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유독 손님이 많았다.


 클럽 스톰빌은 개장 이래로 늘 북적이는 곳이었지만, 이 날 만큼은 유독 사람이 많아 입구에서 허가조차 받지 못한 채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많아보였다. 심지어 평소에는 룬을 쥐어 줘 가면서 초청하던 빛바랜 자들 마저도 저들끼리 모여 있을 리가 없는 들어갈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고스토크조차 뒷문을 막고서 오늘은 여기로 들어 가실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할 정도였으니, 이날 클럽이 얼마나 붐볐는지는 안에 들어가 보지 않아도 얼마나 손님이 많이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씨발, 오늘은 왜 안되는건데?"

 

 "사장님이 오늘은 이쪽으로 사람 빼돌리면 저 죽인답니다. 저도 살아는 있어야 다음에 들여보내주던가 하죠."


 "평소엔 룬 줘가면서 오라더니 사람 많으니까 이런 취급 하는거야? 염병, 내가 뭔 고드릭네 군병도 아니고 여기 한 두번 온 것도 아닌데 너무한 거 아냐?"


 빛바랜 자는 그저 서운할 뿐이었다. 단순히 룬을 줘서 온 게 아니라, 그저 스톰빌이 좋았기에 자주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갑자기 다가온 입구컷이라는 단어는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틈새의 땅 어디에서도 당한 적 없는 입구컷이다. 심지어 가장 좋아하는 스톰빌이다. 늘 더욱 신경써서 치장하고 왔기에, 누구보다 화려한 장비 세트를 자랑하던 빛바랜 자다. 이 자 외에도, 더 많은 빛바랜 자들이 저마다 화려한 밤을 상상하고 찾아왔지만 입장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극소수였다. 


 "손님이 워낙 많답니다.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아요. 룬 쥐어주시는 거 그냥 받고 보내드리고 싶다고요."


 "아니 뭐 우리 다 들여보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진짜 조금만 보내 달라는데..."


 "죄송합니다. 진짜 한 명이라도 이리로 들어오는 거 보이면 제 몸에 주흔 바로 새겨버린다는데..."


 주흔이라는 말은 흥분하던 빛바랜 자들 마저도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새겨져버리면, 틈새의 땅 클럽 전체에 입장은 물론이며 말단 자리에 취직조차도 할 수 없다. 황금나무는 보기는 좋았으나, 실상 약자들에게는 황금이 아닌 저주일 뿐이었다. 주흔이 처음 사용된 초기에는 그저 몸에 도장 한 군데 찍힐 뿐이라고 다들 비웃어가면서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새겨진 자들의 증언이 뒤따르자 그를 비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회적 죽음. 


 장난처럼 찍힌 주흔을 그날 지워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새기는 것은 그저 의식일 뿐이다. 그 사이에 이미 주흔-리스트에 오르고, 여기에 오른 이후엔 어딜 가도 사람취급 안해주더라는 이야기가 티비아의 배 파도치듯 전국에 소문이 쫙 퍼졌다. 심지어 직계 왕족이라던 고드윈에게도 주흔이 새겨졌다는 것이 알려지자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만은 그것이 새겨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하루를 살아갈 뿐.


 "아니 뭐... 오늘 그정도야? 사람이 그렇게 많아?"


 아까와는 달리 목소리가 차분해 진 빚바랜 자의 질문에, 고스토크는 목소리를 더욱 낮춘다. 


 "그렇기도 한데... 들리는 얘기가 좀 있습니다. 알고 오신 거 아니었습니까?"


 "뭐? 아니 난 그냥 여기 죽돌이니까... 습관처럼 오는거지. 뭐 특별한 일이라도 있대?"


 고스토크는 빚바랜자들 틈 사이에 조용히 끼더니, 다른 데에는 더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며 말을 이었다.


 "그... 오늘 고드릭 님이 여기 오신답니다."


 "...!"


 모두가 충격받을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몇몇 이는 믿을 수 없는지 입에서 욕을 내뱉기 시작했고, 몇몇은 고스토크의 멱살이라도 잡을 듯 흥분해 다른 이가 말려야 했다. 조용하던 분위기가 소란스러워 지려고 하자, 고스토크가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으나, 산전수전 다 겪은 문지기인 고스토크가 이 정도로 당황할 리 없었다. 애초에 헛소문이라면, 구태여 이들에게 전할 이유가 없었다. 스톰빌에서 뿌린 룬은, 어느정도는 고스토크가 뒷문으로 들여보내 주는 사람들이 적당히 다시 건네주기 때문이다. 고스토크 입장에서는 굳이 거짓을 고했다가 좋은 룬벌이 수단을 잃을 뿐, 득이 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빚바랜 자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들린 말은 그저 거짓말로밖에 들리지 않으니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 할 뿐이었다. 


 점점 더 소란스러워 질 듯 하던 분위기는, 누군가 말을 꺼내자 다시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게 가능해?"


 모두의 눈이, 고스토크의 바싹 마른 입을 주목했다. 그 입은 너무나 말라버린 나머지, 서로 떨어지는 데에도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저도... 잘은 모릅니다. 그런데 소문에는, 주흔이랑 주흔 명부가 전부 다 도둑맞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건 소문이라기보단... 다들 아시잖아요. 진짜인거."


 최근 림그레이브에 그런 소문이 있었다. 틈새의 땅 어딘가에 있는 주흔 관련 물품들이 전부 사라져서, 그걸 관리하던 말리케스가 주변의 모두를 의심하다가 결국 근무자들을 전부 해고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회사 건물을 폭파시키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소문. 이는 소문이라기엔 당시의 폭발음 같은 것이 로데일까지 들려온데다 말리케스에 대한 실종신고까지 들어간 것이 사실이어서, 모두가 소문이라고 말할 뿐 속으로는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다. 


 명부가 사라진 이상, 모두가 아는 고드윈이라 하더라도 주흔을 새겼다는 증거가 없으니 그 어디에서도 입장을 거부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고드윈이 돌아온다면, 그날의 클럽은 온갖 것을 호사스럽게 누릴 수 있는 그야말로 황금의 클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별명이 괜히 황금의 고드윈인가? 한 번 클럽에 떴다 하면 하룻밤 사이에 수 천만 룬을 쓰고 가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한번 나타났다 하면, 시도때도 없이 여기저기에 술을 뿌리듯 사고다녔으니, 몇 천만이 아니라 몇 억이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믿을 법 했다. 


 그런 고드윈이 온다는 것은, 분명 재미를 볼 수 있는 날이라는 것. 그런 기대 하에 스톰빌로 사람들은 모여든 것이다.


 "아 씨발, 이거 나만 몰랐어? 니들은?"

 

 "나도 처음 듣지. 이걸 들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아니 고스토크도 아는 걸 우리는 왜 모르는데? 말이 안되잖아."


 순간 고스토크의 눈썹이 움찔거렸으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 좆같은 새끼들, 좆도 아닌 것들이 씨발, 이라고 생각하는 그였으나, 그조차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난... 나는 들은 적은 있긴 해."


 빛 바랜 자 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자, 모두가 그를 힐난하기 시작했다.


 "아니 병신아, 이런 얘길 들었으면 말은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미리 들었으면 오늘 좀 일찍 나와서 줄 섰지... 이거 안에 있는 새끼들만 룬 이득 존나 볼텐데, 좆같네 진짜."

 "나는 뭐 이게 진짜인 줄 알았냐? 개소리겠지 싶어서 듣고 흘린거지. 니네도 지금 들었으니까 그런거지, 그때 알려줬으면 나랑 똑같이 생각했을 걸? 이 병신, 병신같은 소리 하네. 병신이 병신같은 소리를 하니 제법 어울리네 같은 말이나 하지, 뭐 믿는 새끼 하나 있었겠냐?"


 그 말도 맞는 말이다. 일부는 처맞는 말 한다는 생각을 하긴 했으나, 대체로 그 말을 믿을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주흔이 새겨진 이후 집 지하에 틀어박혀서 한 발 자국도 안 나오더라는 그 고드윈이 나온다는 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사람이 틈새 소문은 어떻게 알겠는가? 이 모든 것을 연결해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으려면, 최소한 본인이 고드윈의 부모님이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야 그나마 집에 있는 아들이 뭘 하는지는 파악할 수 있었을테니까.


 "그것도 그렇긴 한데... 아, 진짜 좋은 거 놓쳤네."

 

 "아직 진짜인 지는 모르는 거 아냐?"


 "뭐 그건 그런데....야, 지금 저기 저거 아니냐? 저 앞에 지금 온 거."
 

 모두의 눈동자가 한 데 모인다. 고스토크는 사람들의 꼴이 제법 기드온이 걸친 꼴사나운 갑옷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어... 어? 근데 저거, 고드윈이라기엔 좀.... 삭지 않았냐? 주름도 많고... 원래 저랬어?"


 "뭐 방 안에 처박혀 있어서 관리가 잘 안된 거 아니야?"


 "그런가...?"


 "뭐 보면 알겠지. 고드윈 아니면 저거도 못 들어 갈 테니까."


 살짝 붉은 로브를 걸친 그는 서서히 입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경비병들은 예와 같이, 그의 앞길을 막고는 "오늘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들이 입을 떼기도 전에, 그는 로브 사이에서 크게 반짝이는, 고리와도 같은 무언가를 살짝 보여준다. 필시 이것은 거대한 룬. 이 사람이 최소한 어떤 신분인지 알 수 있는 것. 경비병들도 오늘 소문이 진짜였나, 하는 생각에 몸이 굳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지나가도 되겠나?"


 중후한, 그러면서도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 한 예리함이 있는 목소리. 이는 순간 마비된 경비병들의 몸을 수도 없이 찔러댄다. 아차 싶었던 경비병들 중 하나가, 그 소문이 진실인지를 확인 할 겸, 정식 입장 절차 중 하나를 들이밀어본다.


 "아, 죄송합니다. 요즘 붉은 부패병이 많이 돌아서, 입퇴장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만은... 이 쪽에 성함, 생년 월일 작성해주실 수 있습니까?"


 "뭐, 그러지. 법은 지켜야지."


 양피지를 건네받은 남자는, 조용히 옆에 있던 펜을 집어 차분히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웅성거렸던 스톰빌 입구 앞이 점차 조용해 져서, 어느새 펜과 종이가 만나 내는 마찰음 만이 림그레이브에 울려 퍼진다. 그는 아랑곳 않고 요구한 내용 그대로를 작성해 다시 경비병에게 건넨다.


 "...!"


 경비병은,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하자 조용히 길을 비켜선다. 남자는 그 옆을 조용히 지나쳐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오늘 한참동안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던 곳에 들어간 그 남자가 작성한 것은, 내용을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히 뭐라고 써있는 지 알 수 있었다. 황금의 고드윈, 그가 스톰빌로 돌아왔다.


 "아, 이거 진짜였네... 좆같네, 이걸 놓치는구만."


 "좀 기다려보자. 사람들 누구 하나 나가면 들여보내 줄 수도 있잖아."


 "너같으면 나오겠냐?"


 "아니 그래도... 그냥 돌아가긴 아쉽잖아."


 "그건 그렇지..."


 모두가 아쉬워 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고드윈임을 확신하고는, 누군가 지쳐 나가 떨어지면 내가 들어가리라는 기대를 갖고 그대로 기다려보기로 한다.


 그리고 안에서는, 예의 그 남자와 경비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스톰빌 안 유일하게 사람이 없으면서도 가장 휘황찬란한 방으로 들어간다. 자리에 앉자, 안내하던 경비가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그리고 그대로 나가며 문을 닫으려다, 아차 싶어 떠올린 것을 물어본다.


 "아, 혹시 피아 씨... 이쪽으로 보내드릴까요?"


 피아는 소문으로는, 고드윈의 연인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다. 본래 VIP 전용이라는 원탁의 장부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유능하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더니 종종 다른 클럽의 장부 관리도 도와준다는 모양. 그리고 마침 이날은 그녀가 스톰빌의 장부를 살피러 온 덕에, 그가 원한다면, 소문대로라면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클럽에 온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여자친구에게 알린다는 것은 그저 미친 소리이겠으나, 이 경비병 또한 그저 소문이 진실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 뿐이다. 피아는 정말 고드릭의 연인인가? 라는 사적인 의문을, 배려하는 척 하며 알아내려는 아주 얄팍한 수. 속마음을 들킨다면 당장 머리에 낙뢰가 꽂힐 일이겠으나, 자신이 다치더라도 호기심을 해결하는 것이 더 우선이었던 것. 


 남자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구태여 여기서 소란 일으키고 싶진 않았기에 조용히 넘어가기로 한다.


 "아, 아니. 오늘은 그냥 개인적으로 기념하고 싶을 뿐이라."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남자는 탁자에 있던 술병을 따 가볍게 목을 축이고는 잠시 음미한 뒤, 경비에게 마저 말을 건넨다.


 "일 하는 사람 방해하고 싶지 않으니, 그냥 둬. 나중에 내가 따로 얘기 할 테니까. 아, 그리고 내가 말하기 전엔 여기 누구 들여 보내지 마."


 "예, 알겠습니다. 그럼."


 좋은시간 되십시오, 하며 경비는 문을 닫고 나간다. 이후 경비가 확실히 자리를 비웠을 만한 시간이 지난 뒤, 남자는 로브를 벗어 던졌다. 


 "거 존나게 덥구만... 이 날씨에 로브는 뭔 미친 짓이래."

 

 아까와는 다른, 거슬릴 정도로 간사하게 들리는 목소리. 게다가 벗은 로브 안쪽에는 간신히 구겨넣은, 수도없이 박혀있는 누군가의 팔. 이내 제각기 움직여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모습은, 다른 누군가가 봤다면 구역질을 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고드윈, 아니 고드릭은 로브 속에서 잠겨있던 썩을 듯한 냄새를 방에 풀어놓고는 몸을 식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머릿 속에는 오늘 어떤 여자랑 접목을 할까, 하는 생각이라도 하는 것인지 접목해 둔 여러 신체 부위에는 피가 도는지 핏줄이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다. 


 "붙여둔 건 적당히 좀 뗄까... 아무래도 이대로는 내가 사장인 거 누가 봐도 알 테니까."


 이내 그는 꼴사납게 온 몸 여기저기에 붙여둔 온갖 신체부위들을 천천히 잘라내고는, 마치 로브를 벗어두기만 했던 것 처럼 그 덩어리들을 한데 뭉쳐 로브로 덮었다. 그리고 오늘을 어떻게 행복하게 보낼지, 오랜만의 밤을 무엇으로 태울지 행복한 상상을 하며, 몸의 상처에 검은 연고를 발랐다.


 "이정도면 대충 뭐... 주흔인 줄 알겠지..."


 아는 사람이라면 코웃음을 칠 헛짓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는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자신의 것인 룬을 마치 고드윈의 것인 양 꺼내는 일도, 몸의 상처를 까맣게 가려 주흔인 것 마냥 가리는 것도 모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에 대해 잘 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같은 공간 하에 피아가 와 있다는 것. 방에서 있었던 경비와 고드릭의 대화는 하필 화장실에 가려던 피아에게 전부 다 들렸다는 것. 사태를 파악한 피아는, 고드윈에게 빠르게 소식을 알렸다. 


 '검은 음모의 밤, 고드윈의 이름을 더럽힌 범인은 고드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스톰빌에 고드윈 님의 이름을 사칭하여 진입해 있는 상태입니다. 말씀 주시면, 필요하신 조치는 모두 해두겠습니다.'


 집에서 이 소식을 들은 고드윈은 분노에 치가 떨린 나머지, 본인이 아끼는 호담 라이오넬 피규어를 집어 던질 뻔 했으나, 이내 진정하고는 조용히 자리에 내려두었다. 한참을 방에서 걸어다니며 땅이 꺼지듯 한숨을 쉬다, 위를 올려보다 어느 순간은 소리치듯 욕을 하더니, 천천히 숨을 몰아쉬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깨달은 것을, 스스로 입 밖으로 내뱉었을 땐 더욱 마음이 답답할 뿐이었다.


 내 이름 팔아서 나 병신 만든 새끼가... 동생이라. 그것도 친 동생도 아닌 새끼가...


 항간에 자신이 남녀 안가리고 이사람 저사람 전부 다 건드린다던지, 어디서 추행을 당했다던지 하는 걸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애초에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은 그에게 있어 그 모든 것은 거짓말에 불과했기에 아무런 상대도 하지 않았다. 거짓에 해명을 하면, 진실이라 믿는 자들이 생기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여 그저, 자신은 즐기고자 하는 것을 즐기면 된다는 마인드로 희귀한 피규어 수집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황금의 고드윈이란, 그리하여 생긴 별명에 가까웠다. 어지간한 희귀한 물품을 전부 쓸어가다보니, 집에 금이라도 쌓아놓고 사는가보다 하는 사람들의 추측 하에 생긴 별명. 그것으로 본인의 결백이 자연스레 입증되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하필, 피곤하던 어느 날 밤, 옥션에서 수 시간에 걸친 상위입찰 싸움 덕에 잠도 못자고 밤새다시피 했던 그 때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 날 옥션에서는 큰 프리미엄을 얹은 끝에 한정판 1/6 사이즈 호담 라이오넬 피규어를 간신히 구할 수 있었으나, 하필 20시간에 가까운 잠을 잔 그 때 고드윈을 가장한 고드릭이 클럽에서 다른 사람에게 치근덕거리다 결국 강제로 접목해버리는 사고를 친 것이다. 접목 당한 상대는 이를 고드윈이 행한 일로 알고 폭로했고, 정확히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없었던 시간에 사건이 벌어진 탓에 그대로 뒤집어 쓰게 된 것.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같은 왕족의 일가라면 최소한 이것이 고드윈이 한 일이 아님은 알 수 있었으나, 누가 보아도 똑같은 고드윈의 필체로 적은 그의 이름, 그리고 룬의 일부를 보여줬다는 것 때문에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틈새의 땅의 대부분의 사람은 거대한 룬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 지 몰라도 그것이 어떤 형태를 하는지, 주인마다 다른 형태인지도 다른지 모르기 때문에, 정상적인 해명을 하더라도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을 이용해 고드릭을 지키려 한다' 는 비판이 나오기 쉬웠다. 게다가 왕족들 사이에서도, 왕족의 일보다 피규어를 우선하는 오타쿠의 기질을 숨기지 않던 고드윈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고드윈을 보호하려고 해 보았으나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던 탓에, 손을 쓰기 어려웠던 것. 이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은 라다곤과 마리카는 흉부 통증을 호소하다가 쓰러진 뒤, 간신히 의식은 되찾았으나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어려워져 틈새의 땅을 정상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워 진 것이다.


 고드윈은 자기 자신에게 씌워진 누명도 억울한데다, 부모님을 쓰러지게 만들기까지 했으니 이 누명을 씌운 사람을 찾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수렁에 처넣으리라는 마음가짐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든 범인을 찾겠다는 일념 하에 평소 가까이 지내던 피아를 사건이 일어난 장소인 클럽에 직원으로 숨겨두거나, 다른 가족들에게 부탁하여 주흔과 관련된 자료를 전부 수집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왕족의 삶을 떠나고 싶어하던 라니의 협조를 얻어, 최근에 겨우 간신히 주흔-리스트를 훔쳐 자신의 이름을 지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라니는 자신의 이름을 덧씌워운 뒤 원래 자리에 돌려두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말리케스가 회사 자체를 말 그대로 터뜨리고 사라진 뒤였다.


 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는 사이, 최소한 범인은 다시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름을 지우는 과정 하에서 말리케스가 그리 떠들썩하게 사라졌다보니, 최소한 한동안은 상황을 관망하거나- 흑검에 처맞기 싫다면 이제는 사칭을 그만두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범인은 멍청했고,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기회라고만 생각하여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이번에 고드릭을 잡으면, 아예 걷지도 못하게 다리를 없애고는 생선토막과 접목시켜 둘 생각이었다. 혹시 만약에라도, 몰래 나가더라도 냄새 때문에 어디로도 갈 수 없도록. 고드윈은, 어떻게든 고드릭을 반 병신으로 만들겠노라는 일념 하나로 불타고 있었다. 고드윈은 피아에게 직접 가겠노라고, 지켜보라는 연락을 남기고는 서둘러 스톰빌로 출발했다.


 '지랄은 거기까지다, 고드릭...'


쓰다보니 재미없는것같은데 쓴김에 그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