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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자. 잠시 멈추도록. 아래의 글은 학대물이다. 학대에 내성이 없다면 굉장히 불쾌할 수 있어. 학대를 즐기지 않는다면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하지. 부디, 학대에 내성이 있는 사람만 스크롤을 내리도록 . . . 









 장군 라단은 옛 규율의 왕의 창에 찔렸다. 그는 가슴팍에 창이 꽃히고도 세 발자국을 더 걷고 쓰러졌다. 무릎은 더 이상 그 거체를 지지할 수 없었다. 털썩, 하고 꺾인 무릎 대신 그의 거체를 지지한 것은 가슴팍에 꽂힌 창이였다. 무릎을 꿇고 창에 꿰인 체 앞으로 쓰러지다 만 꼴이 군다를 닮았다. 뒤로 쓰러지지 않은 것은 그가 살아서 보여준 마지막 상냥함이리라. 

 빛바랜 자는 쓰러진 라단의 등짝에 매달린 미켈라를 거칠게 끌어내렸다. 옥죈 깍지가 하도 단단해서 꽤나 애를 먹었다고 한다. 

 휘익-바람을 가르고 신이 날은다. 턱 하고 돌바닥에 옥과 같은 그 몸이 내붙여진다. 

 “흐,흡! 윽, 흐으, 하아. . .” 내던져지며 데굴거리다 돌 조각에 피부가 쓸린 모양이다. 백옥 같은 피부가 이리저리 쓸렸던가? 아픔에 신음하는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미켈라는 잿더미에 내던져진 채로 왕을 올려다보았다. 신의 힘을 잃어 다시 영원히 앳된 저주에 묶인 미켈라는 왕 아래에서 끔찍하게 왜소해 보였다. 덫에 걸린 사슴처럼 맑은 눈이 자못 애처롭다. 

 그러나 빛바랜 자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의 갑주는 방랑상인들의 애원, 미리엘의 단말마, 백금인의 피로 흠뻑 젖어 있다. 미켈라의 사슴같은 눈망울-그 애절한 눈빛이야 빛바랜 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익숙하게 그는 젋은 사자의 갑옷을 벗겨낸다. 갑옷부터 무기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쓸 만한 것은 모두 홀짝 벗겨 먹는다. 마음가는 대로 엘든 링을 치켜들지라. . .  죽어서도 검을 꼭 쥐고 굳어있는 손가락을 싹둑 자르며, 빛바랜 자는 홀로 입을 달싹거린다. 

 미켈라는 빛바랜 자의 작업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라단은 예수처럼 두 팔을 벌리고 장대에 박혀 있다. 손가락 없는 손에는 금색 대못이 야속하게 반짝인다. 이것이 옛 규율에 대한 반역의 말로이리라.  

 아, 이쪽을 본다. 빛바랜 자와 미켈라의 눈이 순간 마주쳤다. 갑자기 그가 이쪽으로 빠르게 가까워진다. 미켈라는 삧이 자비의 단검을 천천히-아주 천천히 꺼내는 것을 바보처럼 바라보았다. 뾰족한 날끝이 햇빛을 받아 빛날 때, 미켈라의 머릿속엔 복수, 상냥한 세계에 대한 비전 따위 전혀 없었다. 자신의 운명이 전적으로 그에게 달렸다는 사실 하나만이 그의 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삧이 칼을 조금만 움직여도, 히익 하면서 새된 소리를 내고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부들거렸다. 칼은 점차 미켈라의 얼굴로 향했다.

 “흐,흡” 미켈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그 뾰족한 송곳을 도저히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온몸이 난자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놀랍게도, 단검은 미켈라의 연한 눈으로 들어가 뇌를 휘젓는 대신, 미켈라의 관에 닿았다. 칼끝은 미켈라의 관을 살짝 건드려 벗겨냈다.

 “아 . . . ! ” 미켈라는 저도 모르게 멀어지는 관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다섯 손가락을 쭉 뻗어 간절하게 손짓해 보지만 팔은 이미 닿지 않는다. 

  빛의 관은 희여멀건한 색이다. 삧은 그 관을 참칭자의 면류관으로 삼았다. 장군의 큰 머리에는 잘 들어가지 않았으나 힘으로 욱여넣었다. 긴고아가 오공의 머리를 옥죄는 모양이였다. 거대한 대가리 위에는 흑기름을 양껏 뿌려 주었다. 저게 뭐하는 짓이지? 미켈라는 뜨악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사자를 약탈하는 것으로 모자라서, 이렇듯 경멸하는 대관식으로 모욕하다니. 

 삧은 뒤를 살짝 돌아보고는, 미켈라를 향해 잘 보라는 듯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곤-단숨에 라단의 양 옆구리에-그의 쌍검을 박아넣고는-혈염의 불꽃을 몸 안쪽에서부터 폭발시켰다. 펑! 굉음이 귀청을 찢는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육편은 사방군데로 비산했다. 

 철퍽-이게 뭐지? 미켈라는 생각했다. 얼굴에 무언가가 날아와 부딪힌다. 시야가 새빨갛게 물든다. 볼에 손을 대어 본다. 끈적거리는 것이 굉장히 불쾌하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라단이 있던 자리에는 붉은 광택의 파편이 몇 개쯤 있고, 사방군데에 피와 살점이 낭자하다. 미켈라의 어린 머리통으로는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에?” 

 철퍽-다시, 미켈라의 얼굴에 눅진한 것이 날아든다. 푸웃-입 안에 쇠 냄새가 잔뜩 퍼진다. 당황한 얼굴을 돌려보니 살점이 날아든 쪽에는 빛바랜 자가 투구하는 자세를 취하고 서 있다. 미켈라는 얼빠진 얼굴로 입을 헤 벌리고 지켜본다. 삧은 둥그렇게 말은 고깃조각을 쥐고, 다리를 올린다. 어깨가 살짝 뒤로 빠졌다, 다시 앞으로 팔이 뻗는다. 퍽-고기경단이 다시 미켈라의 얼굴에 적중한다. 이번에는 놀라 활짝 열린 미켈라의 입 속으로 골인한다. 


미켈라는 급작스러운 숨막힘에 켁, 케헥 거리면서 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한다. 쿨럭이고 꺽꺽거리느라 얼굴이 눈물과 침으로 다 젖었다. 입에 들어온 이 역겨운 경단을 내뱉으려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은 미켈라의 능력 밖에 있었다. 질식하는 모양으로 엎어져 괴로워하다 꿀꺽-하고 삼킨다. 일시에 괴로움은 잦아들기 시작한다. 정신이 좀 들자, 미켈라의 얼굴은 쏟아지는 역겨움으로 가득 찬다. 미켈라는 손으로 입을 막는다.


“웁, 내가, 내가 방금 무슨 . . .”


오에에에에에에-미켈라는 허리를 반으로 접고 속을 전부 게워낸다. 삧은 뒤에서 등을 세게 두드려 준다. 한 번 내리칠 때마다 작은 몸이 휘청거린다. 토가 그치고 미켈라는 삧을 향해 돌아선다. 독기를 품은 눈으로 쏘아보며 삧을 향해 걸어가지만, 그는 몇 걸음을 채 떼지도 못하고 무너진다. 


“예-예-옛 왕, 그대 같은 쓰,쓰레기가? 넌 *흐윽* 너 같은 건, 인간도 아니야.”


부들대는 다리는 몇 번을 쓰러지고, 다시 크게 휘청이며 일어나는도다. 미켈라는 겨우 두 발로 선다. 


“마구 죽이고, 죽이고, 죽였어 . . . 그래서 와,와,왕이 되었을지라도-그랬을지라도-넌 왕이 아니야.”


빛바랜 자는 흥미롭다는 듯이 미켈라를 응시하고 있다. 미켈라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간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이야말로 왕인 까닭이라면서’ 네가 빚어낸 수많은 비극에는 눈길도 주지 않아. 그게 무슨 왕이란 말이야.”


빛 바랜 자는 미켈라를 향해 허리를 굽힌다. 미켈라는 약간 긴장하면서도 그를 똑바로 바라본다. 말을 이어 나갈수록 눈동자는 호기를 띈다.


이제 빛바랜 자는 미켈라를 코앞에서 보고 있다. 그는 미켈라를 향해 더욱 다가온다.


“넌,넌 개야. 왕이 아니라, 미친 개란 말이야.”


빛바랜 자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미켈라의 몸은 다시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호기있었던 목소리는 점점 옅여지고 옅어져서 ‘말이야’ 부분은 거의 숨을 내뱉는 소리에 가까웠다. 


“뭐, 뭘 봐?”


미켈라의 눈과 삧의 투구는 손가락 한 뼘이 안 되는 거리만을 두고 떨어져 있다. 미켈라의 눈동자에는 점점 파문이 인다. 빛바랜 자는 건틀렛을 낀 손을 천천히 미켈라의 눈 쪽으로 가지고 간다.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덜덜덜덜덜 떨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눈을 감나 싶었던 그 순간, 예상외의 대참사가 일어난다. 미켈라가 빛바랜 자의 손을 세게 쳐낸 것이다. 


“하지 마!”


빛바랜 자는 어이없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서 있다. 얼결에 손을 쳐낸 미켈라는 오히려 눈치를 보면서 잔뜩 쪼그라든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 .”


으겍-변명의 기회 따윈 없이 단단한 주먹이 미켈라의 명치에 꽃힌다. 


“카학! 헉! 케헥! 헥!” 바닥에 엎드려 침을 질질 흘리는 미켈라를 보며, 삧은 그의 머리를 각반으로 짓밟는다. 미켈라는 살점과 핏물로 낭자한 바닥과 키스한다.


그날 미켈라는 딱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 피변질 낙엽 격투로 약공, 강공, 발경을 넣어서 풀충전으로 한번, 조금 충전한 것으로 두 번. 단류 발차기술로 낙엽 선풍각에 비 오는 날 개처럼 다단 히트로 맞아 온몸에 상처와 멍으로 가득했다.


“너, 내 말 잘 들어. 그렇게 말싸가지가 건방지면 이런 일을 당하는거야. 알아 들어?”


만신창이가 된 미켈라는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훌쩍이면서 답한다.


“네, *흐읍* 네. 알게흡니다. 다시는 건방지게 굴지 않겠습니다. 제발 요,용서해주세요.”


삧은 눈물흘리며 애걸하는 미켈라의 얼굴을 만족스럽게 쳐다본다. 금빛 머리채를 쥐고 당겨 미켈라의 골통을 치들게 하고, 그 머리통을 마구 쓰다듬는다. 


“그래, 그래, 이제야 버릇이 들었구나.”


구타당한 자국이 선명한 얼굴로, 미켈라는 비굴하게 헤헤거리면서 아첨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삧은 즐겁게 웃는다. 한 손으로는 미켈라를 쓰다듬고, 다른 손으로는 라단의 투구에서 큰 뿔을 하나 뽑는다. 미켈라의 얼굴빛이 갑자기 확 어두워진다. 


“빛바랜 자 님 . . .”


사색이 된 얼굴이 빛바랜 자를 애원하듯 올려다본다. 얼굴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쉬-잘못 맞으면 더 아파. 지금까지 잘 해 놓고 마지막에 어디 부러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억울해. 우리 미켈라, 참을 수 있지?”


눈물을 삼키며, 미켈라는 두 손으로 입을 꼭 틀어막고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인다. 


“옳지, 착하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빛바랜 자의 손이 작렬했다. 콱! 강한 통증이 허벅지에 퍼져나간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휘둘러진 라단의 뿔이 허벅지를 관통하고 나간다.


“햐야야야야야약! 아흐에에에에에엑!”


미켈라의 비명 소리가 텅 빈 에니르 엘림을 채운다. 손으로 허벅지를 부여잡고 엉엉 우는 미켈라의 얼굴에는 신으로서의 품위라곤 하나도 없다. 벌래처럼 바닥을 뒹굴며 울부짖는 미켈라에게로 삧이 다가간다. 그는 성배병을 열어 화학 약품 냄새가 잔뜩 나는 빨간 약을 상처에 들이붓는다. 미켈라의 옥과 같은 그 몸은 타들어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혼절했다. 


“아이고, 이런.”


 삧은 실신한 미켈라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올렸다. 실수로 죽이지 않게끔 조심조심해 가며 엘리베이터를 타고-정화의 방 전실에 도착했다. 그는 일단 미켈라를 최대한 멀쩡한 쪽에 뉘여 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투의 상흔이 방 안에 가득했고, 레다와 동료들은 무기를 놓치고 깊은 잠에 들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있었다. 그는 이내 레다를 찾아냈고,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회귀만이 비밀을 파해친다.”


그가 팔을 움직이자 탁한 것을 모두 맑게 하는 황금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레다의 몸을 덮고 있던 보랏빛 기도가 일순 걷혔다. 삧은 쪼그려앉아 레다의 투구를 벗기고 뺨을 찰싹거렸다. 


톡-


“야.”


“. . .”


톡톡-


“야.”


“. . .”


철썩-


“야, 일어나.”


레다는 졸린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렸다. 흐린 세상이 조금씩 선명해지자 보인 것은 황금 나무의 왕이 될 사내, 빛바랜 자, 자신이 한때 동지라고 착각했던 사람이였다. 그녀는 격분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잠기운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아 상반신이 작게 들썩이는 데 그쳤다.


“빛. . . 바랜 자.”


삧은 에스트 몇 병과 단약 몇 개를 가방에서 꺼내 레다의 손에 쥐여줬다. “저기 미켈라 보이지? 다리를 다쳤어.” 레다의 눈에도 미켈라가 들어왔다. 방금 영면에서 깬 사람의 눈에도 확연히 위독해 보이는 상태였다. 온몸이 만신창이인데다 허벅지는 피로 젖어 있었다. 


“큭, 이 개자식 같으니. 미켈라님께 무슨 짓을 . . ?”


레다가 잠시 미켈라의 상태를 곁눈질하는 동안, 삧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가 가고 남은 자리에 있는 것은 몇 개의 의약품과 구급상자 한 개 뿐이였다. 레다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먼저 미켈라를 치료하기 위해 움직였다.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아 거의 기듯이 약통을 집고, 미켈라에게로 향해 그의 옷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미켈라 님, 미켈라 님, 제 말 들리세요?”


급히 그녀는 미켈라의 손을 잡고 맥박을 체크했다. 아직 살아 있어. 레다의 손이 바빠졌다. 우선 더한 혈액 손실을 막기 위해 망토를 찢어 허벅지를 지혈했다. 레다는 나머지 동료들을 깨워 미켈라의 빠져나가는 목숨을 붙잡으려 부산하게 움직인다. . .


 정신없이 치료하는 레다와 동지들의 사이로 미켈라가 보인다. 상냥하게 웃음짓던 미켈라의 얼굴이 아니다. 울면서 빌고, 살려달라고 온갖 아첨을 하느라 그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눈동자에는 오늘 목격한 잔인한 친족 살해의 현장이 생생하다. 삧의 무자비한 폭력과 잔인성은 미켈라의 눈동자에서 평생 동안 떠나지 않을 것이다.저 입은 프레이야에게 입맞춤하던 사려깊은 입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 ‘빛바랜 자님 최고, 옛 규율의 왕님 만세’ 하구서 변절한 입이다. 아름다운 금발은 마구 늘려지고 잡아당겨지면서 빠지고 엉켜 있다. 저 옥과 같은 몸에는 긁히고 멍든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부어올랐다. 겉으로 성해보이는 몸 안도 내출혈로 엉망이다. 끔찍한 기억은 어느 한 감각도 내버려 두지 않고, 트라우마로 남아 미켈라를 평생 쫒을 것이다. 아, 앳된 미켈라여. 온몸으로 기억하라. 오늘의 두렵고 끔찍함을 결코 잊지 말라.

 하이얗던 허벅지에는 끔찍한 상처가 파여있다. 가장 잔악한 자만이 저지를 수 있었던 신성 모독의 흔적이다. 설령 상처가 제때 치료되고, 미켈라가 살아남는다고 해도, 이 흉터는 결코 지울 수 없을 것이다. 흉터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래, 흉터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