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는가? 미켈라의 칼날, 말레니아를."
치열한 접전 끝에 빛 바랜 자를 밀어붙인 말레니아가 말했다.
호흡이 흐트러졌다.
자세 또한 유지하기 힘들었다.
빛 바랜 자는 힘껏 쥐고있던 바스타드 소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 역시 정면돌파는 무리인가."
. . .
빛 바랜 자는 문득, 케일리드의 마술도시 사리아에서 습득한 "영원한 암흑" 을 떠올렸다.
또한 그 옆에 놓여있던, 영원한 도읍의 멸망이 기록된 문서를.
'우리의 탐구심은, 우리의 멸망을 초래했다.
우리의 멈추지 않는 학구열은, 우리의 멸망을 초래했다.
우리가 이것을 시험대에 올렸을때, 이것은 우리의 멸망을 초래했다.
이 역사는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빛 바랜 자는 이것이 어째서 봉인된 마술도시에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도덕심이 결여된, 오로지 엘데의 왕이라는 목표에만 목매여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죽음의 위협을 느낀다면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고 쓸 생각이었다.
...설령 그것이 자신과 자신의 세계에 멸망을 초래할지라도.
. . .
그때의 기억을 되살린 빛 바랜 자는 품 속에서 지팡이를 꺼내며 입을 다시 열었다.
"잘 알고 있지. 네가 미켈라의 칼날이란것 쯤은. 그런데, 너는 나를 알고있나?"
라고 말하는 그의 어둡고 깊은 동공에서 말레니아는 느꼈다.
지금 그를 죽이지 않으면, 이 세상에 끔찍한 일이 벌어지리라.
말레니아는 재빠르게 도약하여,
의수도를 길게 뻗고,
빛 바랜 자에게 우아함을 버린, 투박하지만 강력한 찌르기를 날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나도 늦고 말았다.
이미 빛 바랜 자는 지팡이를 치켜올리며 영창을 끝냈다.
이윽고, 성수 가장 깊은 곳 한가운데에서 기분 나쁜 푸른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목까지 차오르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삼키며 말레니아는 말했다.
"지금 귀공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고 있는가?"
"귀공은, 이 붉은 부패보다도 끔찍한 일을 벌일 생각인가!"
그녀의 외침을 들은 빛 바랜 자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알 바인가."
빛 바랜 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중에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검은 구체가 생겨났다.
그 검은 구체는 기분 나쁜 푸른 빛을 흩뿌리며, 주변의 공간마저 왜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구체에서는 틈새의 땅에선 볼 수 없는 양식의 물건, 건물의 잔해가 튀어나와 흩어지기 시작했다.
_________
*콰앙!*
대포항아리 수십개가 터진듯한 굉음과, 태풍과도 같은 풍압이 성수를 휩쓸었다.
간신히 자세를 유지한 말레니아와, 멀리 날아가 쓰러진 빛 바랜 자는 일제히 검은 구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검은 구체에서 튀어나온 이 자는 누구인가.
갑옷이나 검의 양식은 이 땅의 것이 아니다.
이 자는 대체 어디서 온 자인가?
빛 바랜 자는 여기서 생각을 멈추지 않고 더 깊이 생각하였고, 답을 내렸다.
"영원한 도읍의 멸망을 초래한것은, 다름아닌 이계의 존재였던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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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암흑.
그 마술은 본디 적의 마술을 모두 흡수하여 무의 공간으로 보내는 방어용 마술이었다.
그러나 설계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따금씩 이계의 흔적을 뱉어내기도 하였다.
그들은 그 작은 흠집을 발견해내지 못했고, 그것을 보수하지 못하였다.
결국 그들이 최종적으로 도읍 방어용 마술로서 기동하기 위하여 시험대에 올렸을 때, 이계의 존재의 침입을 받아 멸망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빛 바랜 자가 사용한 영원한 암흑은 또 다시 이계의 존재를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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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음의 정체는,
구체의 반동으로 날아가 벽에 박힌 게일이었다.
게일은 난쟁이 왕들을 뜯어먹으며 다크 소울을 섭취한 직후였기에,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아니, 정신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는 지금 오로지 화가소녀의 그림을 위한 다크 소울을 섭취하는것이 목표였다.
말레니아는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게일을 향해 소리쳤다.
"그대는 누구인가! 어디서 온 자인가!"
그러나 게일은 그 말을 들은 것인지 아닌지 머리를 부여잡고 흐느끼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잠시동안 정적이 흐르고, 게일의 몸에 새겨진 다크 링은 점점 더 깊어졌다.
다크 링의 깊어짐과 동시에 게일은 괴성을 지르며 말레니아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말레니아는 간신히 게일의 첫 공격을 막아내고 뒤로 도약했다.
말레니아와 게일의 첫 합.
말레니아는 그 첫 합에서 과거 파쇄전쟁, 라단과의 전투를 떠올렸다.
본디 그녀는 불패의 전사. 지금껏 해온 전투에서 단 한번도 자신의 호적수를 만나지 못하였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만난 호적수, 혹은 자신보다 근소우위에 있는 라단과의 전투.
그녀는 그 전투에서 전투의 고양감을 처음으로 깨우쳤다.
파쇄전쟁이 끝난 직후 그녀는 납치된 오빠를 그리워하며, 그 고양감을 잊은 채 무기력하게 지내왔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게일과의 첫 합에서 라단과의 전투에서 느낀 고양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말레니아는 웃으며 게일에게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누구이길래 이토록 강한것인가."
말레니아는 이 늙은 남자에게 자신의 전력을 부딪힐 심산이었다.
그리고 게일은 다시 한번 벼락과도 같은 속도로 도약하여 말레니아에게 이가 나간 대검을 내질렀다.
*캉!*
말레니아는 간신히 그 두번째 공격을 흘려냈다.
흐트러지기 직전의 자세를 고쳐잡은 말레니아는 빛 바랜 자에게 했던것과는 다른, 강력하지만 우아하게 의수도를 내질렀다.
말레니아의 의수도는 게일의 다크 링을 궤뚫었다.
하지만, 게일은 그 찌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파고들어 말레니아를 저 멀리 날려버렸다.
말레니아는 날려보내져 벽에 박힌 후, 각혈을 하며 감탄을 하였다.
"가공할만한 힘이군! 마치 라단 장군을 떠올리는 듯한 힘이다!"
한껏 달아오른 고양감 때문인지 그녀는 웃으며 재빠르게 튀어나가 빠르게 게일을 연속으로 베었다.
*카카카카캉!*
그러나, 살이 썰리는 소리가 아닌 무언가에 튕기는듯한 소리만이 났을 뿐이었다.
게일은 단순히 짐승처럼 싸워왔지만, 말레니아의 첫 공격에서 위험을 느끼고, 자연스레 방어를 하게 된 것이다.
잠시 당황한 말레니아였지만 이내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게일에게 달려들어 의수도로 베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게일이 오히려 그녀의 공격을 회피한 뒤, 돌진하여 그녀의 배를 관통했다.
말레니아는 크게 각혈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녀가 누구인가. 불패의 전사, 미켈라의 칼날. 또한 부패에 저항하는 자. 그녀는 부패에 저항하는 의지를 검에 담고 다시 일어나, 공중에 날아올랐다.
"그대는, 이 공격을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말레니아의 물새 난격이 작렬했다.
게일의 살갗과 옷은 찢겨나갔고, 그 난격이 끝나갈때 즈음엔 고고하게 서 있는 말레니아와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고 쓰러진 게일이 있었다.
말레니아는 찬사를 보내며 그에게 다가가려던 순간,
"아아... 이것이 피인가?"
"... 다크 소울의 피인가?"
게일은 사명을 완수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정신을 놓았다.
그는 망자가 되었고, 그의 육체는 서서히 다크 소울이 잠식하기 시작했다.
말레니아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의 게일을 경계했다.
'분명, 그의 살을 모조리 찢어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째서 저 남자는, 아니 저 괴물은 멀쩡하게 서있는가?'
어느새 게일의 짐승과도 같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주인을 지키는 기사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아니, 마치 그렇게 보였다.
그의 망토는 살아움직이듯 자유자재로 나풀거렸고,
그의 수염으로 가려진 얼굴에서는 검붉은 기운만이 흘러나왔다.
두번 째 전투는 말레니아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말레니아가 곧바로 도약하여 게일을 향해 검을 내질렀고, 게일은 그 공격을 비웃듯이 망토로 흘려보낸 뒤, 회전하며 검으로 역공하였다.
말레니아는 다시 한번 바닥에 처박혔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일어나서 싸웠다.
말레니아가 크게 돌아 횡으로 베었다.
게일은 망토를 날개삼아 높게 점프하여 오히려 말레니아를 내려 찍었다.
이번에는 말레니아가 그의 공격을 회피하였고, 순식간에 게일을 수십번 베어냈다.
잠시 게일의 자세가 무너졌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말레니아는 재빨리 파고들어 또 다시 수십번 베어냈다.
치열한 전투 속 에서도 다크링은 점점 더 깊이, 게일의 몸을 좀먹고 있었다.
수세에 몰린 게일은 크게 뒤로 후퇴하여, 석궁을 꺼내 난사해댔다.
말레니아는 볼트 세례를 가볍게 흘려내었으나, 곧바로 날아온 게일의 백교의 수레바퀴는 미처 막지 못하였다.
백교의 수레바퀴가 스친 그녀의 팔은 시꺼멓게 타들어갔다.
하지만 말레니아는 아랑곳않고 역으로 물새 난격을 또다시 퍼부었다.
게일 또한 그에 맞서 망토와 대검을 휘둘렀다.
그 둘의 충돌은 가히 파름 아즈라의 돌풍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수준의 충돌이었다.
둘의 충돌로 인해 자욱한 흙먼지가 그들을 감쌌다.
이후, 흙먼지가 잦아들자, 주저앉은 모습의 게일과 말레니아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다크 링은 완전해졌고, 다크 소울이 게일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또한 말레니아는, 그녀 속의 부패를 더 이상 억제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몸 주변에 붉은 꽃잎과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게일은 흐느끼며 몸을 웅크렸고,
말레니아는 몸에서 붉은 꽃을 피워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잠시동안 정적이 흘렀고,
그 정적을 깨는 것은 게일의 포효였다.
게일이 크게 울부짖으며 다크 링에서 무수한 인간성을 방출해냈고,
그에 답하듯 말레니아 또한 꽃봉오리를 단단히 치켜세운 채 바닥으로 낙하했다.
게일의 인간성이 대지에 닿자, 그것은 곧 푸른 번개가 되어 성수를 무참히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 푸른 번개는 곧 신의 재탄을 알리는 것이었다.
또한 말레니아는 붉은 꽃봉오리를 화려하게 펼치며 완전한 부패의 여신으로 각성하였다.
게일은 다크 소울의 힘으로 인해 더욱 강해진 대검을 말레니아에게 겨누었고,
말레니아 또한 그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귀공은, 끔찍한 것을 보게 되리라."
"썩어라!"
말레니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게일은 자신의 망토를 날개삼아 높이 날아, 석궁을 겨누고 그녀에게 무수한 볼트세례를 퍼부었다.
말레니아는 이미 아까 전의 전투에서 볼트 뒤에 날아올 백교의 수레바퀴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집중하여 볼트를 모조리 쳐내고, 백교의 수레바퀴를 피하기 위해 자세를 낮춘 순간이었다!
*촤악-*
지면에 말레니아의 불쾌한 썩은 피가 흩뿌려졌다.
게일의 육중한 대검이 말레니아의 복부를 베어내는 소리였다.
말레니아는 당황하였으나 이내 곧바로 자세를 다시 잡으며 물 흐르듯이 적을 공격하는 유수 검술로 게일을 베어냈다.
그러나 완전히 다크 소울에 잠식된 게일의 육체는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다.
그녀의 의수도가 베어낸 살갗은 스친 상처만 났을 뿐이었다.
다크 소울의 본능인지, 게일은 그녀의 의수도가 본인을 간지럽히는 벌레와 같다고 판단을 내린듯이 그녀의 공격을 당당하게 정면으로 받아내며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가, 완전한 부패의 여신으로 각성한 말레니아 또한 그에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온 힘을 실어 지른 찌르기에서는 에오니아 나비가 피어오르며 붉은 부패를 폭발시켰고, 그것은 확실히 게일에게 유효타를 만들어냈다.
게일이 주춤한 잠시의 틈.
말레니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부패의 기운이 담긴 물새 난격으로 게일을 무참히 베어냈다.
그녀의 의수도가 스친 자리 곳곳에서 부패가 터져나왔고, 게일 또한 신음을 하며 고통스러워 하였다.
말레니아는 그 기세를 몰아 게일을 몰아붙이려 하였고, 말레니아가 게일을 내려찍기 위해 공중에 뜬 순간,
게일은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찰나의 틈새, 그녀가 당황한 그 순간 게일은 말레니아의 머리 위에서 흰 빛을 내며 나타났고, 공중에서 파고들어 어두운 기운으로 물든 망토와 함께
그녀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추락시켰다.
하지만 게일도 마찬가지로 이전의 부패가 여러번 터진 탓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추락한 말레니아는 다시 일어나며 처음보다는 작은 붉은 꽃을 다시 피워내기 시작했다.
게일도 다시 그에 맞서듯 포효를 내지르며 다크 링에서 인간성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게일의 다크 링에서 쏟아져나온 무수히 많은 인간성은 말레니아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고, 말레니아는 동시에 꽃을 만개시켜 대부분의 인간성을 지면으로 튕겨냈다.
그의 필살기를 막아냈으리라 생각한 말레니아는 곧바로 게일에게 돌진하였으나,
잠시 뒤 인간성이 처박힌 자리에 커다란 푸른 번개가 내리 꽂히기 시작했다.
그 번개는 주변의 지형지물을 모조리 파괴시켰고, 말레니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푸른 번개를 직격으로 맞은 말레니아는 육체에 큰 손상을 입음과 동시에 의식을 잃었다.
확실한 승리를 느낀 게일은 말레니아를 마무리하기 위해 지친 육신을 이끌고 말레니아에게로 향했다.
그 순간,
말레니아가 공중으로 떠올랐고
그 아래에는 부패가 구현된 무언가가 폭풍과도 같이 일었다.
그 상태에서 의식을 다시 되찾은 말레니아가 손짓하자, 그 부패의 폭풍에서는 마치 말레니아를 똑 닮은 것들이 튀어나와 차례대로 게일을 관통하며 베어냈다.
게일은 곧바로 망토를 휘감아 데미지를 최소화 하였고, 마지막으로 검을 내지르며 돌진해오는 말레니아를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끝내겠다는 일념으로 어두운 기운이 응축된 대검으로 맞찔렀다.
그 둘은 서로를 찌른 채 그 자리에 멈추었다.
_____________
빛 바랜 자는 그 둘의 두 번째 격돌에서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린 그의 옆에는 또 다른 자신과 비슷한 인간이 앉아있었다.
처음 보는 양식의 갑옷을 입은 그는 빛 바랜 자에게 말을 건넸다.
"저 검은 구체, 네가 만들어 낸 거지?"
빛 바랜 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질문을 했다.
"넌 누구지? 뭐라고 불러야 하지?"
그는 잠시 빛 바랜 자를 응시하더니 대답했다.
"재의 귀인이다. 네가 만들어낸 저 구체의 희생양이기도 하지."
빛 바랜 자가 이해 못한듯이 "희생양?" 이라 되물었다.
재의 귀인은 어이없다는듯이 웃으며 말했다.
"저 구체 말이야, 저것 때문에 아까까지 저 여자랑 싸우던 빨간망토와 내가 여기로 빨려 들어왔다고."
"게다가 지금은 저 구체, 점점 작아지고 있어서 어쩌면 다시 못돌아갈지도 모른다고."
그러고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소녀한테 물감을 전해줘야 하는데 말이야...'
그럼에도 빛 바랜 자는 그런 것은 알 바 없다는 듯한 태도로 말을 꺼냈다.
"그거야 안됐지만, 나는 저 여자를 없애고 엘데의 왕이 될 생각이었다고."
"오히려 너희들이 난입해서 내 계획을 망친 것이 아닌가?"
재의 귀인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녕 이것이 인간의 마음을 가진 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말이란 말인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조차 지려하지 않는 빛 바랜 자에게 증오가 들끓기 시작했다.
재의 귀인의 표정을 본 것인지 안본것인지, 빛 바랜 자는 계속해서 개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침 저 둘, 완전 죽기 직전이잖아. 재의 귀인이라고 했나? 어때, 너도 함께 저것들을 마무리 하자."
"그렇게만 하면 내가 엘데의 왕이 될 수 있다. 내 바로 밑 장군 자리는 너에게 주는것도 가능하다고?"
재의 귀인은 그의 혐오스러운 발언을 꾹 참고 그에게 협력하는 척 얘기했다.
그가 엘데의 왕을 코앞에 두고 있을때 그를 뒤에서 죽여버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마무리 지으러 가보자고."
빛 바랜 자는 바스타드 소드를 집어들어 빈사상태인 말레니아와 게일 쪽으로 움직였다.
재의 귀인 또한 그를 뒤따라 움직이며 점점 작아져가는 구체를 보고 생각했다
'아직 저 정도면 크기는 충분하다.'
"자, 재의 귀인. 너는 그 늙은이를 맡아라. 이 썩어빠진 년은 내가 마무리 할테니."
빛 바랜 자가 바스타드 소드를 그녀의 목에 가져다 댄 후, 내려치려는 순간!
*푸욱!*
빛 바랜 자의 복부를 롱소드가 관통하였다.
"너, 너 이 새끼 이게 지금 무슨..."
"닥쳐라."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재의 귀인은 롱소드를 올려베었고, 빛 바랜 자의 상반신은 반으로 갈라진 채 비참하게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후, 재의 귀인은 조용히 게일의 숨통을 끊어주었고, 그의 갑주를 떼어내 다크 소울의 피를 갑주조각에 담아 품 속에 챙겨넣었다.
게일의 시신은 점차 흩어져 소울 조각이 되어 완전히 사라졌고, 재의 귀인이 구체 속으로 들어갈 때 즈음 말레니아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자신의 앞에 쓰러진 빛 바랜 자의 시체를 보고는 구체 속으로 들어가는 재의 귀인을 불러세웠다.
"귀공!"
재의 귀인은 잠시 뒤돌아보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구체 속으로 들어갔을 뿐이었다.
말레니아는 구체를 보며 나지막히 속삭였다.
'이계에서 온 이여, 고맙습니다...'
이윽고 검은 구체는 점점 사라지더니, 마지막에는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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