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이파리의 속삭임을 통해 빛바랜 자였던 ████가 완전해진 룬으로 엘든 링을 수복하고 엘데의 왕좌에 앉았다는 이야기는 틈새의 땅 전역에 퍼져나갔다.
네펠리 루 역시 그 이야기를 들은 이들 중 하나였고, 림그레이브와 흐느낌의 반도의 '청소'가 어느 정도 안정화 된 찰나라 기쁨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답장을 받은 것이 바로 어제였다.

[ 고마워요, 네펠리. 당신이 하는 일도 꽤 진척이 있다고 들었어요. 조만간 보러 갈게요 ]

도읍의 왕이자 틈새의 땅의 새로운 신의 방문 연락. 스톰빌 성에는 비상이 걸렸다.



"군주 ████, 입쎠... 입성!"

고스토크의 삑사리 섞인 외침에 네펠리 루는 황당함을, 케네스 하이트는 경악을, 그리고 모든 군주군은 두려움의 감정이 피어올랐으나 영마 위에서 들려오는 편안한 웃음소리에 모두 소리 없이 가슴을 쓸어 내렸다.

"오랜만입니다, 하이트 경. 오랜만이에요, 네펠리"

이젠 핏자국이나 비룡의 시체 같은 전투의 흔적은 찾아볼 수조차 없이 깨끗하고 평탄하게 정돈 된 광장을 신기하단 듯이 두리번거리며 다가온 빛 바랜 자는 영마에서 내려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의복에 아직 어색해 하는 네펠리 루는 그녀를 바라보며 웃는 그의 모습에 멋쩍어 하며 악수로 받으려다 옆에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리는 하이트의 모습에 당황했다. 하지만 냉큼 그녀의 손을 잡아 채 손을 휘적대며 억지로 악수를 하는 빛바랜 자의 모습에 네펠리는 긴장이 풀리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들어가서 얘기 하시죠. 성찬을 준비했습니다."

둘의 짧은 악수를 기다리고 하이트는 눈치 있게 둘이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안으로 안내했고 주변 군사들을 물렸다. 빛바랜 자는 고스토크의 어깨를 두드려 인사를 대신하였고, 그는 반가움도 잠시 그 잠깐에 팔이 욱신 대는 걸 느끼고는 궁시렁 대며 시종들과 함께 시종실로 빠져나갔다.
식사를 하러 연회장으로 향한 빛바랜 자는 고드프리의 거대한 초상화를 잠시 바라봤고, 하이트는 눈치를 보더니 슬쩍 물었다.

"...내릴까요?"
"네? 아, 아뇨. 괜찮습니다. 따로 불편한 건 아니에요. 그저... 참 안타까운 사내다 싶어서 그랬습니다."
"직접 본 첫 왕은 어떠셨습니까?"
"그는, 고드프리는... 참으로 강인한 사내였습니다. 아 맞다, 네펠리 당신 혹시..."
"응?"

빛바랜 자는 무언가 말 하려다 입을 멈추었고,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식사부터 하죠"

의아해 하면서도 이미 의복이 너무나 거추장스러웠던 네펠리 루는 끄덕이며 얼른 옷을 갈아입고 와서 식사를 함께 했다. 오랜만에 푸는 회포는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마법 학원에서의 새로운 경험들, 로데일의 풍경, 불의 거인과의 전투, 신비로운 땅 파름 아즈라, 숨겨진 땅 설원의 이야기.
라야와 화산관의 이야기, 유라와 엘레오노라의 마지막, 기인 학자 금가면 경과 콜린의 비극, 전사로 태어난 항아리 알렉산더와 전사로 생을 마친 한 귀족의 이야기를.
엘데의 짐승이나 말리케스, 시간의 틈새에 머물러있는 용왕과 지하에 갇혀있는 세 손가락과 미친 불 등은 아직 알려져도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꺼내지 않았다.
차려진 음식이 줄어가는 대신 셋의 위장은 충만해지고 있었고, 슬슬 시끄럽던 분위기도 점차 내려앉던 그 때였다.

"그래서 그 때 네펠리가 거의 울 뻔 했던 거 아십니까, 하이트경?"
"그런 걸 굳이 왜 이야기 하는 거야!"
"아이고 우리 군주님이, 허허허허. 처음 뵀을 때는 아주 강인함의 화신 그 자체였었는데 말이죠. ...아, 그러고보니 저도 망언을 했었군요."
"음?"
"████ 공을 만났을 때 공을 기사로 서위 하겠다느니, 루 군주를 만나 스톰빌로 들어섰을 때도 그런 소리를 했었지요."
"뭐? 그랬었어?"

어이없다는 네펠리 루의 반응에 빛바랜 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때마침 빈 식기를 치울 겸 디저트를 가져온 고스토크를 발견한 그는 그를 부르며 소리쳤다.

"아 맞아요! 하하하하. 아, 고스토크! 너도 그 때 있었잖아 알현실에 이렇게 넷이 있을 때 말이야!"
"네...? 저 말입니까? 아.. 저... .아 네 그랬...었죠...."

얼떨결에 대답한 그의 대답에 하이트는 살짝 추억을 회상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생각 해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이야긴데 말이죠. 엘데의 왕을 기사로 서위한다니."
"...뭐 안 될 거 있습니까?"
"네?"

그리고 그 회상은 빛바랜 자의 웃음기 서린 물음에 깨져버렸다.

"까짓 거 해보죠? 기사."
"네?"
"뭐?"
"예?"

그렇게 빛바랜 자, 신의 시해자, 엘데의 왕, 틈새의 땅의 신이 림그레이브의 귀족의 기사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