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 몸은 다시 한번 불타고 있었다.
속에서부터 타오르는 게 느껴진다.
끝이 존재하지 않는 우물이 바닥에서부터
탐욕스럽게 차오른다.
모든 걸 태워버리는 그 불길로.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는데,
결국 난 또다시 경험해버리고 말았다.
잘려나간 왼팔에 감사함은 원망에 잠식되어간다.
수없이도 깎은 부처 조각상은 이제 그저 장작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상실되어가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잃고 그저 불꽃이 자라날 둥지가,
불길이 치솟을 거름으로 전략한다.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져간다.
그리고 그 물거품의 주인은 나다.
턱 끝까지 차오른 불길에 결국 익사해버린.
그렇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타오를 수 없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설령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하더라도
그건 나 자신뿐이다. 내가 품은 불꽃이다.
나만이 짊어져야 할 원망이다.
이 불길이 네 턱 끝에만큼은 차오르면 안 된다.
차오르게 두지 않는다.
이곳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야 한다.
네가 나를 찾을 수 없도록,
앞만을 보며 전진한다.
몸은 이미 좀먹혔다. 정신은 아득하다.
존재할 수 없는 왼팔이 기묘하게 꿈틀댄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걸음 만을 재촉한다.
....무엇 때문에?
나는 무엇 때문에 도망치고 있었지?
나는 어째서 타오르고 있는 거지?
왼팔이 어째서 존재하는 거지?
아니, 어째서 존재하지 않는 거지?
그분은 어째서 내 왼팔을 배었었지?
내 왼팔을 배어버린 자는 누구인가?
너는 어째서 나에게 의수를 주었지?
내가 개량하고 있는 이 의수는 무엇인가?
너는 어째서 나와 같이 왼팔을 잃었었지?
내가 의수를 건네준 너는 누구인가?
나는 어째서 불상을 조각하고 있었지?
내가 조각하고 있는 이 나무 조각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 하나도 알 수가 없다.
모든 게 너무나 원망스럽다.
차라리 모두 불살라져라.
...그리고 이러한 원망이 나를 타고
올라올때마다 나를 다잡아준,
너는 누구인가? 불상을 조각할 때에도
적적하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어준 너.
원망에 사로잡히지 않게 나를 지탱해준 너는.
수라로 전략한다면 나를 베어주겠다 약속한 너에게는.
그러한 짐은 지어주지 않기로 하였다.
책임은 나만이 지기로 다짐했다.
나만히 짋어져야할 원망이다.
하하... 하하하하하....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아직은 정신을 잃을 수 없다.
아직은 아니다, 여기서는 안돼.
너만은 내가 태워버리지 않게,
나만은 네가 배어버리지 않게.
계속 전진한다. 그리고,
너가 나를 찾을 수 있게,
너가 나를 배어버릴 수 있게.
무뚝뚝한 주제에 정은 많고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이상하게도 원망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오직 너만이, 나를 죽일 수 있고 죽여야만 한다.
다소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네, 그렇지만....
"자네, 부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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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시오, 조각가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