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문학은 인기가 별로라 "옛 전승"시리즈 문학 싸볼건데

시리즈가 될지 안될지는 이번 편 반응보고 결정함

대충 과거 시점 인물들 이야기 본편에서 나온 것들 기반으로 뇌피셜, 각색 ㅈㄴ 섞어서 풀어내는 이야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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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창세기의 뱀에서 착안한 에피소드임
창세기의 뱀 이야기에 대입해서 읽어보면 아마 무슨 얘기인지 더 잘 알 수 있을 거임
갤 국평1믿고 누가 누구에 대입한 건지는 굳이 안 쓴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이르되 온 동산의 나뭇가지에 맺힌 열매들은 다 우리가 취할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주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 창세기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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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소리, 뼈가 부러지는 소리, 살이 타는 소리

온갖 소리들이 귀가 먹먹하도록 휘몰아치는 가운데 창백한 오른손이 소리없이 고개를 들자

약속이라도 한 듯 붉게 달아오른 인두와 이빠진 작두 따위를 놀리던 손들이 일시에 멈추고 다른 소리들이 조심스레 정적을 대신한다

흐느끼는 소리,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 떨어지는 핏소리

마치 새로운 악장에 귀 기울이듯 감겨있던 법무관의 눈이 천천히 뜨인다

"죄인은 고할 마음이 드는가"

"대체 우리 족속이 황금나무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는 것입니까!"

구석에 꿇어앉은 유독 건장한 백금인이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울부짖는다

잠시 조용하던 방 안에 낮고 건조한 음성이 메아리친다

"바닥을 보거라"

"허튼 소리말고 대답하시오!"

"무엇이 보이느냐"

그의 노성에도 아랑곳없이 흘러나온 법무관의 말에 젊은 백금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대답하려던 찰나, 철제 문이 열리더니 곁에 다가온 책문관의 귀띔에 법무관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것이 너희 죄이니라"

이 말을 끝으로 내저은 손짓을 뒤로 법무관은 복도로 나서고 등 뒤로 멀어지는 고문실에서는 다시금 익숙한 피비린내가 울려 퍼진다

검은 바닥의 복도를 지나 테라스로 발걸음을 옮긴 법무관은 잠시 난간에 기대어 저 멀리 보이는 황금나무를 바라보는가 하더니 곧이어 다시 길게 드리운 복도의 어둠 속으로 뒷걸음질 쳐 사라졌다




화산관의 심부, 대지 밑으로 흐르는 용암이 끝없는 열기를 발하는 곳

자신의 명으로 겔미어 화산 심부에 새겨진 전승과 옛 주술에 관해 탐사하기 위해 편성된 기사단의 거처에서 법무관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느 때처럼 방문한다는 말도 수행원도 없이 급작스레 찾아온 사실에 기사단장은 적잖이 놀란 눈치인 듯 했다
"각하, 황공하오나 이 깊은 곳까지 어쩐 일로-"

"연통은 들었네, 보고하도록"

"그것이, 저 큰 뱀에 관한 것입니다만 지나오신 동굴 끝에 막혀있던 석벽을 뚫자 보시는 바와 같이 저리 똬리를 틀고 있는지라
이대로 탐사를 강행하기에는 피해가 상당할 듯 하여 예하 기사단을 동원하여 토벌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기사단장의 보고에 시선을 옮기자 과연 저 멀리 용암 속에 큰 뱀이 웅크리고 앉아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비늘은 마치 주변의 용암이 일으키는 불길을 비웃듯 한없이 검었고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의 노란 눈은 피도 눈물도 없는 라이커드조차 어딘가 홀린 듯 쳐다보게 만들었다

".....기사단과 탐사대 모두 화산관으로 철수하라"

"법무관께서 직접 나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기사단으로도 충분히-"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말을 마치려는 찰나 기사단장은 문득 섬짓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닫고 말았다

법무관은 검은 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 옆모습은 어딘가 귀기서린 듯 섬뜩한 기운에 숨이 막혔다

"도읍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대의 기사단 또한 화산관의 방비에 합류하도록"

여느 때처럼 낮고 건조한 법무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기사단장은 황급히 대답한 후 곧바로 기사단에 철수를 명령하러 자리를 떠났다

이윽고 부산스러워진 기사단과 탐사대를 뒤로 한 채 라이커드와 검은 뱀은 한참 동안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법무관이 다시 동굴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약 3일 뒤였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여러 겹의 보호 주술을 두른 라이커드는 이윽고 큰 뱀과 대면했다

뱀은 그 비늘보다도 더 검은 혀를 날름거리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왔나, 기다리고 있었다"

"말을 할 줄 아는군"

"그 뿐이겠나? 나는 네가 누구인지도 잘 알고 있다"

"동굴 속에 틀어박혀 살던 뱀이 나를 안다?"

"비록 내가 이 동굴에 머문 지 오래되었으나 뱀의 눈은 색이 바래지 않는 법"

"그렇다면 말해보시오"

"라다곤의 아들, 라이커드"

"!"

"신기한가? 일개 뱀이 어찌 맞췄는지 궁금한 모양이군"

라이커드는 잠시 저 뱀의 알 수 없는 권능이 보호주술을 뚫고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 본 것은 아닌가 고민했으나 들어오기 전 손써둔 주술들은 전부 멀쩡히 기능하고 있었다

"그대의 머리칼, 불꽃처럼 일렁이는 붉은 머리는 뭇 생명들의 털 색이 아니다
그 붉은 색은 저 북녘의 거인들에게만 허락된 악신의 빛깔
허나 그대는 거인이 아니지"

"..."

"거인이 아님에도 붉은 머리칼을 지닌 자, 그건 거인들에게 저주를 받은 영웅 라다곤 뿐
그러나 지금의 라다곤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닌 저 큰 나무에 속한 자
굳이 이 외진 화산의 심장부까지 찾아올 여유는 없을 터"

"과연"

"그렇다면 그대는 라다곤의 유명한 두 아들들 중 한 명일 테지
다만 그대는 장군 라단이 아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지?"

"그대가 두르고 있는 그 보호주술, 그것들은 중력이나 별의 마술이 아닌
이 화산의 전승으로부터 유래한 것
그리고 나는 이 땅의 주술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지"

"....네 정체가 무엇이냐"

"이런, 라다곤의 아드님께서는 시간이 급하신 모양이로군
아니면 내 언변이 불쾌했나?
동굴에만 박혀 오랜 시간 지내다 보면 다른 이와의 소통이 그리워지는 법이지
혹 무언가 불편했다면 오랜만의 대화라 들떠서 그런 것이니 사과하도록 함세"

갑작스레 누그러진 뱀의 태도는
오랜 책문의 경험에서 얻은 일종의 육감 때문이었을까, 직전까지 팽팽히 유지하고 있던 라이커드의 긴장을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했다

그런 그를 보며 뱀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말을 믿든 그렇지 않든 나는 자네를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네
속는 셈 치고 대화나 나눠보는 건 어떤가?"

"동굴에 은거하는 뱀과 나눌 대화 따위는 없다"

"그렇군
분명 자네 또한 내게 흥미를 가진 줄 알았는데 아쉽게 됐어
간만의 즐거운 대화, 감사했으니 그럼 이만 가도록 하게"

그대로 천천히 뒷걸음질 쳐 동굴을 빠져나온 라이커드는 한참을 걸은 후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긴장이 빠진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침소에 돌아와 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검은 뱀과의 대화는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런, 라다곤의 아드님이 아니신가?
이 흉측한 뱀을 버리고 가시더니 어쩐 일로 다시 오게 되셨소?"

"네놈의 정체를 알아야겠다"

"아, 이 늙은 뱀의 정체가 궁금하셨나
다만 그냥 알려줄 수는 없으니 조건을 걸도록 하지"

"지금 너를 죽이는 대신 말인가?"

"의외로 투지가 있구려
그게 편할 성 싶으면 한 번 해보시게나, 그 또한 나쁘지는 않아
허나 그대가 나를 죽이는데 성공하더라도 내 정체는 영원히 알 수 없을 터
괜찮겠는가?"

"...조건을 말하라"

"별 거 없다네
그냥 가끔 내려와서 이 늙은이와 이렇게 대화나 해주시구려"

"...그걸로 끝인가?"

"자네는 저 화산관의 주인이 아닌가, 내게는 그 정도면 아주 큰 선물일세"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다만 나는 신중한 성격이라 내 정체를 알고 나면 그대가 나를 죽이거나 와주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네가 무엇인지는 천천히 알려주겠다는 건가"

"역시 총명하군
어느 정도 자네를 믿을 수 있게 되면 내가 누구인가 알려주도록 하지"


그로부터 몇 달,

어느새 법무관은 검은 뱀과의 대화가 일과의 한 부분인 양 매일처럼 동굴을 드나들고 있었다

오랜 책문의 경험으로 대화 몇 번이면 저 뱀의 정체를 꿰뚫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라이커드였으나
뱀의 언변은 실로 교활하여 정체에 관한 이야기가 새어나올 성 싶으면 화제를 돌리기 일쑤였다

다만 뱀이 총명하고 예상 외로 말이 잘 통했던 탓에
시간이 지나며 법무관과 뱀은 벗처럼 지낸 지 오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래서, 자네는 언제까지 그렇게 웅크리고 있을 생각인가?"

"말했잖나, 오늘 아침 왕족의 책문에 늦는 바람에 팔루다멘툼*이 속옷 안에 끼어서 그만-"

"총명한 자네라면 어떤 뜻인지 알고 있을 텐데?"

한 순간 진지해진 분위기에 라이커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 뱀을 상대로 지난 몇 달,
자신답지 않게 너무 풀어져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무슨 말인가?"

"이보게 라이커드, 난 자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어
지난 몇 달 간 고맙게도 자네는 매일 내려와 나와 말을 나눠주지 않았나?"

라이커드의 머리를 스쳐지나가려던 생각이 다시 돌아와 자리를 굳히려 들던 찰나
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는 분명 야망이 있어
그리고 그 야망은 필부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지
설사 내 생각이 틀렸다 하더라도 나는 내 벗에게 슬슬 무언가 베풀어주고자 한다네"

"그렇게 베풀어주고자 한다면 자네가 누구인지나 알려주지 그러나"

"법무관, 모른 체 하지 말게
내가 바깥 사정을 아는 법은 자네를 통해서 만이 아니야
자네가 참전했던 예의 그 공성전이 끝난 뒤
승전한 도읍에서 이 겔미어로 진군을 시작했다는 것, 자네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정보가 빠르군,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자네 분명 전에 그리 말했지
'피가 이어진 데미갓들끼리 죽고 죽이는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말이야"

"..."

"그렇다면 내가 아는 자네는 비단 골육상쟁의 현 상황 뿐만이 아닌
'이 상황을 조장하고서 방치한 더 큰 존재' 를 증오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잘못되었고 이 땅에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면,
기왕이면 나는 내 벗이 그 뜻을 펼치도록 돕고 싶다네"

뱀 앞에서 완전히 마음을 놓고 지낸 지 오래되었으나
라이커드는 여전히 날카로운 사내였고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법무관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거대한 의지에 반기를 들라는 뜻인가?"

"안될 게 있겠나"

"거대한 의지를 죽인다는 건 단순히 로데일을 꺾는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네
당장 저 도읍의 군세만으로도 이곳을 방비하기 벅찬 상황에 어찌--"

"아무래도 때가 된 듯 싶군"

난데없는 말에 잠시 당황한 라이커드는 곧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대가 그리 궁금해 하던 나의 정체는
이 겔미어의 옛 신이자 '신을 잡아먹는 뱀',
그리고 뱀신으로서의 내 권능은 '모독', 삼킨 이의 힘을 취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이른바 포식이지"


라이커드는 뱀의 정체를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기껏해야 그 권속이나 화신 정도일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지금껏 자신이 옛 신, 그 본위와 떠들고 있었다는 사실과
어느 전승으로도 전해지지 않던 그 권능에 대한 지식은 아득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다 하더라도 거대한 의지는 지금껏 자네가 삼켜온 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일세
그것은 이 땅에서 유래한 신격이 아니야"

"그래서 자네에게 이야기하는 걸세
자네 말대로 그것에게는 이 땅의 신인 나의 권능이 유효할지 어떨지 가늠할 수 없네"


"하지만 자네는 다르지
자네는 나에 비하면 그것에 훨씬 가까워
자네가 얘기해주었던 '영웅의 비밀'을 고려하면 자네는 거대한 의지로부터 그 여신에게 내려진 정수의 조각을 물려받은 셈이지"

"요점만 이야기하게, 하고싶은 말이 뭔가?"

뱀은 씨익 웃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그대를 삼키도록 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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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루다멘툼 : 옛날 의복의 명칭, 대충 망토 비스무리한거라 생각하면 됨

사진은 인터넷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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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져서 일단 자름

반응보고 괜찮으면 내일이나 모레 쯤에 후편 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