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리나는 거듭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 번 설명했다. 당신은 빛바랜 자며, 엘든링을 수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데미갓들을 처치해 거대한 룬을 모아야 한다고.


그러나 빛바랜 자는 자꾸 성을 내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걸 반복했다.


이 사람... 그냥 정신이 이상한 걸까?



"인텔리에게 지금 봉건적 사회질서를 들먹이는 건가?"

"필연적 사회진보를 가로막는 구체제의 왕이 되라고?"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진 모르겠는데, 그게 빛바랜 자의 사명이야."


멜리나는 새벽 동이 트도록 똑같은 말을 할 뿐이었다.


"나 참... 초면에 다가와서 난데없이 신이니 왕이니 전근대적 관념론에..."

"젊어 보이는데 벌써 지배계급이 만든 사상에 세뇌되었나 보군, 세상 꼬라지 참 자알 돌아간다!"


"빛바랜 자..."


"내 이름은 마르크스다! 제멋대로 부르지 말도록!"


이름을 기억하는 빛바랜 자는 드문데... 아무튼 이 털보영감은 정말로 이상해 보였다.


그는 유물론이라는 것을 운운하며 황금나무는 그냥 존나 커다란 발광나무일 뿐 섬길 이유가 없다고 했고

역사의 필연적 공산화에 의해 어차피 사라질 지배계층이니 지금 당장은 민중계몽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빛바랜 자! 뇌가 바래버린 거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거래하자고!"


"바랜 것은 네년 사상이다... 종교적 미신에 홀려서 이성을 놓아버린 소녀여..."


아오!


"알았어. 그럼 당신은 여기서 계속 그 혁명이니 뭐니 지껄이고 있어."

"나는 낭비할 시간이 없어. 다른 용사를 찾아보겠어. 그러지 않으면 세상은 멸망한다고. 가자 토렌트."


멜리나는 일어나서 떠날 채비를 했다. 

털보와 말싸움 하느라 이미 밤을 꼬박 새어버렸다.



"에잉... 쯧쯧쯧. 이제보니 몹쓸 종말론자였군. 어째서 이 동네는 아직도 암흑시대인거냐?!"


마음대로 생각해라 정신바랜 자. 틈새의 땅이 무너지기까지 벌써 또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잠깐."


떠나려는 멜리나의 등에 빛바랜 자가 말을 걸었다.


"아 왜!"


"자네 혹시 '체제'에 불만이 있지 않나?"


"?!"


체제...? 황금률을 말하는 건가? 어떻게?

그녀는 자신이 가진 사명을 순간 되짚어 보았다.

그녀의 운명은 황금나무를 불태우고 새 엘데의 왕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는 분명 지금의 황금률에 대한 반역이었고, 체제에 대한 역모였다.


"뭐야... 어떻게 알았..."


그는 슬쩍 눈웃음을 지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지배자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거지? 지금의 세상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말이야."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어디서 나온 통찰력이지? 마음을 읽는 마법인가?


"썩을대로 썩은 사회가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 잿더미에서 더 밝고, 더 위대한 낙원을 지어야 한다고."


"...!!!"


"오래된 왕정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

"더 나은 정의로운 체제가 대신 나타나고..."

"그것이지. 그렇게 혁.명.이 완성되는 거야."


이미 다 알고 있었나? 그녀의 임무와 본인의 역할까지 이미 이해하고 있던 건가?

금가면 경이라도 그 정도의 지혜를 가지고 있진 못하리라! 이 자는 그 이상이었다!


"맞아...! 그래서 나는 새 시대를 열려는 거야...! 당신도...!"


"그래. 소녀여..."


빛바랜 자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그의 눈빛은, 

이전과 다르게 훨씬 야망찬 빛깔이었다.


그것이 붉게 타올랐다.



"그대도 혁명동지다... 자, 날 따라와라!"


"조... 좋아! 당신을 따르겠어!"





그렇게 시작되었다... 틈새의 땅의 계몽. 변증법적 진보의 완성.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그들의 여정이...
















작성자 이거쓰고 자수하러 가야되서 질문 못받는다 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