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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때는 파쇄전쟁 말기... 틈새의 땅이 광기에 젖었던 당시...



고드릭 님의 천재적인 외교술은 림그레이브가 중립지대로 남도록 했고 덕분에 림그레이브만이 천지가 개벽하는 난리를 겪지 않고 안전했다...



그 여자가 오기 전까진 말이다.


미켈라의 면도칼인지 미친개인지 하는 전쟁광 여자. 말레니아.



말레니아를 불패의 장군으로 과대평가하기 전에 이 사실만을 기억해 달라. 그 여자와 귀부기사단이 림그레이브에 저지른 짓을.

중립선언을 무시하고 처들어와 스톰빌 성을 포위했던 일을.


그때 나는 병사들과 성벽에서 최후 항쟁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는 뻔한 일이었다. 림그레이브를 약탈하여 보급을 채운 최강의 기사단을 겨우 농사나 짓고 살던 농민군이 상대해야 한다니...

그것도 고드릭 님의 통치 하에 태평성대를 살던 이들이...


"애드거. 여기 있었군."


그때 황금의 군주께서 갑옷을 입고 내 앞에 나타나셨다.

몸도 약하신 분이 친정을 하러 출전한 것이었다.


"전하! 제가 지켜드릴테니 성 안에 계시라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내 말은 감동과 긴장이 서려 떨리고 있었다.


"나의 먼 조상, 고드프리께서 말씀하셨지."

"전사는 침대에서 죽을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이야."


고드릭 님께서 미소지으며 말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저리 평온하실 수 있다니...


"고드릭 님 만세!"

"우리 전하를 위해 끝까지 싸우자!"

"림그레이브를 피로 적시자!"


성벽의 수비군들도 사기가 고무되어 전하를 둘러싸고 함성을 질렀다.

좀 전의 벌벌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고드릭 님이 마법을 쓰신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 분이 태생적으로 가진 카리스마 덕이었을까?



그때였다.


성 코앞부터 지평선까지 까마득히 차 있는 귀부기사 포위군들 속에서 전령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여자 기사가 종이를 꺼내 들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읽었다.


"나는 귀부기사 핀레이다! 말레니아 님을 무시한 군주참칭자 고드릭은 들어라!"


이 말에 흥분해버린 나머지 난 즉시 미친년에게 활을 겨눴다.

고드릭 님께서 조용히 제지하지 않으셨더라면 난 그년을 쏴죽였을 것이고, 즉시 성은 박살이 나버렸을 것이다. 아...!


"말레니아 님은 천한 네놈에게 분노하셨지만 아직 관용을 거두지 않으셨다!"

"고드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죽던가, 그냥 성을 내주던가. 뻔하다.


"귀부기사단의 압도적인 힘에 개박살이 나던가!"


"말레니아 님의 신랑이 되어라!"


어?



"아 미안하다. 눈에 자꾸 부패가 껴서..."


그래. 아무튼 뻔한 소리겠지. 죽던가...


"말레니아 님의 신랑이 되어라! 어... 뭐야?"


무슨 흉조같은 소리인지 핀레이도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나도 그랬다. 뭔 흉조소리야?



"말레니아 님, 간이 부은 누군가 대본에 장난질을...!"


핀레이가 저 멀리 호위병에 싸여있는 말레니아에게 고했다.



"아니야 핀레이. 그 말이 맞다."


말레니아가 말했다. 어느새 미소까지 짓고 있었는데, 이 뭔...




"거짓말... 언젠 내가 제일 좋다면서!"


핀레이는 울먹이면서 어디론가 뛰쳐나갔다.



"저런... 그냥 직접 말하지. 야 고드릭!"


고드릭 님의 표정은 그야말로 대변먹은 표정이었다.


"나와 결혼하자!"


"네 거대한 룬은 엘든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 내가 여신이 되면 넌 엘데의 왕이 될 수 있다!"

"네 룬과 인품에 반했어! 함께 로데일을 처부수고 황금나무로 들어가자!"


내가 들어본 프러포즈 중에 가장 역겨웠다.



잔혹한 귀부기사들의 포위진 속에서 실실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우리 고드릭 님은 저렇게 심각하신데.



"독늪에서 수영하는 소리하고 있네!!!"

"너랑 결혼할 바에 두손가락이랑 하겠다!!!"


잘생긴 전하의 얼굴이 그렇게 일그러진 것은 황금나무에 맹세코 처음이었다.

백성들이 담벼락에 뒷담화 써놓고 토껴도 너그러이 웃으시던 분이...


"꺼져 냄새나는 버섯같은 년아!!!"


마리카가 사라져도, 모르고트가 왕위를 찬탈해도 항상 냉철하시던 분이 번개맞은 비룡처럼 악을 쓰며 소리쳤다.



"병사들이여, 보았는가? 저렇게 밝히고 다니는 여자일 줄은 몰랐다! 저 말도 안되는 소리를 도로 돌려줘버려라!"

"쇠뇌 장전!"



...




"장저어어어어언!!!!!"



병사들은 반응이 없었다.




"저... 고드릭 님."

"그렇게 일리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노병 하나가 아뢰었다.



"성수 놈들과 동맹을 맺을 수 있다면... 그리 나쁜 조건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꽤 괜찮은 강화 제안입니다."

"옳소! 옳소!"


병사들이 동요했다.



"알터고원에서 귤까먹는 소리하고 있어!!!"

"우리 함께 결사항전을 각오하지 않았느냐!"

"명령이다! 빨리 쏴버려!"



고드릭 님은 핏대를 세워가며 말했지만 병사들은 반응이 없었다.



"전하."


그때 내가 전하에게 다가갔다.



"저는 평생 전하를 모셨습니다. 전하의 은혜에 비하면 제 목숨 따위 천 번 버려도 부족합니다."


"오... 그래 애드거. 너가 병사들을 통솔해서 미친 부패를 해치워라!"


전하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것은 전하의 인품, 혈통, 능력 어느 것 하나 제가 비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알았으니까 빨랑 뭣 좀 해보래두! 난 이미 아들도 있단 말이다!"


"그러니 전하는 용서하실 것입니다... 백성을 위해서..."



난 위대한 황금의 군주, 고드릭 님의 옥체에 감히 손을 대어 밀쳤다.

고드릭 님은 성벽에서 떨어지셨다.




정신을 차리신 위대한 왕께선 자신이 말레니아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으셨다.

발 앞에.


"제 발에 키스해 주시려고요~ 참 로맨틱한 서방님~"



"아아아아아아악!!! 애드거!!! 애드거!!!!!"


"애드거어어어어어어!!!"








....참 이상한 하루였다.


... 그렇게 서약을 받고 말레니아는 떠났다.

라단을 물리치고 식을 올리겠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아직까지 별 소식이 없다.




그때 이후로 케일리드가 황폐화되고 괴물들이 밀려들어와, 몬 성과 스톰빌 사이의 연락은 끊긴 지 오래다.


그러나 간간히 이상한 소문이 들려온다.



고드릭 님이 미치셨다고... 생사람을 접목하고 백성을 잔인하게 책형한다고...

성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고...

그 날의 일은 그냥 항복일 뿐 아무 의식도 아니라는 비석을 만들어 세웠다고...



그 때의 일이 큰 충격이 된 것일까...





하지만 나 애드거는 믿는다.





황금나무 아래 가장 지고하신 데미갓, 고드릭 님은 언젠가 엘데의 왕이 되실 것이다.

그때 그 분이 맞으실 영광에 비하면, 지금의 일은 결국 잊힐 추억이 될 뿐.


그 날이 오면 고드릭 님께 용서를 빌어야겠다.


고드릭 님께선 웃으며 나를 안아주시겠지. 비루한 이 몸을.













*자료출처: 몬 성에서 발견된 애드거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