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차가운 눈밭을 거닐었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하얀 눈밭.
지하 깊은 곳, 차가운 밤의 땅으로부터.
눈부신 황금빛을 받으며 지친 몸을 이끌고.

수없는 핍박과 모멸을 머금고 다다른 땅은

너무나도 차가웠습니다.


우리는 차가운 눈밭을 거닐었습니다.

이제 보니 우리는 거닐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무거운 몸뚱이를 질질 끌고 왔습니다.

새하얀 피를 흘리면 부질없는 꿈을 위해.

우리는 활을 손에 쥐며 이 땅에 도착했고.

이 땅은 너무나도 차가웠습니다.


우리의 길잡이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곧 낙원에 발을 디딜 것이라고.

비록 디딜 발 없는 우리였지만, 길잡이의 말씀은.

그 어떠한 말보다 가슴을 죄였습니다.

그 길을 여셨던 길잡이께서는 한발 앞서 낙원으로 향하였고

우리는 또다시 이 눈밭에 남겨졌습니다.


우리의 낙원행을 약속하시었던 반신께서는

그 모습을 감추신지 오래고,

그분의 또다른 반신은 스스로를 폐하시고

당신의 반신을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눈보라가 아무리 세지고 혹독해지더라도

그분이 돌아오시는 일은 없었습니다.


낙원에의 길은 닫혔습니다.

우리의 길잡이도 낙원에서 돌아 오질 않습니다.

낙원의 안주인은 당신의 짝 이외에는 관심이 없어,

그분과 우리의 약속도,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길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저 무심하십니다.


아아 그래도.

그래도 우리는 당신이 있어 희망을 가집니다.

당신께서 기다리시는 한 그분은 기필코 돌아 오시리라고.

그분이 오실 것을 알기에 당신께서 이토록 계시는 것이라고.

그리하면 마침내 우리는 다다를 거라고.

그토록 기다려왔던 낙원으로의 한 발짝에.


아아 한 떨기 꽃이여.

성스러운 나무에 핀 문드러진 붉은 꽃송이여.

그대가 있어 우리는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대의 향기에 그분의 흔적을 느낍니다.

아아 성수에 축복 있으라.

붉은 에오니아에 축복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