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프롬 게임의 감성은 이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더러움과 어려움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난이도, 악의적인 함정과 몹 배치, 근성과 무수한 죽음을 요구하는 보스전…무엇 하나 긍정적인 요소가 없다.


그야말로 돈 주고 벌서는 꼴이고, 나는 불합리하게 죽으면서 희열을 느끼는 변태 마조히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프롬 게임과는 연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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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던가?


2023년 11월, 군대 찍턴을 나온 나는 롤/메/던/로 4교대 사이1클에 질려 스팀으로 눈을 돌렸고, 그곳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RGB 색상표를 발견했다.


트레일러를 봤는데…제법 재밌어 보였다. 그런데 개발사가 프롬 소프트웨어?


바로 디코에 상주하는 프롬겜 썩은물 친구놈에게 ‘엘든 링 할 만함?’이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아니나 다를까 썩은물 친구놈은 침을 질질 흘리며 내게 음성 통화를 걸었다.


그날 난 썩은물 친구놈에게 영업당해 엘든 링을 구매했다.


물론 좀 비싸긴 했지만…2시간 정도 해보고 이건 아니다 싶으면 환불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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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나는 더 이상 엘든 링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며칠째 계속 퍼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하물며 700시간을 붙잡고 있었으니 오죽할까.


다른 게임을 하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는데, 맞는 말이다. 문제는 엘든 링이 내 즐거움의 역치를 존나게 올려놨다는 것이다. 이제 웬만한 게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나는 엘든 링의 대체재를 찾기 위해 별의별 게임을 다 찍어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엘든 링만큼의 쾌락을 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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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게 썩은물 친구놈은 다크 소울3를 들이밀었다. 엘든 링은 사실상 다크 소울4고, 엘든 링이 재밌었다면 다크 소울3도 재밌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예전 같았으면 기겁하며 도망쳤겠지만, 멀기트와 트리 가드에게 대가리가 깨지면서 프롬 게임의 문법에 익숙해진 나는 ‘다크 소울 시리즈도 할 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세일 중이었기에, 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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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엘든 링 캐릭터는 점성술사 태생이었다.


당시 썩은물 친구놈은 가지지 못한 자가 근본이라며 선택을 종용했지만, 난 나무 몽둥이를 든 1레벨 팬티맨이 하자 있는 선택지라는 걸 모를 만큼 빡대가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애초에 엘든 링에는 ‘가지지 못한 자’라는 태생이 없다…


그래서 열댓 개의 태생 중 가장 덜 미개해 보이는 점성술사를 골랐고, 그건 지금 생각하기에도 제법 현명한 판단이었다. 친구놈 말 듣고 빈털터리를 골랐다면 내 스팀 라1이브러리에는 엘든 링이 남아있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마술사를 선택할 것이다.


친구놈이 오열하기 시작했지만 좆까라지, 이 새끼는 내가 영웅의 가고일을 별똥별 난사로 2트하는 걸 보고 ‘그건 프롬 게임을 올바르게 즐기는 방법이 아니야’라며 울부짖었던, 남이 고통받는 걸 보고 쾌락을 느끼는 심성이 뒤틀린 놈이다. 이 새끼의 비루한 악의에 어울려줄 하등의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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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난관에 봉착했다.


엘든 링에서는 유품으로 황금 종자를 들고 시작했는데, 여긴 황금 종자는커녕 비스무리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죄다 소모품에, 그마저도 별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것들 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건 ‘금이 간 붉은 눈동자의 오브’였는데, 이거 엘든 링으로 치면 피 묻은 손가락 아닌가? 이딴 걸 왜…?


결국 그나마 가장 도움이 될 것 같은 ‘주인 없는 소울’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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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마는 대충 인터넷에서 베꼈고, 이름은 대충 눈에 보이는 걸 적었다.


캐릭터가 완성됐으니, 이제 게임을 시작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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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생각보다 그래픽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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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검과 방패를 빼려고 장비창을 열었는데, 키 표시가 키보드가 아니라 컨트롤러 기준이다.


바꾸려고 설정 창을 열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키 표시를 키보드로 바꾸는 설정이 보이질 않는다…여기서 1차 당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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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 키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키 설정을 열었다가 2차 당황.


스페이스바 하나에 대시/백 스텝/구르기/점프가 몰려 있다. 이게 대체 무슨 괴악한 키 설정이지? 바로 점프 키를 F로 바꿔줬다.


여전히 점프가 안 되길래 별의별 짓을 다 하다가 달리는 중에만 점프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래서 대시/백 스텝/구르기/점프를 스페이스바 하나에 몰아놓은 거구나.


미친 게임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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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발견했다.


여기선 화톳불이라 부르는 모양인데…고향이 틈새의 땅인 나로서는 도저히 입에 붙지 않는 이름이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축복이라고 부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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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다른 건 축복뿐만 아니라 성배병도 마찬가지였다.


에스트랑 잿빛 에스트. 그래, 이건 입에 좀 감기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왜 ‘잿빛’ 에스트?


난 다크 소울 시리즈의 감성을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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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에서 몇 걸음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보스방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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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찍고 풀피 만들어서 오니 접목의 귀공자 포지션으로 추정되는, 되다 만 트리 가드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처음 트리 가드를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그리고 누가 아니겠냐마는, 트리 가드와의 첫 만남은 내게 있어 그리 좋지 않은 기억에 해당한다.


그야 높은 곳에서 휘석 돌팔매를 날리며 날먹할 생각으로 선빵을 갈겼는데, 설마 그 새끼가 마법 패링이라는 되도 않는 짓거리를 할 줄은 몰랐으니까.


다행히 저 새끼는 방패를 들고 있지 않으니, 내가 쏜 휘석 돌팔매에 맞아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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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가도 안 일어나길래 뭐지 싶었는데, 상호작용을 해야 보스전이 시작되는 듯했다.


그건 알겠는데, 등짝에 달린 저 검은 촉수는 뭐지?


검을 뽑기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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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뽑자 예상대로 보스전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름이 군다라…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사실 난 다크 소울3를 하기 전에 아머드 코어6를 먼저 했다.


거기선 튜토리얼 끝자락에 존나 큰 헬리콥터가 보스로 나오는데, 썩은물 친구놈은 그걸 ‘플라잉 군다’라고 불렀다.


그땐 그게 그 헬리콥터의 이름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이 새끼에 빗댄 거였다.


각설하고, 보스전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행동이 굼뜨길래 휘석 돌팔매로 선빵을 때렸는데…딜이 생각보다 잘 박힌다.


휘석 돌팔매는 73데미지, 휘석 큰 돌팔매는 159데미지가 박힌다. 6레벨따리 마술사의 딜치고는 제법 세다.


굳이 스샷을 찍지는 않았지만, 몇 대 때려주니 금세 체력 80퍼센트가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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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마술에 그로기 걸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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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니라 2페이즈였다.


비주얼이 심히 흉악하다. 척 보기에도 한 대 맞으면 뒤질 게 뻔해서 일단 거리를 벌렸다.


그런데 이 새끼…아무것도 안 한다. 그냥 느릿느릿 걸어오기만 한다.


뭐 하는 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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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 놈이 아니라, 그냥 뭘 안 하는 놈이었다.


아니 시발 이게 뭐야? 이딴 게 플라잉 군다의 원전이라고?


튜토리얼 보스임을 감안해도 이건 좀…진지하게 고드릭 기사쯤 되는 난이도인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엘든 링으로 단련이 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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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수상하게 넓은 공간이 나왔다.


상식적으로 방금 막 시작한 뉴비에게 2연속 보스전을 치르게 하지는 않을 테니, 아마 이건 대축복 비스무리한 곳이 아닐까 싶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눈앞에 보이는 저 혈흔이 날 심히 불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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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