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리드의 황량한 벌판, 작은 부패의 권속 하나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창백한, 수십의 다리를 가진 흑발의 여인과도 같은 존재가, 바닥에 무방비하게도 널브러져 있었다.
순백의 피부는 자신의 동족들과 달리 수려했고, 난생 처음 보는 기관인 '머리카락'은 곱디 고왔다.

부패의 권속은 그녀의 몸체를 쿡쿡 찔러 보았다.
그러자 움찔거리는 느낌과 함께, 그녀가 깨어났다.
수줍게도 머리카락을 얼굴에 드리운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운 듯 했다.

부패의 권속은 자신들의 동족들에게 설명하듯이 최대한 수백의 팔을 논리적으로 움직여 그녀에게 케일리드 땅에 대한 것을 알려주었다.
그녀 또한 자신의 고향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루실이라는, 눈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도시의 물가에서 그녀는 왔다 말했다.

그래서 일까, 그녀는 태양이 내리쬐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 부패의 권속의 그림자로 숨어들었다.
그녀는 갑각이 없었다. 너무나도 고운 하얀 살은 케일리드의 뜨거운 태양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부패의 권속은 그녀의 몸을 안아, 자신의 거처로 옮겼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자신은 갑각이라도 있었으나, 그녀의 말랑한 살점들은 참으로 기묘한 느낌이었다.

그리마도 이 부패의 권속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랐다. 자신의 동족들과는 다르지만 묘하게 순수하고 귀여운 모양새였다.
무엇보다 자신을 보고 어찌 해야하나 당황하는 모습이 참으로 즐거워, 은연 중에 미소를 띄게 했다.

그리마는 부패의 권속에게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느냐 물었다. 부패의 권속은 자신의 은신처로 그녀를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곳에 그녀를 숨기고, 위험하지 않게 살필 것이다.
밥과 잠자리를 줄 것이다. 잠시나마, 그녀의 가족이 해야했을 역할을 대신할 것이다.


* * *


며칠이 지났을까, 그리마와 부패의 권속은 동거에 익숙해졌다. 처음엔 이성과 잠자리를 함께함이 조금 부담스러웠던 둘이었으나,
갈 수록 서로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졌다.

그리마는 이루실에서 부터 음식에 일가견이 있었다. 부패의 권속은 아침 해가 너무 뜨거울 그녀를 위해 밤마다 케일리드 땅을 산책시켜 주었다.
케일리드의 밤은 차가웠지만, 그녀를 위해 짠 (카페트를 재활용한) 스커트는 충분히 열감을 제공했다.

그 둘은 행복했다. 함께 에오니아의 늪에서 물놀이를 즐기기도, 함께 라단 병사들을 놀래키기도, 함께 부패병에 걸린 이족보행 강아지를 타고 놀기도 하였다.
이런 생활이 평생 간다면 어떠할까, 권속은 생각했다. 그러나 이윽고 웃으면서도 눈에 애수가 찬 그녀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녀는 아직도, 집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런 생활이 하루하루씩 쌓여가던 날, 그리마는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웠던 것이다. 자신의 고향, 이루실이.
너무나도 서럽게 우는 그녀를 본 부패의 권속은 그녀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으며 그녀의 목에 대고 속삭였다.

반드시 그녀를 집으로 향하게 하리라고.
그에 비견가는 맹세는 말레니아의 붉은 부패를 찬미하고자 했던 맹세와 견줄 정도였다.
사실 그는 이미 말레니아보다 이 그리마가 더욱 마음에 끌리던 터 였다. 말레니아 님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자신이 신앙을 조금 소홀리 함에도, 하나의 생명을 더 구함을 말이다.

그리마와 권속은 그날 밤 서로를 꼭 껴안았다.
한참을 껴안았을까, 그리마의 아랫도리에서 글레이브가 움찔거림이 느껴졌다.
수컷으로써 당연한 처사였다. 그는 의식하려 하지 않았으나, 본능적으로 글레이브는 칼날을 치켜세웠다.

그리마는 그런 그를 조금 당황스럽게 쳐다보더니, 곧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사랑을 속삭였다.
참으로 달콤하고 은밀한 속삭임이었다.
그녀는 그의 글레이브를 섬세하게 붙잡더니 그녀의 갈라진 갱도로 향하게 하였다.
그녀는 그날 그를 마치 거미처럼 옭아매었고, 그는 그녀를 마치 룬베어가 빛바랜 자를 찢듯 격렬히 다루었다.
그의 글레이브는 갱도를 마구잡이로 해집었고, 그리마는 부패의 권속을 더욱 깊이 껴안았다.
그리마가 거의 부패의 권속을 질식시키려던 순간, 부패의 권속의 글레이브에서 무수한 곤충실들이 터져나왔다.

둘 모두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그들은 유생이 아니였다. 순수했던 소년과 방황하던 소녀가 아니였다.
그 둘은, 가족이 된 것이다.

그날 밤 뒤로, 케일리드에는 새로운 종족이 부화했다.
하얀 피부를 가진, 이족 보행하는 흑발의 그리마들. 모두 그날 밤에 만들어진, 그 둘의 사랑의 결실일 것이다.

더 이상, 소녀는 향수로 울지 않는다. 이 곳에 그녀의 새로운 거처와, 새로운 가족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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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와 여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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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이루실 그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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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부패의 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