”
“미친 불은 틈새의 땅의 아픈 역사 중 하나라서 남아있는 기록이 별로 없다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드온 경께서는 엘든 링을 수복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 세계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네. 내 역할은 빛바랜 자가 엘데의 왕이 되도록 도움을 주고, 이 세계가 이끄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이지.”
“백금 마을 일처럼요.”
투구에 가려진 기드온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래, 그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이지.”
두 사람 간에 흐르는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알겠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빛바랜 자가 기드온에게 목례를 하고 서재를 나섰다.
“이 또한 빛바랜 자의 운명인가보군.”
서재의 문이 닫히기 직전, 기드온의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틈새의 땅의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기드온조차 미친 불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샤브리리를 만난 것도, 바이크라는 자에 대한 것도, 영 찜찜한 것투성이였지만 빛바랜 자는 마땅히 미친 불에 대한 정보를 얻을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칼레나 블라이드는 뭔가 알고 있으려나. 원탁의 대축복에서 빛바랜 자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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