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자.


 그것은 저주를 받아 더 이상 죽지 않게 된, 아니 죽지 못하게 된 사람을 말하며, 그들의 몸에는 저주의 증거인 다크링이 나타난다.


 소년은 언젠가 어른들이 불사자에 대해 말하는 걸 엿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했기에 잊고 있었지만, 새삼스레 그 때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된 것은 소년의 가슴팍에 불길한 검은 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소년이 깨달은 것은, 마을 사람들의 꼬챙이에 목이 꿰뚫려 야산에 내팽개쳐졌을 때였다.

 소년은 다음 날 내팽개쳐진 자리에서 멀쩡하게 눈을 떴다.


 조금 잔혹한 이야기일까.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너무 흔해빠진 이야기였다.


 이 정도의 일은 너무 흔해빠진 세계가 되었다.


 “주인장...... 그, 그, 맥, 맥주...? 그래. 맥주 한 잔 주시게.”


 옆 테이블에 앉아 한참동안 머리를 쥐어 싸매고, 뭔가를 필사적으로 떠올리던 기드넥이 말했다.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소년은 이제야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기드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기드넥 역시 불사자다.

 불사자는 영원불멸하지만, 그 정신까지 영원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었던 시절의 파편만이 남는다.


 하지만 그 파편은, 불사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이다. 불사자인 자신이 인간이었다는 증거. 자신이 자신이라는 증거.

 잘은 몰라도, 기드넥에게는 일상을 끝내고 펍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신다는 기억이 남아있는 거겠지.


 잠시 후, 무뚝뚝한 주인장이 맥주 한 잔을 기드넥 앞에 갖다 주었다. 그리고 기드넥은 자신 앞에 놓인 맥주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다시 한 번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추하다. 그리고, 처절하다.


 하지만 그 꼴이 결코 우습지는 않다고, 소년은 쓴 웃음을 지으며 자신 앞에 놓인 럼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자신과 기드넥의 차이는 흐른 시간의 차이 정도밖에 없었다. 자신은 좀 더 늦게 불사자가 되었고, 기드넥은 더 빠르게 불사자가 되었다.

 그 뿐이다. 결국에는 둘 다 망자가 된다는 건 변함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곳 불사자의 거리에서 망자가 되면 추한 꼴로 세상을 배회하지 않고 말뚝에 박혀 얌전히 말라죽는다는 점이겠지.


 여기에는 곳곳에서 몰려든 불사자들이 가득하지만, 저기 있는 무뚝뚝한 주인장처럼 멀쩡한 인간들도 있으니까. 물론, 여기까지 올 정도면 그리 멀쩡한 인간도 아니겠지만.


 “거, 영감탱이. 말 좀 시원시원하게 빨리 이어보쇼.”

 “아, 미안하네. 근데 이게 나이가 나이인지 오래 입을 열면 목이 많이 말라. 이거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는지. 쿨룩, 쿨룩.”


 그 때, 선술집 한 구석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곳에는 으레 공짜술을 기대하는 이야기꾼이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 해도 이번 이야기꾼은 꽤나 말을 잘하는 듯 꽤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주인장!! 여기 맥주 한 잔!! 아니, 두 잔 갖다주쇼!!”


 무뚝뚝하지만 돈 벌 때만큼은 행동이 잽싼 주인장이다.

 곧바로 맥주 두 잔이 나타나자, 노인은 씨익 웃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 했었지?”

 “가고일. 그 가고일 두 놈 잡고서 종을 울린 거까지 이야기했소.”


 “그래, 그래. 아르토리우스는 불사자의 예언에 따라 첫 번째 종을 울렸지. 그리고ㅡ”


 맥주로 목을 적신 노인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마치 노인의 이야기에 빨려드는 것처럼 인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선술집에서 이야기꾼이 입을 터는 일은 으레 있는 일이고, 그 내용은 십중팔구 하잘 쓰잘데기 없는 잡소리에 불과하다. 20대 초반의 어린 외모이지만, 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소년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얼핏 불사자라는 말이 들려온 탓일까, 소년은 인파 속에서 노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야 말았다.


 아르토리우스는 마침내 두 번째 종을 울려냈고, 태양신의 오랜 친우라는 프람트를 만났다.


 “영감. 뒷이야기는 없소?”

 “있지. 걱정하지 말고 내일 내 맥주 값이나 좀 챙겨오게.”


 이야기꾼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인파들은 노골적으로 아쉬워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어느새 주방에서 목을 빼놓고 이 쪽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떤 주인장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이야기꾼은 다음 날도 찾아왔고, 그 다음 날도 찾아왔다. 시큰둥한 척 이야기를 듣던 소년은 어느 샌가부터 맨 앞에 앉아서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혼자만의 힘으로 심연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불의 시대를 다시 열어낸 불사자 아르토리우스.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리는 일만 남아있던 소년에게, 가지고 싶은 미래가 생겼다.



= = = = =



 팔란의 불사대? 그 미친놈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니, 당신도 특이한 양반이네.


 뭐, 돈을 받았으니 이야기는 해야겠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될 지 모르겠네. 그 쪽도 알고 있겠지만 이 별종들이 언제부터 활동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 제각각이거든.


 심연의 분노를 때려잡았을 때부터인지, 네그롯사의 파멸 때부터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리솔 지하묘지 원정 때부터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거야.


 근데 그건 당연한 일이야. 이 집단은 언제 갑자기 딱!! 하고 결성 되서 ‘우린 오늘부터 심연을 조질 거다!!’라고 선언이라도 한 게 아니니까.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도라이 같은 불사자가 심연을 처리하겠다고 나대기 시작했지.

 비명횡사하기 딱 좋은 일이지만, 이럴 땐 불사자인게 도움이 되기도 하나봐. 목숨 걱정은 안하고 주구장창 덤빌 수 있으니까.


 근데 원래 한 놈이 지랄을 떨면 그냥 지랄인데, 여럿 놈이 지랄을 떨면 정성이라고 하잖아? 놀랍게도 이 세상에는 또라이 같은 불사자가 한 놈이 아니었던 거야.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불사자가 생판 모르는 불사자를 위해 같이 뛰어들기 시작했지. 그렇게 한 놈이 두 놈이 되고, 두 놈은 다섯 놈이 됐어. 그게 반복되다보니 그 악명 높은 심연의 감시자들이 된 거고.


 근데 팔란의 불사대 전원이 심연의 감시자들은 아니야. 심연의 감시자들은...... 뭐랄까, 그 또라이들 중에서도 또라이들을 말하는 거지. 형씨도 양 손에 대검이랑 단검 한 자루 씩 들고 있는 놈이랑 만나면 일단 도망부터치고 보라고. 주변에 심연이 있거나, 형씨에게 심연이 묻어있다는 이야기니까.


 근데 요새는 별 소식이 없네. 그냥 조용해.

 팔란의 성채에서 심연의 감시자들이 나오는 걸 본 적이 없어.


 뭐 책형의 숲에서 꼬챙이에 꿰뚫려 말라죽기라도 했나. 망자라도 된 건가. 아니면 다 같이 손잡고 불타 죽기라도 한 건가.



= = = = =



 ......죽음을.


 남자는 하단을 노리고 파고들어오는 대검을 피해 앞으로 튀어 올랐다.

 그곳에 있는 것은, 한 때 남자와 함께 뜻을 나누고 함께 검을 휘둘렀던 동지. 그는 시뻘건 눈을 부릅 뜬 채로 대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한 때 서로가 동료였다는 것을 암시하듯, 남자와 전사는 서로 같은 복장을 입고 있었다.

 높게 솟은 철제 투구와 허름한 가죽 갑옷.

 그리고 이제는 찢겨지고 색이 바래 넝마조각처럼 되어버린 붉은 망토.


 하지만 그럼에도 남자와 전사를 필사적으로 상대를 죽이려하고 있었다. 전사의 두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남자는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그 붉은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카가가가각!!


 기세 좋게 히둘러진 전사의 검은 그대로 바닥을 쓸었고, 허공에 튀어오른 남자는 그대로 검을 들어 밑으로 내리 찍었다.


 모든 심연의 존재에게, 죽음을.


 쿠지지지직.


 꽤 묵직한 크기의 대검이었지만, 남자가 휘두른 검은 그다지 크지 않은 소음을 울리며 깔끔하게 바닥에 내리꽂혔다. 바닥에 내리꽂힌 전사의 눈빛이 다시 붉은 빛을 뿜어내는 일은 없었다.


 심연의 존재에게...... 죽음을......


 바닥에 꽂힌 대검을 뽑아내며, 남자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기억의 파편을 다시 한 번 되뇌었다.


 심연의 감시자, 팔란의 불사대.

 한 때 명예롭게 빛을 발하던 그 이름은 지금 썩어 부패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영웅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아르토리우스가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남아있는 것은 그 파편에 불과할 뿐.


 그들의 자랑이었던 팔란의 성채는 이제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는 독의 늪이 되어버렸다.

 한 때 그들의 동맹이었던 결정의 대마법사는 엘드리치의 수하가 되어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한 때 그들은 세상 끝까지 심연을 몰아넣었지만, 지금은 코앞에 들이닥친 다크레이스를 상대하는 것조차도 버거운 상태였다.


 그리고, 불사대의 중심이자 상징이었던 심연의 감시자들은 심연에 물들어 서로를 죽이고 있다.

 그들이 모여 있는 성채의 내성은 심연과의 최후 항전의 전장이었지만,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참혹한 처형장이 되어있었다.


 한 때 대의를 위해 서로 등을 맡기고 검을 휘두르던 그들은, 이제는 대의를 잊은 채 서로에게 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누군가는 대의의 파편만을 기억하며, 누군가는 그 대의의 파편조차도 잊어버린 채.


 조금 잔혹한 이야기일까.

 하지만 이 정도의 일은 너무 흔해빠진 세계가 되었다.


 심연에게...... 죽음을.


 다시 일어서는 동료의 심장을 꿰뚫고, 짓밟으며 남자는 다시 한 번 되뇌었다. 이제는 그 말을 어떻게 발음해야하는 지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머릿속으로 하염없이 되새길 뿐.


 이제는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일어설 때, 남자는 그 눈부터 살펴보게 되었다.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면 무시하고, 붉은 안광이 보인다면 그대로 목을 날린다. 그 뿐인 반복작업이다.


 나는...... 우리는......


 문득, 남자는 슬프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메마른 감정의 흔적일 뿐일지도, 환상일 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분명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나는, 우리들은.

 적어도 이런 끝을 맞이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자신도, 이곳에 형편없이 널부러져 있는 자들도.

 모두 이런 초라한 몰골보다는 더 명예로운 끝을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적어도 그런 끝을 맞이할 자격 정도는 있었을 텐데.


 그러나 눈물이 맺히지는 않는다.

 그만큼까지는 슬프지 않은 걸까, 아니면 눈물을 흘리는 법조차 잊어버린 것일까.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그마저도 안타깝다고 생각하며 전사의 심장을 꿰뚫은 대검을 뽑아냈다.


 끼이이이익......


 그 때, 내성의 문이 열리며 들어온 빛이 남자의 얼굴을 비췄다.

 오랫동안 굳게 닫혀있었던 문이 열리며, 오랜만의 햇살이 쏟아졌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뚜벅. 뚜벅.


 천천히 열린 성문 너머에는 그리운 풍경이 비쳐 보이고 있었고, 그 성문 틈 사이로는 은빛 갑옷을 두른 기사 한 명이 신중한 걸음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아아.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남자는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은, 우리들은.

 비로소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곧게 뻗어내는 대검에는, 상대에 대한 경의를.

 그리고 가슴에 얹는 왼손에는 상대에 대한 감사를 품은 채.


 남자는 팔란의 불사대의 마지막 의례를 건넸다.



= = = = =



본진 옮겨졌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