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써온 김에 앞부분 수정한 거 다시 포함해서 올림
[1] 우스케
우스케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다.
잔병치레는 고사하고 달포에도 한번씩은 크게 앓아 눕기 일쑤였으니 우스케의 어머니가 눈물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우스케가 앓아 누울 적이면 우스케의 아버지는 늘 산에 올랐고 이내 어스름한 저녁노을이 깔릴 즈음 약초를 한다발 든 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이윽고 부엌에서 한바탕 달그락대는 소리가 나면 탕약을 달이는 달큰한 냄새와 매캐한 냇내가 바람을 타고 마을로 퍼져나갔고 우스케네 카쇼즈쿠리 앞을 지나던 집락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추어 저 집은 또 애가 아픈 모양이라며 수근댔다.
*카쇼즈쿠리
다만 허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우스케는 매우 활달한 아이였다.
병상에 누워있지 않을 때면 자주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았으며 동갑내기 아이들과 함께 산에도 곧잘 올라가는 바람에 우스케의 어머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산에 도적떼가 나온다며 겁도 주어보고 한번만 더 산에 올라가면 발가벗겨 내쫓겠다며 아버지를 시켜 을러본들 우스케는 다음날이면 늘상 뛰어놀던 공터로 나가 아이들과 어울리기 일쑤였다.
그나마 우스케가 또래 아이들처럼 장난기가 마냥 심하지는 않으니 어디서 나쁜 짓을 하고 다니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 우스케네 어머니에게는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우스케는 착한 아이였다.
[2] 산
우스케네 가족이 살고 있는 키타노타치 집락 사람들에게 있어 산은 큰 의미를 갖는다.
산에 둘러싸인 작은 분지마을 특성상 마을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식재료의 대다수는 산으로부터 얻은 것들이었다.
집락 곳곳에 서있는 집들부터 마을 언덕배기의 자그마한 신사와 그 토리이에 이르기까지 마을을 이루는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은 나무꾼들이 산으로부터 가져오는 낙엽송을 깎아 세워진 것이었다.
하여 마을 사람들은 산을 경배하는 의미에서 함부로 산을 오르는 것조차 금기시했으며 나무꾼이나 채산을 목적으로 오르는 여인들이 아닌 이상에야 산의 초입에 세워진 자그마한 돌부처상 너머로 발을 들이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산에 사는 원숭이들 또한 “야마히토(山人)”, 즉 산에 사는 사람이라 부르며 해하기를 꺼리니 그야말로 산에 바치는 집락의 경외는 대단한 것이었다.
다만 아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마을 어른들의 눈에 비친 산이 마을의 생활을 책임져주는 고마운 존재라면 아이들에게 있어 산은 신나는 놀이터이자 귀찮게 구는 어른들로부터의 도피처였다.
마을 어른들은 아이들끼리 산에 들여보냈다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아이들을 산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려 들었으나 곧 아이들 특유의 교활한 잔머리 앞에 두손두발 다 들고 말았다.
이윽고 아이들과의 타협안이었던 “산에 갈 때는 어른이 동행한다”는 선택지마저 아이들과 함께 산을 올라갔던 사카모토 씨가 낙엽이 덕지덕지 붙은 채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혼자 돌아온 이후로는 깨지고 말았다.
물론 그날 아이들은 산에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잔뜩 혼이 났지만 아이들이 반성하던 태도는 다음 날 새벽닭 우는 소리에 모조리 날아가고 말았다.
이렇듯 산은 키타노타치 집락 사람들 모두의 생활에 깊이 녹아들어 있었다.
[3] 야마노히토
어느 날 우스케가 사라졌다.
산에 함께 올랐던 아이들이 이르기를 우스케는 “야마노히토(山のひと)”가 데려갔다고 했다.
아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난리가 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며 몇번이고 되물어도 아이들은 똑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우스케는 야마노히토가 데려갔어요.”
마을 어른들은 발광을 하려는 우스케의 어머니를 간신히 진정시킨 뒤 곧바로 젊은 청년들을 주축으로 수색대를 꾸려 산으로 향했다.
산의 중턱을 기준으로 둘로 나뉜 수색대는 아이들이 평소 자주 가던 계곡과 근처의 굴, 절벽과 그 아래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결국 우스케는 커녕 우스케의 옷가지 하나 찾지 못한 채 어둠이 깔리는 산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우스케를 찾기 전까지는 절대로 내려가지 않겠다던 우스케의 어머니는 결국 울다 실신해 우스케의 아버지 등에 업혀 마을로 내려왔다.
[4] 승려
결국 일주일이 지나도록 우스케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스케의 어머니는 실어증에 걸린 듯 우스케의 이름만 중얼거리며 앓아누웠고 마을에서는 슬슬 우스케가 살아있을 거라는 기대 대신 우스케의 시신이나마 찾아보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갔다.
다시 시간이 흘러 우스케가 사라진 지 3주 째 되어가던 날, 돌연 마을에 승복을 입은 남성이 찾아왔다.
근심에 잠겨 오랜만의 객에도 시큰둥하던 마을의 분위기는 이윽고 승려가 꺼낸 말에 대번 뒤바뀌었다.
“혹시 여기가 우스케군이 살던 마을이 맞습니까?”
[5] 선봉사
눈 앞에 이상한 것들이 가물거린다
'칙칙한 갈색 벽에 매달린 이상한... 불덩어리들. 그리고 몸에 금칠을 한 사람까지...
우와... 저 멀리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사람도 있네....'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나봐.
그래, 분명 아직 [하아암] 꿈이 덜 깬 거야. 솜이불도 푹신하고... 좋네... 한숨 더 자고 일어나면...
어? 솜이불? 어라? 내가 왜 누워있지?'
우스케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두운 빛의 목재로 된 바닥과 천장... 벽에 걸린 연등, 그리고 구석에 놓여있는 작은 불상까지.
그제서야 비몽사몽간에 가물거리던 것들이 눈에 제대로 들어왔다.
어느 날 친구들과 몰래 숨어 들어갔다가 결국 잡혀 호되게 혼나고 끌려나왔던 마을의 신사.
가만히 앉아 방금 전까지 자신이 누워있던 작은 방 안을 둘러보고 있노라니 우스케는 전에 신사 안채에서 보았던 풍경이 떠올라 살짝 속이 거북해졌다.
괜히 여기 누워있다가 또 다시 마을 어른들에게 들킨다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경을 칠 것만 같았다.
혹여 나중에 책이라도 잡힐까 싶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지런히 이부자리를 개어놓던 우스케는 문득 위화감이 들어 손을 멈추었다.
분명 자신은 방금 전까지 산 속에서 친구들이랑...
'맞아. 사토랑 히로 녀석들이 뱀딸기가 엄청 많이 열린 덤불을 찾았어. 그리고 토우마 녀석이 이런 덤불 근처에는뱀이 많다고... 윽'
갑자기 찌릿하고 뒤통수가 아려왔다.
'일단 뭐가 됐든 괜히 잡혀서 또 혼나기 전에 여기서 나가자.'
그러나 그런 우스케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저 이부자리를 개어둔 뒤 시선을 돌린 방 문 너머에는 빼빼마른 사람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우스케는 문득 자신도 모르게 뒤통수에 손이 올라갔다.
손끝으로 작은 혹이 만져졌다.
[6] 은혜
평소답지 않게 아침부터 온 집락이 분주하다.
때아닌 마을잔치라도 열린 것인지 아침 댓바람부터 마을의 굴뚝이란 굴뚝에서는 전부 모락모락 흰 김이 피어오른다.
잠시 후 마을 어귀로 승려가 걸어나오고 그 뒤를 예닐곱은 될 법한 아이들의 무리가 따른다.
곧이어 채비를 마친 듯한 승려에게 집집마다 어른들이 달려나와 보따리에 싼 음식을 건내자 승려는 곤란하다는 듯 쩔쩔매며 손사래를 치기 바쁘다.
"시주님들께는 참으로 감사하나 길이 멀지 않은 데다 이리 많은 짐은 소승이 지고 가기 어려우니 다만 시주님들의 불심과 정성만 받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인파가 조금 잠잠해지자 승려는 아이들로 하여금 부모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시킨 뒤 길을 떠났다.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어머니들 중에는 우는 이도 있었으나 남편들이 눈물을 닦아주고 진정시켰기에 송별의 인파가 눈물바다가 되는 것만은 면할 수 있었다.
산에서 사라졌던 아이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데다 "선봉사"라는 절에서 치료까지 받고 있으며 절에서 만들어낸 약수로 마을의 아이들까지 병에 걸리지 않는 몸으로 만들어준다는데 어느 부모가 가만있을 수 있으랴.
물론 이 산골마을에도 의원을 볼 방도는 있으나 진맥이라도 받고자 하면 산을 서넛은 타고 넘어 모셔와야 했기에 혹여 아이가 병에라도 걸리는 날에는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가 버텨주기만을 기도하며 산을 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으리라.
허리춤에서 꺼낸 퉁소를 불며 길을 떠나는 승려의 입가에는 엷은 웃음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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