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호들갑도 유분수지. 무시하며 사르바 코옵이나 열려는데 쬿의 낯빛이 심상치 않다.

장난을 치려는 게 아니었나? 이쯤 되자 이쪽도 덩달아 기분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대체 뭔데? 꼴 뉴비가 뭐 어쨌다고?


"이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확실히 후리존이 아니겠지?"

"어? 어어. 초회차이고."

"넌 몇 누적인가?"

"거인왕 노가다로 이제 천 오백만이 조금 넘었어. 후리존이 보통 3억 6천을 넘기니까 아직 거기까지 가긴..."

"이런 미친!"


농담이 재미가 없다지만 욕은 좀 너무하지 않은가. 사람 무안하게.


"누적 천 오백의 코옵이라고?"


그런데 쬿은 내 농담에 놀란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보게. 정신 차려. 아직 매칭에 들이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코옵을 취소하란 말일세."

"취소라니? 이미 부거숲부터 같이 해오고 있는데?"

"이런 멍청한! 자네는 꼴맘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모르긴 왜 몰라. 이상한 모자 쓰고 절정이나 날리고... 생각해보니 잘 모르긴 하네.


"호들갑 그만 떨고 왜 그러는지 말이나 좀 해줘봐. 대체 왜 그러는데?"

"하아. 알겠네. 내 쉽게 설명해줌세. 기본적으로 꼴맘들은 누적 소율 구간쯤이야 외우고 다닌다네."

"그거야 나도 알지."

"자. 그럼 잘 생각해보게. 단순히 꼴기장만 돌아도 소울이 쌓이는 꼴맘들이 시간이 지나면? 내로라하는 거인의 왕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강력한 누적의 경지에 오르네."

"어... 진짜?"

"내가 거짓말을 왜 하겠나. 거기다 자네가 들어간 코옵이 1500만이면... 이미 후리존의 수준에 올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야."


듣다보니 식은땀이 흐른다.


"그럼 왜 부거숲부터 같이 온 건데? 후리존이라면 누적이 낮은 캐릭터와 같이 잡힐 리가 없잖아."

"잡힌 게 아니라 잡혀준 걸세. 새 세이브를 파서.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원."

"잡혀줘? 대체 왜?"

"일상에 권태로움을 느낀 게지.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던 거고."

"그렇다고 뉴비를 자처해?"

"성정이 좀 변태적인 꼴맘일수도."


그러니까, 쬿의 말은 어느 변태적인 꼴맘이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미삼아 뉴비를 자처했다는 소리였다.

그게 말이 되나?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 바람에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부거숲에 태운 탐구자가 식어가는 걸 가만히 내려다보던 내가 문득 드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상관없지 않아? 갤러리에 코옵글을 써놓았으니 무슨 수를 써도 나한테 반항하지 못해."

"자네는 pvp를 안 해서 다행이야. 그런 머리 수완이면 일 년 안에 패가망신 했을 테니."

"그건 또 뭔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하. 알겠네. 자네는 글 관리를 누가 해준다고 생각하나?"

"그야 파딱들이...?"


어, 잠깐만. 제아무리 프롬갤을 관리하는 파딱이라도 꼴맘의 경지에는 못 이르는게 아닌가?


"끽해봐야 꼴기장을 여는것뿐인 파딱이 관리하는 갤러리를, 독 안뺀 미다를 507882번 잡아온 꼴맘이 속이지 못할 거라 보는가?"

"그럼 왜 갤러리에 글을...?"

"아까 말했지 않은가. 자네를 가지고 노는 거라고."


섬칫 어깨가 떨린다. 내가 근처에 가기만 해도 반가워서 손을 흔드는 꼴 뉴비가 사실은 날 가지고 노는 거라고?

말도 안 돼.

그래.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저 쬿은 나를 골려주기 위해 헛소리를 하는 게 틀림없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남은 탐구자를 태워버렸다.



*



코옵에 들어오자 저번에 위치를 알려준 하벨 세트를 입은 뉴비가 도게자를 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어서오세요 고, 고인물님..."

평소와 다름없는 행동. 어눌한 제스쳐는 여전히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다.

그래도 야단을 치지는 않았다. 쬿 호들갑 때문인지 오늘은 뭔가... 주의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잡몹부터 잡지."

"네, 네에..."


공손하게 대답한 뉴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필드를 밀러 떠났다.

나는 세팅을 한 뒤 간단한 버프를 걸고 들어섰다. 경직이 잘 안걸려 특대가 아니면 쓰러지기 힘든 몹들이 이루고 있었다.

반면에 뉴비가 든 무기는 세스타스다. 하벨셋을 입느라 무게때문에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사거리 짧고 경직을 주기 힘든 무기였다.

뉴비를 한 번 흘겨본 나는 잡몹 앞에서 그소를 들었다.


"잡지."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뉴비가 바닥에 납짝 엎드려서 내가 잡아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와도 같은 행동이지만 오늘은 뭔가 껄끄럽다. 내가 손을 들어 제지한 다음 뉴비를 붙잡아 일으켰다.


"오늘은 네가 잡아 보도록 해라."

"네, 네에...? 아니, 아니에요... 저 같은 컨트롤이 허접한 뉴비는 잡몹들에게 쳐맞는거에요... 부디 고인물님이 저 강한 몹들을 처리 해, 해주세요..."

"괜찮다. 혼내지 않으마."

"그, 그런..."


뉴비는 묘한 신음소리를 내더니 잡몹 앞에 왔다. 그리고는 깨작깨작 한 대씩 때리고 도망가는 것을 시작했다.

기쁘지 않은 건가? 그 모습을 잠깐 지켜보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다른 잡몹을 잡았다.


"회복."


에프터로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기적을 사용하라고 시키니 뉴비는 아이템을 줍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적을 들고 돌아왔다.

문제는 중간에 손이 엇갈린 모양인지 회복 대신 흡정광을 쓰고 말았다는 것이다.


"앗...!"


외마디 비명과 함께, 와장창! 내가 끼고있던 세번째 용의 반지가 부숴지는 소리가 났다.


"고, 고인물님 제가 죽을 짓을...!"


뉴비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부복한다. 익숙한 뒷머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 어떠한 벌이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죄에, 죄송합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으나 이번 한 번은 봐주기로 하였다. 내가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휘저었다.


"되었다. 내가 수리하고 다시 올 테니 너는 톳불로 들어가 있어라."

"넷...? 고인물님...?"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하지만 저는 벌을 받아야...!"

"토달지 마라."


내가 말을 끊어버리니 뉴비의 표정이 단번에 싸늘해졌다.

창백해진 것이 아니다. 싸늘해진 것이다. 미묘한 차이였지만 나는 분명 알 수 있었다.


"오늘의 고인물님은 어쩐지... 상냥하시네요..."


짜내듯 내뱉은 말. 뉴비는 그 말을 남기고는 화톳불로 올라갔다.

나는 그때를 노려서 뉴비의 방에 설치해두었던 감시 오브젝트를 가동시켰다.

혹시 몰라 설치해뒀는데 이번 기회에 써보는 것이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 뒤이어 뉴비가 들어와서 침대에 걸터앉는 게 보인다.

뉴비는 공허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더니 경멸어린 미소를 머금었다.


"제 역할도 제대로 못하네. 건방진 새끼가. 죽여 버릴까."


더없이 냉소적인 목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설마. 설마 쬿이 했던 말이 전부 정답이었나?

이 뉴비는 도움당하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 나한테 코옵한 거라고? 목격한 진실이 너무나 터무니없다.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낮게 침음하였다.


"다른 코옵을 알아봐야 하나..."


뉴비의 손에 피어오른 패자의 증거가 날카로운 예기를 띈다.
'8회차 노로이스 백왕 패자 팟'

이런 씨발! 당황한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근처의 인벤토리를 뒤적거렸다.

아무거나 잡히는 것을 하나 꺼내들고 계단을 타고 올라 뉴비가 있는 방을 벌컥 열었다.


"엣...?"


방금 전까지 코옵글을 쓰고 있었던 주제에, 꼴맘은 순진무구한 눈방울로 나를 쳐다보았다.


"고, 고인물님... 어째서... 수리하고 오신다고..."


처음에는 저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역겨운 연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티를 내면 내가 저 꼴맘한테 죽는다. 이제 여기서 뭘 해야하지? 머릿속 주판을 최대한 굴리던 나는 손에 대룡아가 잡혀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서랍 속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마음이 바뀌었다."


최대한 침착하게. 나는 평소와 같은 억양을 내뱉으며, 꼴맘을 향해 우석을 던졌다.


"오늘은 검안탑 코옵이다. 버러지 같은 년."

"거, 검안탑 코옵이요...?"


꼴맘이 경악한다. 아니, 경악을 연기하고 있었다. 입 꼬리가 미묘하게 히죽거리는 게 그 증거였다.


"고, 고인물님... 그것만은... 제발 용서해주세요..."


미친년. 나는 억하심정이 올라오려는 것을 꾹 참으며 말문을 열었다.


"검안탑 이후에는 투명 아바 시간을 갖도록 하지."


내가 살기 위해서는, 저 정신나간 꼴맘을 조교해야만... 아니, 조교하는 연기를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