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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멸망의 불을 지키던 마지막 불의 거인은 쓰러지고, 우리는 거인의 산령에 도착했다. 길고 긴 여행의 종착점이었다.


우리는 잠깐 동안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다가 숙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때다. 눈물은 고이아두자. 그와의 마지막이, 슬픔보다는 사명감으로 가득한 이별이었으면 하니까.

나는 이제 죽는다. 생에 남은 미련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이겠으나, 내가 사귄 마지막 친구가 나의 사명을 이루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일 것이다. 비록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의 곁에는 라니가 있으니까.'


그는 좋은 왕이 될 것이다. 내 남은 모든 것을 걸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치세는 어머니가 만들었던 규율보다 더 상냥하고, 더 굳건할 것이다. 그럴 보증이 어디에 있냐고? 그야 당연하지 않겠는가, 누가 선택한 빛바랜 자인데.

나는 그의 무녀가 아니었지만, 그가 가는 길이 곧 왕좌로 향하는 길이라 믿었다.


"멜리나."


푸르르르.


나를 태운 토렌트가 갈기를 흔드며 멈춰섰다. 나는 안장에서 내리며 작별의 의미를 담아 마지막으로 영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까지 고마웠어, 그를 잘 부탁해.'


"고마워, 친구. 이제서야 어머니가 주신 사명을… 이룰 수 있게 되었어."


"………멜리나."


"……틈새의 땅을, 오래토록 봐왔어. 이 땅에는 수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차별 없는 죽음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제 마지막이다. 될 수 있으면 좀 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체온을 느끼며 왕이 된 이후의 미래나,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같은 뜬구름 잡는 주제로 수다 떨고 싶었다. 그러나 안된다. 그럴 수록 미련이 강해지고 이별이 힘들어진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


마음 속에 한 구석에 넣어둔 '이 감정'은, 거절의 가시와 함께 태워버리자.


애써 웃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나쁜 짓을 저지르려는 어린아이처럼 장난스럽게 말한다.


"…저기, 가장 큰 죄를 마주할 준비는 됐어?"


그러나 빛바랜 자는 고개를 세로로 젓는다. 어째서? 여기까지 와서 왜 망설이는 걸까. 그는 보여줄 것이 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불의 그릇에 손을 뻗었다. 그러지 그의 손끝에서 피어오른 불씨들이 날아가 그릇에 불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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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어떻게…?!"


"그림자의 땅에서, 너의 오라버니와 만났어.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이 불을 얻게 되었지. 메스메르는, 너가 살기를 바랐어."


오라버니가... 그랬구나. 틈새의 땅에게 버림 받았음에도 아직도 틈새의 땅을 잊지 못하다니.

슬픈 일이었다. 아마 그는 죽었겠지. 그의 최후가 어떤 식이었는지는 에상되지 않았다. 그러니 부디 평안했기를. 그리고 부디 어머니에게서 해방되었기를.



"멜리나. 이 말을 하기 위해…… 정말 많이 연습했어."



그는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더니, 고개를 올려 나를 보았다. 그리고 품속에 간직하던 작은 반지를 꺼내 내게 건냈다. 그것은 마치 연인에게 고백하는 듯한 모습이었기에 나의 한쪽 눈이 크게 떠졌다..

아아, 이래선 안된다. 당신의 반려는 내가 아닌데. 이건, 어머니의 뜻을, 황금 나무의 인도를 벗어나는 행위인데.


그러나 내가 놀라움에 사로잡혀 멈추지 못하는 사이에 그는 결국 말하고 말았다.



"멜리나, 내 반려가 되어줘."



불타오르는 황금나무가 밝게 우리를 비춘다. 벅차오르는 감각에 지금껏 잘 만들어오던 표정이 무너진다. 안돼, 안돼. 이러지 마. 잘 참아왔잖아. 잘 하기로 했잖아. 네 주제를 자각해. 자격이 없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괜히 망설이지 마. 감정을 죽여. 목소리를 유지해. 어서 말해. 말해. 말하는 거야, 멜리나.


"난, 그럴 수 없어."


"아니, 너만이 그럴 수 있어. 나의 무녀는 너잖아."


"난 반려가 될 자격이 없어. 너에게는 라니가 있잖아."


"무슨 소리야? 내가 라니와? 그녀와는 검은 칼날 문제로 몇 번 도움을 주고 받았던 거야. 너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솔직하게 기쁘다. 나 같은 여자를 위해 이토록 마음을 다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리고 그 사람이 내가 마음 속으로 좋아하던 사람이라니.

행복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울음이 나올 정도로.


"나, 나는… 신이 될 수 없어…! 알잖아! 엘든 링을 수복하려면 왕과, 반려인 신이 있어야 해. 너가 이 반지를 바쳐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고! 그러니 어서 라니에게 가. 이 반지는 그녀에게-"


"상관 없어. 그런거."


"뭐?"


"나에게는 너가 가장 소중해. 너가 신이 아니어도 돼. 지금 그대로, 살아서 내 옆에 있어줘. 난 여신과 결혼하고 싶은 게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거야."


흔들린다. 황금의 인도가, 어머니의 사명이 눈앞의 현실에 파묻혀 가라앉고 있었다. 머리로는 안된다 알고 있지만, 이미 입은 마음이 뜻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필시 어머니가 날 욕하실 것이다. 사명을 이루지 못한 덜떨어지라 크게 혼내시겠지. 그가 왕이 되면, 그 반려는 신이 아니게 되니까. 모두가 날 욕하고 손가락질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째서 일까?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그런 미래에서도 그가 내 옆에 있어줄 거라 생각하니 걱정은 커녕 행복함만이 올라온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나의 사명을 져버린다.


마침내 터져버린 눈물과 함께 반지를 받으며 말했다.



"이런 부족한 몸이지만……… 당신의 반려가 되어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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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재밌게 봤으면 개추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