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봤는데 라씨 삼남매도 그렇고, 고드프리-고드윈, 모르고트-모그 처럼 엘든링 내에선 이름의 유사성을 통해 등장인물의 관계를 드러내는 장치가 있다고 봄. 근데 주요 등장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미켈라-말레니아는 예외임. 그러나 미켈라는 모르겠고, 말레니아는 자기랑 이름이 유사한 사람 아니 짐승이 있음.

마리카의 흑검인 말리케스가 그 짐승임. 마침 말레니아 역시 자신을 미켈라의 칼날이라 지칭하고 있지. 검이랑 칼날이랑 같냐 싶겠지만, 예를들어 검은 칼날의 경우, 영문상 블랙 나이프라고 부름. 헌데 저 둘은 블레이드라고 부르지. 심지어 또다른 반신 라니의 블라이드까지. 반신에게 부여된 종복이라는 점을 그 이름이나 별칭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고 봄.

엥 말레니아 반신 맞자나 할 수 있는데, 라씨 삼남매가 호적 옮겨 데미갓이 된 것처럼 말레니아 역시 오빠따라 반신이 된 거지 독자적으로는 좀 아니라고 본다. 따지고 보면 부패의 힘 역시 그 본 주신은 따로 있지 말레니아 본연의 힘은 아님. 그리고 설령 말레니아가 부패의 여신으로 각성한들, 그게 라다곤의 노림수는 아니라고 생각함.

여기서 왜 라다곤이 튀어나오냐면, 암만 생각해도 이 놈이 자식을 가질 이유가 없기 때문임. 라다곤은 평범한 생명도 아니고 마리카에게 심어진 기생체나 다름없는데, 얘가 자식을 다섯이나 가질 이유가 없다고 봄. 물론 나름 영웅이라고 불렸고, 레날라와의 사이에서 자식도 가졌으니 겉으로는 멀쩡했을 거 같긴 함. 물론 레날라의 몰락이나 라단에게 냉담했던 것처럼 겉으로만 그랬겠지.

내가 보기에 레날라와 살던 당시의 라다곤에겐 주목할 일이 두 가지 벌어지는데, 하나는 반신 라니의 탄생임. 레날라의 허락 아래 라니가 블라이드와 같이 자랐다는 이야기는, 달리 말해 라니가 반신으로 인정받은게 꽤나 어려서부터 였다는 말이기도 함. 즉, 반신은 어느정도 자란 이가 시험 따위를 거쳐서 증명하는게 아니라 두손가락이 딱 보면 각이 나오는 그런 존재라는 거지. 여기서 라다곤은 새로운 반신, 즉 마리카의 대체제에 대한 가능성을 봤음. 다들 알다시피 라다곤은 마리카가 말했듯 종국엔 마리카를 완전히 덮어씌울 존재임. 즉, 라다곤을 박아넣은 엘짐 입장에서 마리카 같은 주체적인 인격신은 배제되어야 할 대상인게지. 그리고 라다곤은 만일 자신이 마리카를 장악하는데 실패할 경우 필요한 예비품을 발견한 거고.

거기에 마리카가 고드프리를 추방해버림. 이때 라다곤은 그 자격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격다짐으로 왕의 자리를 차지해버림. 일차적으로는 고드프리 같은 마리카의 우군이 늘어나는 걸 막아버린 거고, 이차적으로는 마리카를 통해 자신만의 반신을 제작하기 위해서임. 알다시피 엘짐은 황금나무의 존속만 바라고, 그 외의 간섭은 배제하려 함. 뭐 위대한 의지와의 단절을 두손가락의 어머니만 느낀게 아닐터이니, 엘짐이 무조건 현상사수를 고집하는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닐거임. 두손가락이래봐야 그 어머니의 자의에 따라 움직이니 엘짐 입장에선 알바 아니기도 할테고.

그렇게 라다곤은 마리카의 반려 자리를 차지하고 쌍둥이를 만듦. 설마 쌍둥이가 평범하게 잉태되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이 제작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천부의 쌍둥이라는 명칭, 하늘이 내린 쌍둥이라는 별칭에서도 드러난다고 보는데, 이는 쌍둥이의 타고난 신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이 둘은 쌍둥이로 태어날 운명이었다는 말도 됨. 만들어지길 애초에 쌍둥이로서 만들어졌다 이거지. 그렇다면 반신임에도 미켈라에게 그림자 짐승이 없는 것도 말이 됨. 두손가락이 주는 짐승 따위는 엘짐 입장에선 스파이나 다름없으니, 차라리 반신이 만들어 질 때 그 종복을 같이 만들어 버린 거임.

어쩌면 쌍둥이의 결함 역시 엘짐의 의도일 수 있음. 영원히 앳된, 다르게 보자면 어른의 책임감도, 끝까지 관철할 의지도 약한 어린 아이에 불과한 반신 미켈라, 그리고 부패로 인해 사지까지 잘라내야 한 말레니아까지. 언뜻보면 이걸 어따써 싶지만, 마리카와 같은 독립적인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엘짐 입장에서 보면 미켈라의 결여는 차라리 장점이지 문제가 아님.

말레니아의 부패의 경우, 어쩌면 말레니아는 미켈라의 칼날이 아니라 미켈라의 부패발사기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음. 말레니아가 기연을 얻어 불패의 제일검이 될지 말지 엘짐이든 라다곤이든 알게 뭐임. 애초에 말레니아는 라단 급의 데미갓마저 골로 보내버리는 부패폭탄 스택이 3개나 달린 1급 암살자임. 게다가 젠장 폭탄날린 곳에선 소형폭탄이 복사가 된다고! 심지어 이런 말레니아는 미켈라의 절대적인 매혹에 상시 노출된 상태로, 배신의 위험마저 없지.

미켈라의 성수는 뭔가요 싶긴한데, 성수의 동기가 된 말레니아의 부패와 이를 고치지 못하는 황금률에 대한 가르침을 준 건 라다곤임. 라다곤이 미켈라가 실패할 걸 몰랐을까? 당연히 알고도 알려준 거임. 그 결과 미켈라는 외부신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별의별 세력이 준동하는 틈새의 땅에서 이러한 세력을 견제하려는 미켈라의 행동은 엘짐의 이해관계에 어긋나지 않음. 예를들어 세손가락의 세례를 받았던 빛바랜자가 미켈라의 침을 통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는게 엘짐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일인 식이지.

미켈라나 엘짐이나 결국 빛바랜자에게 처단당하는 운명이라 의미없는 가정이기는 한데, 설령 미켈라가 엘짐 앞에 선다 한들, 과연 얘가 엘짐을 감당할까 싶음. 빛바랜자야 엘짐 입장에선 경계 1순위인 뭘 할지 모르는 갑자기 튀어나온 조커같은 존재라 사생결단 밖에 없었지만 미켈라는 뻔하거든. 삧은 나무를 태워야했지만 미켈라에겐 열린 문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걸.

마리카에겐 고드프리라도 있었지, 버리고 또 버린 미켈라가 마리카 같은 상황에 처해버리면, 미켈라의 우군이 되어줄 이가 과연 남아있을 까. 안그래도 반신을 버려서 그 자리가 휑할터이니, 엘짐이 그 자리에 여자 라다곤 하나 장만해주면 딱 들어맞겠네. 라단에겐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이렇게 보면 앞날이 부정적인 미켈라나 끝내 부패폭탄 다 쓴 말레니아나 최초 만들어진 운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봐도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