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루비콘의 땅. 잿더미와 잔불이 일렁이는 폐허와도 같은 행성에서, 하운즈 부대는 그들의 주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617, 619, 620. 618은... 저번 임무에서 전사했나.'
참으로 무뚝뚝하고, 험악하고, 핸들러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수한 개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장본인.
하지만 그들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하운즈, 작전 영역에 도달. 페이즈 2 진입."
세 대의 AC가 비탈을 발판 삼아 도약했다. 그 순간 허공에 짧게 푸른 선이 그어지더니, 레이저가 작렬했다. 퀵부스트로 궤도에서 벗어난 617은 무사했다. 하지만 한 명은 그러지 못했다.
푸른 섬광이 619의 기체를 꿰뚫었다.
고출력 레이저에 콕핏이 통째로 융해되었으니, 생존은 기대할 수 없다. 애초에 이곳의 모두가 생환을 염두하진 않았다. 619는 유언이라는 듯이 스물네 발의 미사일을 흩뿌렸다. 그리고 생전 남기지 못한 스물네 마디의 말은 적의 방어벽을 무너트렸다.
617과 620은 핸들러 월터의 브리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
"또 왔나? 질리지도 않나 보군."
어느 차고의 문으로 지팡이를 쥔 그림자가 비친다. 한창 PDA를 쳐다보던 정비공은 문간을 돌아보며 말한다.
"617이랑 다른 놈들은 어떻게 됐지?"
지팡이를 쥔 남자는 답하지 않는다. 정비공은 혀를 차고는 그의 이름을 부른다.
"핸들러 월터."
무수한 목줄의 주인은 그때까지도 하운즈에게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을 곱씹고 있었다.
-
'너희를 이을 하운즈, 621이 오고 있다. 그 녀석을 루비콘으로 잠입시키기 위해, 너희는... 모두 죽어야만 한다.'
그것이 개요였고, 전부였다. 하운즈는 모두 이곳에서 죽는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강화인간을 지금 밟고 있는 땅으로 보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모든 것이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도 않을 테지만.
뇌가 익어버린 강화인간에게 의미라고는 전쟁밖에 없다.
"619 로스트."
619가 동료였나?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료애는 딱히 없었고, 지금도 슬프지는 않고, 오직 목적과 동기만이 새겨져서 617과 620을 차가운 광기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그 동기도 희미하다.
잠시 활공하던 두 AC는 다시 땅을 밟는다. 617의 왼쪽 어깨에서 전개된 펄스 실드는 잠시나마 총탄을 방어하다가, 곧 그의 왼쪽 팔과 함께 떨어져나간다. 있던 것이 단숨에 사라졌다. 환상통이 엄습한다.
"최적의 침입 루트, 재계산 게시."
그래도 아직 개틀링을 들고 있다. 620은 화력이 떨어지지만 대신 기체가 가벼우니,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다.
불길하게 다가오던 진동이, 카타프락토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나타나도,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다.
-
"기능 외에는 죽은 거나 다름 없..."
"됐으니까 기동시켜."
참담한 모습이다. 한 인간이 여러 포의 비닐로 싸여서 오직 도구인 양 누워 있다. 그러나 인륜을 따지기에는 너무 늦은 시대다.
"그래 뭐, 재고 처리하는 수고는 덜었군."
정비공은 혀를 차고 PDA를 두드린다.
-
강렬한 금속 마찰음이 AC의 청각 센서를 긁어댔다. 617의 등에서 불티가 튀어올랐다. 카타프락토이에게 짓눌리는 것을 면한 그는 당장의 행운보다는 직면한 불행에 집중했다.
AAS 02 카타프락토이. PCA의 MT 기반 대형 지상 전차. 무기는 6연장 개틀링 2문과 4연장 대구경 개틀링 캐논. 그리고 미사일 발사대와 레이저 산탄 포대.
육중한 죽음이 둘을 맞이하러 나왔다.
그러나, 아직이다.
그 사이 예열이 완료된 617의 개틀링에서 총탄이 쏟아졌다. 하지만 움직이는 무장 요새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적의 총탄이 617의 기체를 난도질한다. 그래도 버틸 수 있다. ACS 부하는 오지 않았다.
617은 전율했다.
620이 그를 제치고 카타프락토이에게 핸드건을 난사했다. 파일럿은 곧바로 대상을 전환한다. 상부의 산탄 레이저 포대가 특유의 에너지 충전음을 내며 가동된다. 620은 아랑곳하지 않고 탄창을 비운다.
채 유언을 남기기도 전, 그는 619와 같은 최후를 맞았다.
617의 마음 속에 강렬한 증오심이 피어오른다.
"620 로스트."
카타프락토이의 주포는 순간 617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는 순식간에 인접하여 카타프락토이의 동체와 정면으로 맞섰다.
AC가 행성봉쇄기구 최강의 지상 전력과 맞설 수는 없다.
당연히, 파일럿이 살아나온다는 전에 하에.
카타프락토이의 추진에 밀리던 617은 시스템의 온갖 경고를 무시하고 제네레이터의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카타프락토이가 멈췄다. 617도 그러하다. 서로 추진력이 상쇄된 순간, 그는 카타프락토이의 본체에 개틀링의 머리를 꽂아넣는다. 두 병기의 데스매치가 시작된다.
617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의 콕핏은 제네레이터 과부하로 용광로가 되어가는 중이었으니까.
산 채로 익어가는 와중에도 발사는 멈추지 않는다.
'이 미친 자식이! 같이 죽을 셈이냐!'
아마 카타프락토이와 통신되었다면 저런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투는 아이러니하리만치 고요하다.
입으로 증오를 토해낼 바에는 납탄이라도 하나 더 꽂아주라.
개틀링이 과열되어 총신이 붉게 발광했다. 멈추지 않았다. 총구 하나가 용해되어 총탄이 비틀거렸다. 상관없었다. AC의 부하가 한계에 이르러 그 자신의 살 타는 냄새가 느껴졌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카타프락토이는 마지막으로 발악하려는 듯 출력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곧, 장갑을 뚫고 내부를 헤치던 총탄이 심부에 이르렀다.
폭발이 두 파일럿을 휩쌌다.
617은 아마 잠깐은 혼절했을지도 모른다.
"타깃 정보 갱신."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죽음으로 도피할 자격이 없다. 승리의 외침도 이르다. 그는 오른팔에 찾아오는 자욱한 환상통을, 전신을 감싼 아득한 작열통을 비집고 AC를 일으켰다.
"작전, 페이즈 3로 이행."
눈앞에 레이저 포대가 있다. 그런데 그에게는 무기가 없다. 다만 절망도 없다. 코랄에 뇌가 익은 강화인간이 되었을 때부터, 어느 비극도 그를 절망시키지 못했다.
동료의 뒤를 따를 때가 왔다.
등이 열리며 펄스 장치가 전개되었다. 실드가 아니다. 어썰트 아머다. 그는 이미 수명이 다한 제네레이터와 그 자신을 억지로 끌어내며 마지막 공세를 준비했다.
그는 역설적인 차분함으로 읇조렸다.
"핸... 러... 월, 터..."
삶에 의미를 준 사람, 그 의미가 죽음을 향한 발악이라고 해도, 잠시나마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대해준 자.
"먼, 저... 지옥... 서... 기다... 습니다..."
펄스가 최대로 충전되었다. 방금의 전투에 부스터마저 기능을 잃었다. 그러나 단 한 번,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의 퀵 부스트만 할 수 있다면.
"천천... 히... 오, 십... 시오..."
그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화인간이 되기 전부터 바라고는 했다.
"아버...-"
그는 소망을 이뤘다.
"작전 종료 시퀀스, 이행 완료."
-
침상을 감싼 기기들이 하나씩 물러나고, AC의 코어가 다가온다.
"621..."
핸들러 월터는 자신의 새 번견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가에는 기이한 애수가 어렸다. 그러나 그는 곧 물기를 지우고, 딱딱하게 말했다.
"네게, 의미를 부여하겠다."
AC가 고개를 들었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는 AC의 시각 센서가 있을 부분을 바라보며, 한결같이 무뚝뚝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일 할 시간이다."
잠시간의 정적, 그리고 AC의 시각 센서가 붉게 점등되었다.
강화인간 621이 눈을 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