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공격을 맞은 말레니아는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다시 몸을 일으켜보려 했지만 이미 가망이 없었다.

불패의 칭호를 가진 그녀였음에도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파쇄전쟁 최강의 데미갓이라더니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군."


말레니아는 의수도에 기대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상처투성이인 것은 그녀의 몸 뿐만이 아니었다.


"어이, 수고했다 핀레이."


불쌍한 말레니아는 분노에 차 손을 벌벌 떨었다.

함께 온 전장을 누비고 다녔던, 친동생과도 다름없던 핀레이...

새하얀 영체는 오랜 주군이자 친구인 말레니아를 끝까지 알아보지 못했다.

자의식조차 사라져 삧에게 복종하는 노예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머리론 알고서라도, 도저히 공격할 수 없어 주춤한 틈에 얻어맞은 낫질만 십수번은 되었다.

핀레이... 핀레이... 살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건만...


"이렇게 재회해버린 건 안타깝지만, 이것도 공략이지."


삧의 가증스러운 낄낄거림이 나지막히 들렸다.


"나도 네가 주변 사람들을 그렇게 아낄 줄은 몰랐어."

"미켈라였나. 그렇게 소중한 듯 대했으면서도 정작 사라지니 넋놓고 멍이나 때리고 있었..."


오. 입에 담긴 그 말은 대변먹는 자의 것인가?


"...!!"


남은 힘을 쥐어짠 말레니아는 마지막 일격을 휘둘렀다. 오빠에 대한 모독은 사상 최강의 빛바랜 자에 대한 공포마저 잊게 만들었다.

그러나 헛된 일이었다.

그녀조차 메커니즘을 파악하지 못한 전기 <구르기>는 손쉽게 공격을 흘려버렸다. 최후의 저항은 스치지도 못했다.


"귀공을 죽여버리겠다..."


데미갓으로서 품격을 버리지 않은 말레니아는 결국 쓰러져 버렸음에도 여전히 불타는 굴지를 보였다.


"죽어봐야 리트하면 그만이다."

"너는 고붕... 아니 고드릭처럼 놀리는 재미도 없군. 입 아프니까 이제 미켈라의 침을 내 놔."


얄미운 자여... 네 목적은 그것이었나. 미켈라가 만든 기적의 침. 말레니아가 가지고 있는 미켈라의 유일한 흔적...


"더러운 미친 불의 개에게... 어울리는 물건이 아니다..."


그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삧의 면갑 뒤에서 누런 불꽃이 잠깐 일었다.

그랬다. 그는 홧김에 받아들인 미친 불을 철회하기 위해, 그렇게 또 한 번의 배신을 하기 위해 평화로운 성수를 뒤집어엎고 모욕한 것이었다. 황금나무의 천벌 있으라!


"너에게 더럽다는 말을 들으니 좀 기분이 상하는구나.... 뭐 마음대로 생각해라. 난 내 무녀를 살리려고 샤브리리를 속인 것 뿐이야."


삧의 어깨 너머 멀리에서 불만 가득한 표정의 멜리나가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내 식구가 소중하거든... 마지막으로 묻겠다."


그의 말에서 장난기가 사라지고 분위기가 다시 서늘하게 바뀌었다. 양심없는 자여...

불쌍한 말레니아의 목에 칼끝이 닿았다.


"미켈라의 침은 어딨지?"


...말레니아에게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겐 지금까지 아껴둔 힘, 붉은 부패의 개방이 남아 있었다.

총명했던 장군 라단을 지체장애 1급으로 만들어버린 그 힘이라면 한낱 빛바랜 자 따위 한방이었다.

하지만... 이미 케일리드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만들어버린 그녀는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그 꽃을 틈새의 땅에 다시 피우고 싶지 않았다.

말레니아는 입을 꽉 다물고 문드러진 눈을 감았다.

오라버니... 못난 동생 먼저 가요...



1초.


2초.


3초.



...

왜 망설이지? 양심? 연민? 용서?



"에라이, 고집이 고룡 심줄만하기로는 딸래미랑 똑같구만!"


그럴리가 없건만 질려버린 삧은 검을 집어던지고 괜히 성을 냈다.


"좋다. 바늘따위 널 죽이고 여기저기 뒤져보면 금방 나와. 휘석열쇠처럼."

"그러니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황금나무 맙소사! 그냥 심성이 뒤집어진 자여!



"핥아봐라."


!


삧은 지고한 데미갓의 얼굴 앞에 토렌트 털묻은 부츠를 들이대는 정신나간 짓을 저질렀다.


"핥아보란 말이다. 핀레이의 유골 돌려받고 싶지 않아?"


말레니아는 경악했다. 저자가 지금까지 쓰러뜨린 모든 데미갓들이 저딴 조롱 속에 죽어갔단 말인가?

라단도? 모르고트도? 라이커드도?


"내가 시키면 인삿말 정도는 할지도 모르지. 본인이 그걸 이해할는진 모르겠지만... 푸하하!"


그녀는 이를 갈았다. 전방의 미친놈을 태워버릴 듯 노려봤다.

오래 전 잊어버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황금나무의 천벌 있으라!


"눈물샘은 아직 싱싱한가 보구나!"


...


...절대


"적사자 기사들도 그렇게 울던걸 말이야."


...


...이딴 놈이 엘데의 왕일 리 없다.


"아, 핥으면 딸래미 유품도 돌려주지."



...그럴 순 없다.


"뭐 됐다. 붉은 부패는 세탁도 힘드니까... 그럼 침을 찾아볼까?"


침략자는 등을 돌려 신성한 성수 뿌리로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사명을 잃어버린 말레니아의 심장에 다시 불꽃이 일어났다.


미켈라를 잃고 텅 비어버렸던 마음에. 다시 채워지는 정의로 가득찬 결심 하나.


"기다려."


심장에서 시작된 붉은 불꽃은 그녀의 몸을 뒤덮었다.



"붉은 꽃은... 다시 핀다."


아름다운 에오니아가 밝게 타올랐다.


"귀공은 끔찍한 것을 보게 되리라."


틈새의 땅의 재앙은 이제 부패의 여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조잡한 싸움을 해본들 이제 말레니아를 이길 상대는 없다.



"이제..."



상대가 죽음의 룬일지라도...

원탁의 영웅일지라도...

미친 불의 수괴일지라도...




"썩어라."



엘데의 왕일지라도 말이다. 오. 빛바랜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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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몸에 새겨라.


















*자료출처: 엘데의 왕 인성논란 진상규명 위원회 성수지부 규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