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은 수라 루트 이후 몇 년 뒤
수라 엔딩 당시 쿠로는 어찌저찌 간신히 탈출하고 내부군에 의해 구조(납치)됨
글에 자연스럽게 녹여낼까 했는데 그럼 너무 길어지고 글이 늘어질까봐 걍 앞에 써둠

------------------------------------------------------------------------

"그대는 붉은 색을 아시오?"


"곱게 말린 대추, 잉어의 맑은 비늘, 혹은 가을의 단풍...

당신은 아마 이런 색들을 떠올리며 시답잖아 할 게요

허나 개중에서도 어떤 색들은 실로 포악하여 같은 배에서 나온 제 동포들조차 게걸스레 삼켜버리곤 한다오"




"히라타 영지에서의 마지막 밤, 나는 참상을 보았소"

"흐릿한 기억 속 히라타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야말로 악귀가 목탁을 메고 불경을 왼다 한들 이상할 것 없는 지옥도,

수많은 백성들이 땅에 엎어져 하늘에 기도를 올리며 신께 구원을 부르짖었소

본디 예로부터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은 하늘에 계신 신께 기도를 올려 도움을 청한다지만


...얄궂게도 그날 밤의 재앙을 불러온 것은 다름아닌 인간들이었소"



"영지의 사무라이들이 전쟁으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산적들이 침입했고 곧 무자비한 약탈과 살육이 온 히라타를 덮었소
이 가당찮은 목숨은 어머니와 아버님 두 분의 희생으로--"


"...미안하오. 자질구레한 과거사 따위 관심 없을 터

분명 그대가 모시는 주군께서는 내가 아닌 이 육신 속의 용윤에 관해 알아오라 명하셨을 테지

지금껏 여러모로 편의를 보아준 귀공에겐 미안하지만 가주께 확실히 전해주시게

'이 쿠로는 용윤에 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라고"



눈앞의 계승자는 이제 갓 약관*을 넘겼을 법한 나이에 걸맞게 용모에서는 언뜻 소년의 티가 풍겼으나 어딘가 지친 듯 쇠한 기운을 보고 있노라면 고희*의 노인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허나 쿠로 공, 아시지 않습니까. 쿠로 공의 피에 담긴 힘이라면--"

곧바로 날아온 핏기서린 눈총에 얼어붙은 나는 말을 끝내지도 못한 채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방금까지의 노쇠한 기운은 온데간데 없이 형형한 눈빛으로 이쪽을 쏘아보는 그의 모습은 흡사 오니를 연상케 했


"...피, 이 피! 이 가증스러운 피는!"
'...오니가 고개를 든다'


"족히 일 만이 넘을 목숨을 머금은 이 피는!"
'오니가 으르렁대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더없이 추악하고! 바닥을 모르도록 불결한 피이니라! 애당초 이런 더러운...허억...컥..."

마침내 내 상상 속에서 발광하던 오니가 눈앞의 남자와 겹쳐보일 때 즈음

발작하듯 씹어뱉던 청년은 익숙지 않은 고성에 지쳤는지 잠시 숨을 고르더니 한동안 고산수*에 시선을 둔 채 말이 없었다

"...아시나의 오니는, 토멸되었습니까?"

"천하 제일의 이름난 호걸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풉, 아하하하하"

난데없이 터져나온 웃음에 드디어 계승자가 실성하고야 만 것인가 하여 등골이 서늘하던 찰나,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기를 거둔 계승자가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뗀다

"안될 겁니다"

...오니의 정체라면 나도 대충은 안다

계승자를 섬기던 닌자라고 했던가

허나 닌자따위가 암만 강해봐야 사무라이에 견줄 수는 없는 법

하물며 암기와 속임수를 모두 잃고 한 자루 도에만 의존하는 수라로 전락한 짐승 따위임에랴--

0bbb8704b78160a76d9ee3e70fc006733c4cf18f1a59abc443185ee41d6bfd




갑자기 쓰기 너무 귀찮아져서 개같이 유기

나중에 다시 마무리할 수도 있고 이대로 버려질 수도 있음



--------------------------------------------------
약관* - 스물
고희* - 일흔
고산수* - 일본 전통 정원양식

7def9d77b7816cf639f1c1b014c104036e821922772178e43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