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자는 황혼이 지는 로데일의 왕의 옥좌로 향하는 계단을 터벅터벅 거닐었다. 혹은 저 황금나무의 화염이 일으키는 빛이 지고 있었거나.


말리케스에게서 죽음의 룬을 찬탈한 그는, 엘데의 왕좌로 향했다. 멸망의 불이 집어삼킨 황금 나무의 잔해가 로데일 전체를 덮었다.
모든 시민들, 생물들은 죽었다. 재 속에서 깔려 죽었을 것이다. 무언가 착잡한 마음이 들게하는 사실이었으나, 멈출 순 없었다.
계단 너머에는 황금나무의 불탄 가시가 있으리라. 모르고트까지 살해한 그를 막을 자는 지금 아무도 없었다.

...분명 그래야 했다.


"저의 왕, 저의 왕, 저의 왕이시여..."


어떤 아인이, 아인 여왕보다 두배는 더 거대한 아인이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어딘가 친숙한 목소리에, 빛바랜 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데의 왕좌는 저의 것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바닥에서 황금빛 섬유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빛바랜 자를 덮쳐왔다.
빛바랜 자는 본능적으로 그 섬유가 보통 섬유가 아님을 깨달았다. 저 자는 대체 누구고, 이 공격은 어째서인가?
누군데 자신을 자신의 왕이라 부르는가?

그때, 거대한 아인이 등을 돌리며, 자신이 쓰기엔 너무 작은 모자를 살짝 기울여 인사했다.
히죽히죽 웃는 그 흉측한 얼굴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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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났다. 자신의 방직공, 자신의 재단사, 아인 보크였다.

어느 순간 떠났던 그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걸까?

황금빛 실들은 몇번 쉭쉭거리며 궤도를 꺾더니, 곧 잠잠해졌다. 보크가 자신임을 알고 공격을 멈춘 것일까?

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거대한 바늘 하나가 빛바랜 자에게로 날아왔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그 날카로운 도구는, 순식간에라도 그를 꿰뚫을 듯 했다.

-깡!

빗맞은 바늘이 바닥을 때리자, 바닥재들이 공중으로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뻗어나온 먼지들이 빛바랜 자의 시야를 가리던 그때, 먼지 덩어리 사이에서 다시 그 무구한 황금의 실들이 뻗어나왔다.

"...!"

쇄도하는 날카로운 공격에, 그를 피하는 빛바랜 자의 심장이 격렬히도 고동친다.
최대한 열심히 그의 공격을 쳐내고 피해낸 그 였으나, 결국 한번의 타격을 허용하고 만다.

거대한 쉿소리가 자신의 흉갑을 때리더니, 흉갑에 거대한 파열구가 생겨났다.
자신의 갑주가 우그러진 것이다. 저 무구한 황금의 실에.

흙먼지가 가라앉자, 빛바랜 자는 멀리서 실을 당기고 있는 보크를 보았다.
보크의 흉부에는 룬베어들에게서 보았던 룬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으나, 무언가 조금 달랐다.
그건 바로 '데미갓들의 거대한 룬'이었다.
어째서 그가 그를 가지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 룬이 보크를 침식하면서, 데미갓들의 갈망, 룬을 모아 왕좌에 오른다는 갈망을 보크에게 옮긴 것이다.


"꽤나 피하시더군요, 나의 왕. 슬슬 제가 상대해 드리죠."


보크는 다시 그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거대한 재봉 바늘을 꺼내었다. 이제는 백병전의 시간이다.


빛바랜 자는 자신의 대검을 단단히 부여잡고, 보크에게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허점이 많은 움직임이었다. 보크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바늘을 찔러넣었다.

-챙!

빛바랜 자가 돌격을 순간적으로 멈추더니 자신의 칼날로 그의 바늘을 막아세웠다.
보크가 멈칫한 사이, 그의 칼날이 빠르게 보크 쪽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기교가 뛰어나시군요. 하지만 보크도 그 정도는 막아낼 수 있습니다!"


보크는 황금 실들을 조종해 그의 칼날을 옭아매었다. 대검의 칼날은 서서히 그 추진력을 잃더니 곧 멈추고 말았다.


"멋진 싸움이었습니다. 그런 기습은 상상치조차 못했지요. 이제 끝입니다... 나의 ㅇ-"


-푸슉


아아, 빛바랜 자는 좌수에 쥐었던 종군의사들의 단검으로 보크의 흉부를 찔러내었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보크는 크게 주춤하며 뒤로 크게 회피했다.

보크는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너무 지체했나. 바로 죽였어야 하거늘.
그렇게 죽였다면 자신은 엘데의 왕좌에 앉아있을 것이다.
이렇게 추한 그 이지만, 마지막 만큼은 찬란할 줄 알았다.

아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의 열망에 반응 하듯 황금빛 실들이 그의 주변에서 피어올랐다.


"아아, 이것이 실인가? ...무구한 황금의 실인가?"


보크는 자신을 옭아매는 실들을 느끼며 말했다.
자신의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 자신의 심장마저 옭아맬 것이다.

보크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눈에는 분명 황금빛이 돌고 있었다.


"이제부터, 저는 당신의 제단사가 아닙니다..."

보크가 무수히 많은 타래들 사이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제 부터 나는, 방직공들의, 재단사들의 군주, 대아인 보크입니다!!"



대아인 보크는 순식간에 날렵한 움직임으로 빛바랜 자의 등으로 돌아, 그의 척추를 꿰어내었다
분출된 빛바랜 자의 피가 왕좌를 더럽혔다. 바늘 너머로는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보크는 빠르게 바늘을 뽑아낸 뒤, 후속 공격을 날렸다.
바늘의 관통 공격들 사이사이 공백을 매우는 수 많은 황금 실들의 쇄도, 빛바랜 자는 성배병을 투구 안 쪽으로 들이부으며 버텨내었다.

곧바로 보크가 날렵하게 그에게 참격을 날린다. 빛바랜 자는 대검으로 막아내었으나, 그 충격파는 쉽사리 막아지는 것이 아니였다.
그는 분명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 빈틈을 끔찍한 아인은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황금 실들이 그를 옭아매었다. 그리고 자신을 굉장한 압력으로 쥐어 짜 비틀기 시작했다.
그의 쪼그라드는 폐는 숨결을 받아들이지 못하였고, 보크는 저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며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빛바랜 자는 자비의 단검으로 자신을 감싼 실들을 잘라내었으나, 보크는 이미 히죽거리며 자신에게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도약한 뒤였다.

빛바랜 자는 그의 내려찍기를 스텝으로 피했다. 바늘이 바닥에 박혔는지, 보크는 바늘을 부여잡고 힘을 주었다.
빛바랜 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자세를 잡더니, 보크의 머리를 향해, 칼날을 돌진시켰다. 그는 그의 아래로 파고들고, 정확히 아랫턱을 올려베었다.


-촤악!


그의 피가 엘데의 왕좌에 새로운 도색을 한겹 입혔다.
보크는 두 다리를 꿇으며 주저 앉았다.
아아 이제 끝이다. 자신은 군주가 되지 못한다.
애초에 왜 그리도 헛된 꿈을 품었는가. 그저 어머니께 자랑스런 아들이고 싶어서 였을까.


"아아 어머니, 아직도 제가 사랑스러우신가요?"

보크는 희미한 눈물을 지어내었다.

그때, 어딘가에서 어머니의 따스한 음성으로 보크를 향해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너는 아름다워."

자신의 왕이었다. 아아, 그를 배반했는데도, 지나칠 정도로 상냥한 그였다.
미안합니다, 나의 왕. 저는 이제 제 어머니에게로 갑니다.
부디...

엘데의 왕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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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마지막에 점자성서로 급 드리프트 하려다가 말았음.
게일=보크다 드립 보고 만들었음
급하게 만들어서 똥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