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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단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일전은 끝나지 않았다.


상대는 미켈라의 칼날 말레니아... 유수 검사의 제자. 대장군 라단에게 맞먹는 실력.

더 맞은 것은 물론 그녀였지만 라단을 고전시켰단 점에서 이미 엄청난 여자였다.


그리고 미친듯이 쏟아지는 난격 외에도 그의 반격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


그녀가 동생이라는 사실.


비록 배다르지만 그에겐 소중한 피붙이.


'후후... 너무 응석받이로 키웠던 것인가.'


라단은 회상한다.


어린 그가 라다곤의 손에 이끌려 로데일로 들어간 이후 곧이어 태어났던 미켈라와 말레니아.

미켈라와 달리 태어날 때부터 악취를 풍겼던 그녀를 사람들은 싫어했다.

그러나 라단만은 달랐던 것이었다.


"동생이다! 같이 딱지도 치고 술래잡기도 하고 가재도 잡으러 다닐거야!"


그는 냄새 따위에 여의치 않고 동생들을 똑같이 대했다.

오히려 여리여리한 미켈라보다 말레니아를 더 좋아하기도 했다.

마리카와 라다곤이 언젠가부터 보이는 날이 뜸해졌을 때, 남매와 함께 논 건 거의 라단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보였던 말레니아의 성질.


"반칙이야! 처음부터 다시 해!"

"아니야, 오빠가 방해해서 진 거라고! 다시해!"

"싫어어! 지기 싫단 말이야!"


바로 지나친 승부욕이었다.

어린 아이니까... 그려러니 싶었다.

하지만 말레니아는 천성으로 보일 정도로 승리에 집착했다. (머리가 나빠서인지 성적에는 집착하지 않았다.)


너도 안정적인 환경에서 양질의 가정교육을 받았다면 조금은 나아졌을까?


'너에겐 기쁨만 주고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잘못이었구나...'


라단은 다시 케일리드의 전장으로 돌아온다.


"말레니아, 오빠가 미안하다!"

"그런데 나한테도 지킬 백성이 있거든? 별을 풀어주는 건 좀 무리다!"


라단은 쩌렁쩌렁하지만 온화한 목소리로 말레니아를 타이른다.


"양 쪽 모두 피해가 심해! 이쯤하고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자!"


케일리드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라단은 여동생을 해치기가 너무나도 두려웠던 것이었다.

말레니아도 깨달을까?


"..."


"...싫어"


"시작해놓고 무르면 비긴거잖아! 이기고 싶단 말이야!!!"


아뿔싸, 미켈라의 미친개를 과소평가했구나!

갑작스런 말레니아의 돌진에 라단은 순간 당황하여 유효타를 허용하고 만다.


"크윽..."


상당히 크게 베였다. 부패가 상처에 묻었다. 하지만 말레니아도 취약한 자세를 노출했다.

바로 내려찍어 으깨버릴 수 있다! 지금이다!


하지만 라단은 또다시 주저한다. 어떻게... 어떻게 동생을...


"큭, 이러지 말자 말..."


"이기고 싶다고!!"


그 새에 추가타를 맞고 말았다. 이번엔 심장에 가까웠다.

이 모습을 멀리서 본다면 육중한 라단의 몸을 인정사정없이 베어내는 말레니아로 보일 것이다.

지켜보는 이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오옷, 그 라단을 저렇게 포떠버리다니-!"

"역시 불패의 검 말레니아답다능!"


그에 비해 라단은 자기 실력을 제대로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하... 딱지치기라면 봐 줄 수 있겠지만... 난 백성을 지켜야 해."

"동생아... 저 별들에 뭐가 들었는지 알긴 하는거냐?"


"몰라몰라몰라 그냥 이기게 해줘어!!!"


또다시 시작된 물새난격.


'이 정도로 상황판단을 못한 건 아니었는데... 대체 얼마나 지능이 낮아진거지?'

'아무래도 말로는 안되겠어. 일단 쓰러뜨려야겠군.'


말레니아의 검술은 분명 틈새의 땅 제일이었지만 노련한 라단에겐 금방 허점이 보였다.

라단의 한 방이면 그대로 뚝배기가 깨져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거면 되었다. 그 이상은 안 된다.


"미안하다- 잠깐만 잠들어라!"


말레니아의 맹점으로 그의 일격이 날아왔다.

멍청한 그녀에겐 막을 시간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크아악!"


비명을 지른 쪽은 라단이었다.

붉은 부패가 어느새 그의 동맥을 타고 뇌에 닿아 시야와 정신을 뒤흔들었다.

엄청난 고통이었다. 순간 이성을 잃고 끔찍한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이것이었나... 붉은 부패?'


그것은 데미갓조차 눈물흘리는 매운맛.


'아... 말레니아. 이런 것을 달고 살아온 거구나.'


라단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의 공격은 막판에 흔들려 그녀의 의수만 부쉈을 뿐이었다.


'그래, 내가 아픈 너에게 몹쓸 짓을 한거군.'


졸렬한 말레니아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이겼어 내가 이겼어 내가 이겼어 내가 이겼어...-"


어느새 그의 등으로 올라온 그녀는 라단의 등에 칼을 꽂았다.

이번엔 심장을 찔렀다.


"크흐흐.., 그래, 몰라서 미안하다."


말레니아의 몸에서 꽃잎이 피어올랐다.


"케일리드에게도 미안하군..."




에오니아가 개화했다.








라단은 이제 하나의 시체일 뿐이다.

완전히 썩어버려, 시체나 뜯어먹으며 연명하다 죽었다.

라단의 유지는 그의 몸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의 핏물을 먹고 자랐던 나무는 알고 있지...

빛바랜 자여, 그 이끼약이 왜 부패를 녹이는지 알고 있는가?

왜 성혈처럼 붉은지... 왜 그렇게 따뜻한 색인지...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사랑은 붉은색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