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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갑다 나는 셀브스.

마술교수이지. 다들 셀브스 박사님이라 부르지만, 그냥 셀브스라고 불러라.


일기에 이런 인사를 쓰니 미친놈처럼 보이지만 누가 읽을리도 없는 책 내 맘대로 외로움을 풀어도 되겠지.

하여튼 나는 셀브스! 이제부터 일기를 쓴다.



2.


참 기구한 운명이다. 망국의 천재로 산다는 것은...

난 내가 이 나이 쯤 되면 레아 루카리아의 최고층 연구실에서 마음대로 연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근처에도 못 가고 이딴 지하실에 처박혀 이상한 실험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하지만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고 난 운이 나빴을 뿐이다.


지금 현실에 푸념할 시간에 난 내가 할 일을 하는 것이 더 낫겠지.


정약의 시제품은 완벽한 색깔이다. 실험 결과가 좋을 것 같다. 후후...



3.


정정하겠다. 필요한 만큼의 10%도 못 가는 쓰레기이다.

어제 양을 좀 잡아서 실험해 봤는데 오늘 다 죽었다.


짜증이 난다! 학원에서 예산을 받아 연구했다면 난 지금쯤 약을 양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몇 년 동안 재료를 모아 실험해본들 자꾸 수포가 될 뿐이다!


블라이드조차 이제 날 무시한다고. 젠장.



4.


좋은 소식! 동료가 생겼다.

셀렌이 소개해 주었는데 놀랍게도 나와 추구하는 목표가 같았다.

피디라는 노인네인데 생각보다 똑똑하다.


자료를 잔뜩 받아와서 오늘은 밤을 샐 것 같다.



5.


이번 정약은 어떻게 될 지 궁금하군... 예감이 좋은데.

그러고보니 기드온은 지금쯤 뭘 하고 있으려나.


위대한 대의를 가진 날 문란한 놈이라고 매도하며 나를 쫓아냈지. 인형은 원래 알몸부터 만든단 말이다 멍청아.


지금 내 지하실에 데려오고 싶다, 보아라 기드온! 이것이 틈새의 땅의 구원이다!



6.


분명 피디는 해냈었다.

똑똑히 봤다고. 살아있는 인형들을. 생명이 있었단 말이다.


왜 나는 못하는가? 천하의 셀브스 박사는 보기좋게 실패했다.


피디와 내가 뭐가 다르지? 인간 실험체? 


아니다... 아니야... 그딴 짓을 할 수는...




7.


피디를 찾아갔다.

그가 정약의 샘플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완성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었다.


씁쓸하지만 어쩌겠나. 동업자로서 축하해 줘야지.

틈새의 땅의 구원자는 어쩌면 내가 아닌 피디가 될지도.

그날 함께 술을 마셨는데 정신차려보니 이곳이었다.

그 영감이 날 여기로 데려다 준 것 같은데 보기보다 힘이 쎈가보다. 머리가 아파 죽겠다.



8.


좋은 소식.

'실험체'가 생겼다.


사로리나라는 여자인데 손가락 무녀다. 빛바랜 자 없는.

비가 와서 내 탑에 재워줬는데 어쩌다보니 내 대의를 말해줘버렸다.


아오, 여자 앞이라고 막 아무말이나 해버렸다! 부끄러워 죽겠군.


아무튼 그래서 놀랍게도 자신에게 정약을 써보라고 말했다. 갈 곳도 할 일도 없으니 내 일을 돕고 싶다면서.

미친 여자인 거 같아서 돌려보냈는데 오늘 아침까지 탑 앞에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왜 말해버렸는지 모르겠다. 돌겠군. 그래서 이제 인형을 만들러 간다.

본인도 괜찮다는데... 뭐 어떻게 되겠어? 이론대로만 굴러가면 그녀에게도 좋을 것이다.



9.


요즘 자꾸 일기쓰는 것을 까먹는 군.

기억력이 깜빡깜빡한다. 정신을 잃을 때도 많다.

과로한 탓인지 독한 약재 탓인지... 피디에게 각성제를 구해왔다.


사로리나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면 정신 차려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

혼신을 바쳐 정약을 끓이고 있다.



10.


고드릭이 쓰러졌다는군. 꼴 좋다.

하지만 통쾌함 외에 무엇이 남지?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받는다.

그러건 말건 황금나무는 관심이 없고 데미갓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기만 한다.


이 시대는 끝났다. 남은 건 절망 뿐이야.

반드시 해내야 한다. 황금률을 대신할 영생... 생명을 담는 인형... 고통받지 않는 신체... 

인간을 위한 마법...



11.


사로리나의 인형이 완성되었다. 셀렌의 인형도.

셀렌은 피디를 믿지 못하겠다며 내게 인형 제작을 의뢰했다.

피디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나?
그 영감탱이 엄청 밝히나보다. 천박하긴...

아무튼 그것 때문에 작업일수가 엄청 늘었었다.

뭐 어쨌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사로리나가 정약을 마시면... 인형으로 영혼이 옮겨가는 것이다.

그렇게 영생을 살 수 있게 된다. 부디...



12.


또 정신을 잃었다. 자꾸 이런 날이 늘어난다.

내 몸이 내 것 같지가 않다. 피디는 과로 증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몸이 날아갈 것만 같다.


사로리나가 날 깨워주었다. 그녀는 살아있었다.

살아있었다고!



13.


사로리나는 떠났다. 그녀는 이제 안전하다.

혹시 인형이 죽더라도, 내가 부활시킬 수 있다. 빛바랜 자처럼.

피디의 것과 다르게 인형사가 조종할 수도 없다. 완벽히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셀렌은 아주 놀라겠지? 이게 학원 수석의 능력이지.


라니에게 알려줄까? 라니는 내 연구를 계속 불쾌하게 생각했었지.

그건 그녀가 어차피 데미갓이라서다. 서민들의 고통따위 안중에도 없는 왕족.

그래도 불쌍한 여자다. 내 약이 라니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14.


오늘 아침 내 연구실이 쑥대밭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발정기가 온 블라이드의 짓인 줄 알고 찾아가 따졌더니 내가 한 것이라고 한다!


난 정신을 잃었는데? 책장은 엎어져있고 서랍까지 모두 열려있다.

일기와 정약 레시피를 넣어놓은 서랍은 잠궈놓아서 멀쩡했다.


도둑이 든 것처럼... 





마치...





내 머릿속에 도둑이 든 것처럼...



15.


그 영감탱이 짓이다.

내게 자기 정약을 먹였어.


날 조종했다. 내 몸의 통제권을 뺏어가려고 해.


그 자가 흑막이다. 

내 연구를!


손이 말을 안 들어


네 맘대론 안된다.



이 일기를 누군가 본다면, 즉시 네펠리 루에게 가.

내가 주는 약을 먹지 못하게 해라.

라니에게 경고해.



그건 영생의 약이 아니야.

속박의 약이다.


나처럼 당하지 마라.

그리고 할 수 있다면 피디를 죽여라.  정약을 모두 없애.



나처럼 속지 마.

내 말을 믿지 마.


나의 꿈... 나의 희망...

아...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