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본은 클래식한 늑대인간 사냥파트인 초중반부 이후부터는 코스믹호러로 선회하는 게임인데, 돌아보면 이 코스믹 호러의 장르적 특징을 미야자키가 살리고 싶어했던거 같음.


이쪽 분야를 대중화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러브크래프트 선생님의 소설을 읽어보면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해 느끼는 공포'를 자극하기 위해 늘 주인공은 소위 '위대한 자'들이 남긴 흔적같은 것만 접해도 공포로 미쳐버리고, 아무리 해피엔딩으로 끝나도 공포의 주체에 대해 잊어버리고 도망치는 것이 최선인 식으로 나옴. 주인공이 감히 위대한 존재들에게 대들어서 문제를 해결해 버리면, 코스믹 호러의 장르적 재미가 죽어버리는 거니깐.


근데 블러드본은 액션 RPG다 보니, 결국엔 플레이어가 공포의 주체를 썰어죽여야 완성되는 미디어잖아. 그런 엔딩까지 이 코스믹 호러 분위기를 어떻게 유지할 지 고민이 많았을 거 같음. 단순히 주인공이 짱짱쌔져서 공포의 주체인 위대한 자를 썰어 죽였다 식으로 마무리되면 그건 더이상 코스믹 호러가 주는 장르적 재미에선 벗어난거란 말이지.


그런 면에서 주인공이 위대한 자들의 의도대로 놀아준 후 현실세계로 돌아가는 '야남의 새벽' 엔딩이나, 그 유혹을 참지 못하고 게르만을 죽여버린 다음 창백한 피의 새로운 종속이 되는 '유지를 잇는 자'엔딩은 정말 클래식한 러브크래프트식 마무리임. 주인공이 도망치느냐, 아니면 도망칠 기회를 놓치고 호기심인지 광기인지에 빠져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느냐.


그에 반해 '유년기의 시작' 엔딩은 코스믹 호러 장르의 클리셰로서는 말도 안되는 엔딩인거지. 주인공이 이 거대한 공포의 주체, '위대한 자'를 죽여버린다고?? 코스믹 호러 장르로서는 정말 반역에 가까운 스토리이지만 액션 RPG로서는 또 피할 수 없는 스토리기도 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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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액션 RPG의 미디어적 재미와, 코스믹 호러로서의 장르적 재미를 같이 가져가기 위해서 주인공이 오징어가 되는건 필연적인 선택이었던 거 같아. 단순히 주인공이 인간의 몸으로서 위대한 자를 물리쳤다! 하는 인간찬가적인 스토리여도 이상할 건 없었겠지만, 러브크래프트식 코스믹호러 빠인 미야자키 입장에선 그건 좀 곤란한 일이었겠지.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자를 찢어죽인 주인공은 더이상 플레이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어야 했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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