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심해라, 621. 상대는 베스퍼 부대의 그 러스티다. 추가적인 정보를 흘리지 않게 주의하도록. ]

 621은 월터의 통신에 알겠다고 답신하고서 통신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AC에서 나와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이유인즉 아르카부스 측에서 기이한 의뢰를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그 의뢰란, IV 러스티와 독립 용병 레이븐을 면대면으로 만나게 해 달라는 의뢰였다.

"레이븐. 정말 괜찮겠어요? 아무리 그가 당신의 전우라고 해도, 아르카부스가 아무 생각 없이 그를 보냈을 리가 없어요."
"괜찮다."

 621의 쌀쌀맞은 대답에 에어는 그래도 조심하라는 말만 남기고 잠잠해졌다. 621은 오랜만에 화장실에서 외모를 다듬었다. 종일 AC에 탑승하느라 검댕 투성이가 된 얼굴, 여기저기 부딪히고 까진 팔다리.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목욕을 마치고 옷도 갈아입으니 꽤 볼만해졌다.

 월터가 이번 의뢰를 수락한 이유는 단순했다. 엄청난 거금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백만 COAM이라니, 월터는 그런 돈이 있으면 차라리 병기 개발에 쓰라고 조소하면서도 결국 자본력에 패배했다. 621은 딱히 긴 설득 없이도 묵묵히 승낙했다.

 의뢰에 감정이 요구될 필요는 없다. 그저 행할 뿐.

"음식이 타고 있어요, 레이븐. 어서 오븐을 꺼야 해요."
"알고 있다."

 621은 옷소매를 정돈하고 오븐에서 음식을 꺼냈다. 루비콘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로 간단하게 조합했지만, 정찬으로는 나름 괜찮았다. 그는 음식을 식기에 덜고 식탁보를 깐 테이블 위에 올렸다. 마침 러스티가 통신을 걸었다.

[ 여, 나다. 전우. 지금 네 정비소 앞에 있어. 준비는 됐나? ]

"물론. 어서 와라."

 바깥에서 AC의 구동음이 들렸다. 곧 러스티가 정비소의 초인종을 눌렀다. 621은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한 번 빗고 문을 열었다. 러스티는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군, 전우. 상상보다 실물이 낫..."

 하지만 러스티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첫째는 621이 그의 생각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무엇을 예상하든 전부 빗나갈 정도로 곱상하게 생긴 탓이었다. 그가 잠시 말이 없다, 621이 마저 답했다.

"칭찬 고마워. 먹을거리를 준비해뒀으니 같이 식사하지 않겠어?"
"그... 래. 그러지."

 러스티는 식탁에 앉아서도 한참을 생각했다. 레이븐은 남자가 아니었나? 목소리가 젊은 느낌일 뿐, 분명 통신에서도 남자였는데.

 그러나 그와 마주앉아서 배양육을 나이프로 써는 621은 아무리 봐도 여자 같았다. 러스티는 떨떠름하게 소스에 절은 배양육을 입에 집어넣다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 전우. 혹시 여자였나?"

 621은 아무렇지 않게 그의 기대를 배신했다.

"남자다."

 러스티는 할 말을 잃고 식사에 집중했다. 아르카부스는 당연히 레이븐의 정보를 파헤치기 위해 그를 보냈지만, 그들도 이 독립 용병이 미소년일 줄은 추호도 몰랐을 것이다. 러스티는 벌써 내용을 보고할 생각에 골이 아파왔다.

 어느새 식기가 비었다. 621은 미리 월터와 칼라에게 배운 집주인의 예의대로 그릇을 치우기 위해 러스티에게 다가갔다. 러스티는 순간 기겁하며 본인이 치우겠다고 선언했다.

 621은 이유를 몰랐으나, 그것은 그가 뿌린 향수의 향이 러스티에게는 퍽 외설적이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 식사 잘 했어. 그럼 그만 가보도록 하지."
"가는 길 조심해라. 러스티."

 러스티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급박하게 닫았다. 621이 이유를 묻자 그는 당황스레 답했다.

"폭풍이 오는군."

 621은 에어의 '폭풍이 오고 있는 것은 맞으나 베스퍼의 에이스가 저 정도 바람을 뚫지 못할 이유는 없...' 따위의 조언을 무시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자고 가라."

 그렇게 본의 아닌 동침이 성사되었다. 은근한 조명이 명암을 흐렸다. 그 안에 둘이 있었다.

"침대가 정말 하나뿐인가?"
"그렇다만. 모포라도 깔아줄 테니까 바닥에서 자겠어?"
"...아니, 됐다."

 본래 621 혼자 생활하던 공간. 모포는 여럿 있더라도 침대는 하나가 전부였다. 그리고 621은 감정 제거 시술의 결과 배려심마저 잃어버렸는지 본인이 바닥에서 자겠다는 말은 절대 꺼내지 않았다. 러스티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는 621에 대해 조사하고, 사고를 방지하려면 최대한 붙어있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좋아. 눕도록 하지."
"...그래."

 분위기는 금세 묘해졌다. 정확히는, 러스티 혼자만이었다. 621은 정자세로 누운 채 살아있나 싶을 정도로 작게 새근댔다.

"전우, 깨어 있나?"

 막 조는 참이었는지 답이 늦었다.

"...그렇다만."
"루비콘 해방 전선 말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어떻게라니?"

 러스티는 목 언저리에 달아놓은 도청기를 만졌다. 확실히 꺼져있다. 핸들러 월터가 미리 도청기를 무력화시키는 장치를 준비했다고 하면 되니, 대화는 자유롭다.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나?"

 621은 말이 없었다. 러스티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굳이 되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621이 원체 주관적 가치에 입각한 판단이 늦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글쎄. 모르겠어."

 이번엔 621이 러스티를 깨웠다. 621은 괘념치 않고 말을 이었다.

"다만, 그건 알겠어. 넌 좋은 전우다, 러스티."

 그 순간 러스티는 확 잠이 깼다. 귓가에 뜨거운 기체가 닿았다. 621의 숨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종종 도와주면 좋겠어. 나도 널 도울 테니."

 621의 말 자체는 월터가 오늘 내내 '제발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칭찬이든 뭐든 좀 해서 좋은 관계 만들어봐라. 기업한테 찍히면 지금은 상황이 안 좋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들은 탓이었다. 하지만 러스티는 전투에서 보이던 침착성을 잃고 621을 밀어붙였다.

 코랄에 찌든 붉은 눈이 러스티를 마주했다.

"왜 이러지, 러스티."
"잠깐, 미안하다. 잠깐만."

 러스티는 스스로 혼란스러웠다. 이상하게 긴박한 전투에서도 조용하던 심장이 621을 마주하자 아플 정도로 내달렸다.

"전우, 남자라고 했지?"
"물론이다."

 그렇다. 분명히 남자다. 하지만 러스티는 머리로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기 분열이 이뤄지던 순간, 러스티는 명쾌한 해답을 꺼냈다.

"...그래, 그렇지. 쉬운 거였는데."

 그는 621의 어깨를 붙잡고 중얼거렸다. 621은 조심스레 물었다.

"러스티?"

 러스티는 답을 냈다.

 여자든, 남자든 무엇이 중요한가.

 내 아랫도리가 반응하고 있는데.

"...정말 미안하다, 전우."
"그러니까 무엇을-"

 그날, 러스티는 허리가 휘었고 621은 전장연 기체에 쌍송버드와 2짐머만으로 아르카부스를 멸망시키고 루비콘을 해방시켰다.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