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마주하는 것에서 도망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점점 줄어드는 통장 잔고라던가,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니 넥타이와 함께 목을 조여오는 취직의 난간이라던가, 젊을 땐 느껴 보지 못했던 허리 통증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조그마한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쩍 입에 붙은 '이걸 못 피하네'와 '굴렀잖아' 따위의 말들은
내가 보다 젊었던 때에 비해 늙고 비루해진 인간이 됐다는 사실만을 각인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눈을 돌리는 것이 허용되는가 하면 그 또한 아니다
단적인 예로 화톳불에 앉아있는 것은 정말로 안락한 순간이다
하지만 그 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쉬는 것은 허용될지언정 그 순간에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다
멈추면 뒤지거든요 씨발놈들아
이 좆의 도시에서 내가 애써 눈을 돌려왔던 것들이
미처 길을 찾지 못한 내게 한꺼번에 짓쳐들었을 때 그것은 이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 병신 같은 짤 또한 그렇다
난 탐스러운 보석 도마뱀 앞에 맹독 늪으로 떨어지는 구멍이 있음을 앎에도
'아 ㅋㅋ 이 정도 너비면 점프로 넘어가지지' 따위의 생각을 품어버리고 말았다
탐욕에 눈이 멀어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이 게임의 점프 시스템이 나보다 못한 비루한 존재라는 현실을
그리 외면한 끝에는 쓰레기만이 내 품에 안겼다
이 쓰레기로 가득한 도시에서도 유별날 정도로 아무런 가치 없는 쓰레기만이 오롯한 나의 몫이다
쓰레기의 말로는 쓰레기장일 터다
돌고 돌아 음습한 개발자들의 온갖 추잡한 악의가 버려진 쓰레기장으로 돌아왔다
길을 찾지 못한 이에겐 무엇이 남는가
나와 함께 갈 곳을 잃어버린 분노만이 남는다
그리고 보다시피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위다
어떤 모종의 사유로 투명화된 채 땡땡이를 치고 있던 간수 둘은 분노한 내게 즉시 병신새끼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니까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이제 잘 알고 있다
산전수전을 겪어 이곳으로 돌아온 내가 귀향길에 재수 없이 걸린 맹독으로 죽는 것처럼
다만 이곳에서는 죽음마저도 기록이 된다
얼핏 이 허무해 보이는 죽음조차도 혈흔이 되어 잇따를 자들을 위한 이정표가 된다
봐라 한발 먼저 간 친구가 마중을 나오지 않았는가
엎드려 뒤진 걸 보니 직전의 나와 같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모양이지
못난 놈들끼린 얼굴만 봐도 즐겁다
아 방금까지 지껄였던 말들은 장황한 개소리다
좆같은 가고일이 좆같이 생긴 날개로 좆같은 가드질을 하는 시점에서
이 좆같은 새끼를 외면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길 가면서 만나는 '어머 인상이 좋으시네요 ㅎㅎ' 따위의 말에 일일이 반응해주는 게 병신 짓거리인 것처럼
그러니 이건 도피가 아니라 현명한 처신이다
그나저나 이루실 보스 낯짝도 못 봤는데 이 좆의 도시의 보스를 상대하는 게 옳은 짓일지는 모르겠다
누가 좆의 도시 아니랄까봐 가장 거대한 새끼를 왕으로 추대한 모양이다
보방 앞에 적혀있던 필요한 아이템이라는 건 저 좆만한 하얀 곰팡이를 지칭하는 것일 테고
방금 생전 처음 만난 스톰 쿨러인지 뭔지 하는 대검을 이 수많은 날붙이들 사이에서 분별해낼 만큼 눈썰미가 좋지 못하다
씨발 라이커드는 적어도 무기 스왑할 시간은 줬는데
아잇 씨팔
그래도 스왑은 해뒀으니 저 씹새끼는 이제 시한부 신세라 볼 수 있다
? 아니 이거 뭐임?
왜 공격이 안 나감? 이거 진짜 뭐임?
아니
쥐좆만하게 들어가는 데미지가 '이거 평타로 잡는 거 아니야 병신새끼야'를 완곡하게 표현해줬다
근데 나한테 들어오는 데미지는 완곡하지 않다
저새끼는 날 두 방에 죽이는데 나는 저새끼를 오억 번은 때려야 죽일 수 있다고? 무슨 이딴 기적의 딜교환이
아니 씨발 미풍 개새끼야
마나는 홍등가의 창녀마냥 쪽쪽 잘만 빨아가면서 왜 검기는 안 나가지는데
분명 검에 바람이 서리는 걸 확인했다
근데 처 나가질 않으니 내 요구스탯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확인했고
약공 강공 점공(없음) 다 해봤지만 마나를 전부 짜낼 때까지 이 좆같은 창부의 마검은 미풍밖에 내뿜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이제 소울류 짬밥이 좀 찼다
이런 난해한 무기라면 분명 아이템 설명에 공격 방식이 적혀있을 거다
애미
'그 진가는 거인을 눈앞에 뒀을 때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랄염병을 ㅋㅋㅋㅋㅋㅋ
보방에 널린 시체들은 저 미니 선풍기 사용법 하나 몰라 뒤진 새끼들일 거다
남말할 게 아니라 나도 똑같은 사유로 죽어가고 있음
거인... 갈랐다고...
수도 없이 많은 스크린샷을 휴지통에 처박은 끝에 드디어 제대로 된 검기가 나갔다
아니 근데 휴대용 길로틴 든 새끼 앞에서 전기 키를 억겁의 세월 동안 누르고 있어야 유효타가 나가는 건 어떤 덜떨어진 새끼에서 머리에서 나온
이런 기믹 보스들은 플레이어가 감을 잡는 순간 수명을 다한 거다
암만 몸에 불 붙이고 지랄염병을 떨어봤자 내가 그 분야에선 저새끼보다 우수하다
그러니 이제 곱게 죽을 때다
아 물론 내가
2페에 들어서니 저 씨발놈도 좆됨을 직감했는지 차징에 필요한 억겁의 시간을 기다려주질 않는다
내가 전기 키에 손을 가져다대면 씹덕망상에 잠긴 찐따새끼를 본 일진마냥 칼같이 달려와서 지건을 꼽아버린다
한 다섯 번쯤 더 트라이한 끝에 어렵게 클리어했다
이걸로 장작의 왕도 벌써 반이나 족쳤음
근데 또 둘 족치겠다고 내가 했던 개지랄을 생각해보면 아직 많이 남은 것 같기도 하고
장작의 왕이 반밖에 안 남았네
장작의 왕이 씨발 반이나 남았네!
난 잘 모르겠다
상자 두 개를 나란히 진열해뒀으면 하나쯤은 미믹이 아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모든 잡몹들 사이로 뛰어든 것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은 기대해볼 법하지 않냐는 거다
왼쪽 상자가 미믹인 걸 확인하자마자 오른쪽 상자를 연 결과가 바로 이 지랄통이다
이걸로 욤이 마지막으로 남긴 잔불마저 꺼졌다
그래도 괜찮다
재에 붙은 잔불은 쉽게 사그라지는 것이고 재는 잔불을 바라니까
꺼졌다면 다시 불을 피우러 가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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