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fed8275b58169f43fe982ec43831b6c0909b3bd56b2a97290a5abc86d558e15






거짓 밤하늘을 수놓은 반짝임만이 침잠하는 적막을 반기고, 그들의 세기처럼 오지 않을 적병을 기다리며 허무한 경계를 다하는 개미 기병이 돌아다니는 녹스텔라의 강기슭. 여기저기 널린 핏자국 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나 미처 마르지 못한 것은 저 너머 수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곳엔 쓰러진 밤 무녀 하나가 죽은듯 나동그라져 다만 불규칙한 호흡의 들썩임으로 아직은 숨이 끊어지지 않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물소리만을 벗삼아 말없이 말없이 그런 무녀를 주시하는 빛바랜 자가 있었다.


빛바랜 자는, 그 무녀 없는 자는 그저 반대편 벽에 기대어 앉아서 지켜볼 뿐이었다.


마침내 들썩이던 몸이 안정을 찾고 호흡이 잠든 이의 그것과 닮아가자, 어둠이 드리운 투구 안에서 일순 안도하는 기색이 서린듯도 했다. 이번에는 힘 조절이 잘 됐으니 말이다.


빛바랜 자는 아인들에게서 강탈한 끈으로 무녀를 동여맸다. 곧 죽을 몸뚱아리라면 줄로 묶는 수고조차도 번거로울테지만 다행이 이 무녀는 명줄이 질긴 모양이었다.


거북의 등껍질을 닮은 형태로 밧줄은 무녀의 몸 위를 가로질러 그녀에게서 일말의 저항할 가능성마저도 앗아갔고, 빛바랜 자는 만족하며 바로 곁에 앉아 무녀가 정신이 들기만을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데 묶인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더니, 이내 꽁꽁 묶인 몸의 위화감을 느낀듯 몸부림이 일기 시작한다. 드디어 무녀가 정신이 든 것이다. 불행히도 말이다.


빛바랜 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녀에게로 향한다. 무녀는 몸부림친다. 무녀는 비명지른다. 그러나 모두 부질없다. 수문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비명을 삼켰고, 몸부림을 칠수록 밧줄은 더 깊이 그녀의 살을 파고들 뿐이었다. 저 너머 녹스텔라의 동포들은 그녀를 듣지 못한다. 그럼에도 무녀는, 빛바랜 자가 느긋히 다가올 때 마다 절망에 겨워 그 부질없는 절망을 쌓아간다.


빛바랜 자는 들고 있던 메이스를 옆으로 던져놓는다. 이어 쓰고 있던 건틀릿도 벗어 옆으로 내동댕이친다.


빛바랜 자는 자세를 낮춰 기듯이 무녀에게 다가가고, 무녀는 벌레처럼 기어서라도 도망치려 하거나 꿈틀대며 빛바랜 자를 걷어차려고도 했지만 역시나 부질없었다. 빛바랜 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하복부에 한 번, 그리고 허벅지 옆에 한 번씩 "명탈권"을 꽂아넣어 밤 무녀에게 예의범절을 주입해주었다. 자꾸 몸부림을 쳐댔다간 아까 메이스에 맞은 자리가 터져서 죽을 지도 모를 일이니까.


무녀는 경련한다. 무녀는 더는 저항하지 않는다. 빛바랜 자는 다시금 무녀에게 닿는다...


두터운 옷깃 사이로 빛바랜 자의 손이 파고든다. 영원한 도읍의 차가움에 익숙했던 무녀는 그 따스함이 낯설기만 했다. 살갗과 살갗이 맞닿기도 전부터 무녀는 뜨거움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빛바랜 자는 결박을 살짝 느슨하게 만들고는 얌전해진 무녀를 희롱해나가기 시작한다. 옷 위로, 용암 민달팽이같은 뜨겁고 질척한 손길이 훑고 지나갈 때 마다 밤 무녀는 애써 고개를 돌리며 감각을 부정하려 애쓴다.


두터운 옷 위로도 봉긋한 윤곽이 도드라지는 유방을 건드리자 '명탈권'이 다시 한 번 꽂히기라도 한 것 처럼 크게 놀랐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저항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빛바랜 자는 나머지 한 쪽 건틀릿도 내팽겨치고는 두 손으로 밤 무녀의 윤곽을 더듬어나갔다...


영원한 도읍의 공기는 차다. 그곳의 사람들 역시 차가운 피가 흐른다. 그 사람들에게 지상의 따스함이란 불에 데인 것과 같은 뜨거움일 것이다. 사로잡힌 밤 무녀에게 지금의 희롱이란 시뻘겋게 달궈진 인두로 옷 위를 훑는 것과 다를바가 있었을까?


무녀는 몸서리친다. 몸 위로 덮치는 뜨거움과 몸 안으로 닥치는 오한에. 빛바랜 자가 손을 움켜쥘 때 마다 무녀의 온 몸은 오그라들고, 빛바랜 자가 옷 안으로 그 인두같은 손길을 보낼 때 마다 이리 꼬부라지고 저리 꼬부라지며 견딜 수 없는 감각에 괴로워했다.


빛바랜 자는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이 든다. 전희는 할만큼 했다. 밤 무녀 또한 한 번도 경험해보1지 못한 감각에 이미 자신의 "은 물방울"로 흥건해진 상태였던 것이다. 빛바랜 자는 이제와는 다른 손놀림으로, 뱀이 기듯 음산한 손길을 뻗어나간다. 맨살갗을 타고 가는 거친 손길이 아랫유방으로부터 슬근히 내려가 옆구리와 갈비뼈를 훑고, 배꼽을 간지럽히고 내려가 하복부를 쓰다듬을 때 즈음에 밤 무녀는 마지막으로 저항했다. 몸을 비틀며 어떻게든 자신을 파고드는 이 손을 떨쳐내려 했다.


여지까지와 마찬가지로 부질없었다. 끈적하게 아랫배를, 그리고 그 밑에 두근대고 있을 "자정의 성역"을 쓰다듬던 그 손길이 털 한올 없는 녹스텔라의 균열을 침범하자 무녀는 더 이상 몸에 힘을 줄 수 없었다. 터져나온 비명은 부서지는 폭포수와 뒤섞인 메아리가 되어 영원한 도읍의 어둠 속으로 흩어졌고, 빛바랜 자의 "두 손가락"이 밤 무녀의 성역과 교신하자 무녀는 그대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

.

.


녹스텔라의 밤은 영원처럼 깊다. 그 깊은 밤, 몰락한 도시의 아무도 오지 않는 수문에 밤 무녀는 널부러졌다. 이제 바닥을 굴러다니며 저항할 일말의 여지조차도 없어졌다. 그녀는 평소의 추위와, 그 추위를 압도하는 화끈거림에 휩쓸려 가쁜 숨을 몰아쉴 뿐, 몸을 옭아맨 밧줄이 풀리고 옷이 벗겨져도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다.


이곳에 긍지 높은 녹스인, 밤 무녀는 더 이상 없다. 자유를 되찾은 한쪽 팔로 눈가를 가리고서,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몸이 폭풍을 만난 아인마냥 떨며, 훤히 드러난 두 개의 '영원한 도읍'과 '금역'을 가릴 생각조차 못하고, 크게 벌린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거칠고 불규칙한 호흡만을 이어가는 한 마리 암컷만이 있을 뿐이다.


빛바랜 자는 몸을 일으켰다. 어둠이 드리운 그 투구 아래로는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벗겨낸 옷가지에다 두 손에 가득 맺힌 밤 무녀의 "별의 물방울"을 닦아내고선 대충 수문 아래로 던져버리고, 빛바랜 자는 투구를 벗었다.


녹스텔라의 한기가 정수리부터 등골까지 타고 내려가는 짜릿함에 빛바랜 자는 전율한다. 땀에 절은 빛바랜 금발이 천천히 제 위치를 찾아 흘러내린다. 생기 없이 푸른 시선을 바닥에서 헐떡대는 한 마리 암컷에 고정한 채, 빛바랜 자는 갑옷을 하나씩 벗어 아까 팽겨쳐둔 건틀릿 근처에다 내던져두었다.


갑옷에 생살이 씹히거나 쓸려 쓸 데 없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입은 내의까지 모조리 벗자, 땅 밑의 찬 공기에 빛바랜 자는 몸을 떨었다. 내쉬는 숨이 새하얀 안개가 되어 흩어지고, 잔뜩 흘린 땀이 식으며 가져다 주는 오한이 더없는 짜릿함을 선사했다. 빛바랜 자는 묶었던 머리를 풀었고, '금역'을 겨우 봉인하던 천 역시 이미 흥건히 젖어버린 상태였다. 가슴을 눌러두던 붕대를 풀자 쏟아지는 흑염처럼 빛바랜 자의 신앙심이 출렁였다.


빛바랜 자는 이제까지와 같이 말이 없었다. 그저 천천히 다가가, 밤 무녀의 한쪽 허벅지를 깔고 앉은 채, 한쪽 다리를 들어 품에 안고서는, 두 개의 금역이 마주닿도록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녀에게 축복의 인도가 있었던가? 모를 일이다. 축복의 인도는 그녀를 이 지하 세계로 이끌었나? 모를 일이다. 허나 단 하나는 확실하다. 끝나지 않는 그 밤의 어딘가쯤에, 무녀 없는 빛바랜 자는 무녀와 마주했다.


수문에서 쏟아지는 물소리, 그리고 금역과 금역이 부딪히며 내는 물소리. 두 물소리가 어우러지며 적막 속에서 무녀와 무녀 없는 자는 뒤섞여간다. 밤 무녀는 이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멸망의 불"과 같은 뜨거움을 상대방이 몰아치는 대로 받아들이기만 할 뿐. 헐떡이며, 비명지르며, 그녀는 넘어가려는 숨을 부여잡으려 애쓴다.


몰아치는 절정을 견디려 바닥을 긁어댄 끝에 장갑 끝이 다 닳을 지경으로 무녀는 몸부림쳤으나 빛바랜 자의 지구력은 그칠 줄을 몰랐다. 참을 수 없는 미친 불마냥, 한번 시작된 "불의 대죄"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녀는 어떻게든 벗어나려 애썼지만, 그럴 때 마다 자세가 바뀔 뿐, 빛바랜 자는 자신을 밀어내려는 그 손길마저 맞잡아 당기며 환희에 찬 시선으로 무녀를 마주할 뿐이었다.


그 밤과도 같이 길게 느껴지는 시간 끝에 빛바랜 자의 호흡 역시 가빠지기 시작한다. 움직임에 여유가 없어진 초조한 허리놀림은 아이의 보챔처럼 애달파졌고, 더는 사람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신음만을 내던 무녀의 입을 자신의 입으로 틀어막고는 지상의 축복과 지하의 축복을 서로 맛보도록 뒤섞었다.


모든 밤에 그 끝이 있듯, 그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손을 맞잡은 채 빛바랜 자는 밤 무녀를 찍어눌렀고, 비명은 입과 입 사이에 가로막혀 새어나오지도 못했다. 다만 둘 사이에서 축복의 인도처럼 "밤 무녀의 안개"가 피어올랐을 뿐이다.


20acd423e3d32daa7af1dca511f11a39f36362b9477c42


마술도시 사리아의 밤의 마술 중 하나.


전방에 생명을 좀먹는 은색 안개를 발생시켜

사용자를 포함한 닿는 자에게 대미지를 입힌다.

발을 멈추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사리아 지하에는

영원한 도읍 노크론이 잠들어있다.

이것은 그곳의 무녀의 마술이라고 한다.


7fed8275b58169f43fe984e445821b6cddce277754b1fa2e26698b35a93de2ed





첨벙.


거짓 밤하늘을 수놓은 반짝임만이 침잠하는 적막을 깨며, 수문 아래로 물줄기와 함께 무언가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빛바랜 자는 미련이 진하게 남은 눈길로 아직 파문이 일고 있는 그 수면을 한참을 응시했다. 그 파문이, 물거품이 온전히 사라지고 한때 밤 무녀였던 몸뚱아리가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때 까지.


천천히, 빛바랜 자는 벗을 때의 역순으로 갑옷을 주워입었다. 그 풍만한 신앙심을 주섬거리는 일도, 종자 없이 갑옷을 챙겨 입는 일도 익숙한듯 막힘 없는 몸놀림이었다. 웃옷을 다 갖추고, 금역을 봉인할 천을 찾을 즈음 아까 그녀가 손을 닦고 내던졌던, 밤 무녀의 천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잠깐의 고민 끝에 자신이 쓰던 봉인을 밤 무녀와 함께 수장시켜주고, 밤 무녀의 내의를 두른 채 새로이 갑옷을 갖춰입었다.


그렇게 빛바랜 자는 자신만의 여정에 다시 올랐다. 오지 않는 세기를 기다리는 도시를, 자신을 품기엔 너무나 연약했던 무녀를 장사지낸 강기슭을 뒤로하고.



념글 밤무녀 짤보고 급꼴려서 써봄

점자성서 이렇게 스는거 맞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