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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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렌을 죽였다.

그와 친분이 없다고는 해도 함께 칼을 들고 데미갓에게 달려들던 기억이 구석 한 켠에서 기어나온다.


왜일까.


그렇게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귀여운 제자야. 잘해줬다. 드디어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적이 사라졌구나."


목소리가 공동에 울려퍼져 귓가에 파고든다.

이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필시 나의 스승인 그녀임에 틀림없다.

목소리가 들렸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정말 잘해줬어."


차분한 흑발에 휘어진 눈꼬리, 연한 분홍색의 입술과 환해보이는 표정.

그녀는, 나의 스승은 휘석머리가 짓던 표정과 같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상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 착용하던 휘석머리는 어떻게 된 걸까. 물어보려던 찰나. 그녀의 입이 열렸다.


"이로서 우리는 한 발 더 진보하겠네. 좋은 시작이야."


그녀는 싱긋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다가왔다.

휘석머리가 아닌 맨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기에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행동, 웃는 얼굴이 아름답기 때문일까.

그녀의 의상은 분명 평범한 마법사의 옷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하나의 드레스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기분에 왼 손으로 오른 팔을 감싸며 고개를 조금 숙인다.


"...상처가 도지기라도 한거야? 정말, 칠칠치 못하네. 나의 바보 제자야."


어느새 코 앞까지 다가온 그녀는 피가 묻은 내 왼 손에 그녀의 두 손을 포개었다.

그 행동에 당황해 고개를 살짝 들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근처에 쉴 곳이 있어. 그곳에서 같이 쉬면 좀 나을거야. 이렇게 된 거 저번에 못했던 마술 수업도 이어서 하는 게 좋겠네."


이어서 말을 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눈을 피하려고 했으나 그녀의 푸른 눈이 내 신체를 봉쇄시키는 듯 했다.

이윽고 가까운 그녀로부터 느껴지는 숨결이 뜨겁게 얼굴을 맴돈다.

그 열기 때문일까, 부끄러움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상처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어딘가 멍한 눈으로 나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미소를 짓기 시작한다.


"...그래. 너도 제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남자였지. 그런데 이 반응은...."


크게 휘어진 눈썹, 조금 가늘어진 눈동자, 과장되게 올려진 입꼬리. 상황의 파악을 끝낸 그녀는 이미 나를 놀릴 생각으로 만연해있다.

그러나 그녀의 부드럽게 귓가에 울려퍼지는 목소리와 나를 바라보며 상냥하게 포개어진 두 손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결국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을 때, 그녀의 말이 다시 한 번 귀에 파고들었다.


"정말 그런거라면... 다른 것이 채 가기 전에 내가 먼저 해야겠구나."


잘못 들은걸까.


정지된 상태의 머리를 다시 굴리고 순간적으로 잃은 시각을 되찾았을 때.

그녀의 왼손은 내 어깨에 올려져 있고 오른손은 허리의 뒤쪽으로 감싸져 있었다.

벗어나려 몸을 뒤로 움직였지만 지력에 스텟을 몰빵해 힘을 경시한 나는 그녀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아무리 달의 힘을 이끌 수 있는 마법사라 하더라도 자신의 몸은 호신할 수 있는 힘은 있어야 하는 거란다. 아직 배움이 더 필요해보이는구나."


그녀는 머리를 내 가슴에 대고는 흡족한 얼굴로 웃더니 그대로 넘어트렸다.

머리와 손에 강한 충격이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겪어온 전투의 본능을 따라간다.

순간의 틈을 타 왼손으로 허리에 메인 지팡이를 들려고 했지만 그녀의 속도가 마치 처음부터 목표로 삼은 듯 더욱 빨랐다.


"첫째.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지팡이를 우선시해서 상황을 판단할 것."


지팡이를 빼앗겼다. 하지만 아직 허리의 주머니 속에는 마력의 자비의 단검이 있다.

주머니 속에 자비의 단검을 꺼내려 손을 허리 주머니 속에 넣었다.


"둘째. 마법사를 상대할때에는 급박한 상황이더라도 항상 상대의 손이 어디로 향하는 지 볼 것."


어느새 그녀의 왼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있었다. 진한 보라색으로 물들인 주문의 형상이 맺힌다.

나는 손으로 단검을 쥔 채로 허리 주머니 속을 그대로 찢고 나와 그녀의 지팡이로 단검으로 던졌다.

그녀도 마법사여서 일까, 아니면 방심해서일까. 지팡이는 그대로 맥 없이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머리속에 지우고는 그대로 반격을 시도하려 손을 들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싱긋 웃고 있었다.


"셋째. 마법사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자. 마법사를 상대할때는 항상 상대의 전략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할 것."


팔에 힘이 사라진다. 아니, 온몸에 힘이 사라져간다.

이러한 주문이 있던가. 간신히 눈을 굴려 내 옆구리에 머무는 그녀의 오른손을 바라본다.

그녀의 손에는 연보라색으로 물들인 무언가가 있었다.


"넷째. 특히 수면 같은 상태이상에 관련하여 주의할 것. 지금과 같이 매우 당하기 쉬우니 말이야."


그녀는 내 팔을 몇 번 손으로 어루만지더니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손을 뗏다.

그리고는 내 상의를 벗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많은 상처로 가득한 가슴임에도 그녀는 아까와 같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팔로 내 목을 껴안고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이런 상황에는 가만히 있는거란다. 바보 제자야."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상의를 벗었다.


그러자 그녀의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