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계승한 왕은, 최초의 화톳불 앞에 앉아 죽어가는 불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었다. 자꾸만 꺼져가는 불에 억지로 장작을 집어넣고, 풀무질을 해 계속해 불을 유지해온 것은.
니토나 이자리스가 살아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아니, 이자리스는 결국 실패했고 니토는 그리 열정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죽음의 신이라니,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도 죽음을 극복해내진 못했지. 애초에 그들을 물리친 것도 우리였고.
터벅, 터벅.
재로 가득찬 땅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새롭게 불을 계승할 녀석이 도착했다.’
‘저게 이번 대의 장작의 왕이 될 녀석이라고? 너무 허약해보이잖아.’
‘큭큭… 하지만 여기에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격을 증명한 셈이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자격의 증명은 우리 앞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소?’
‘그렇다면… 내가 먼저하지.’
왕은 최초의 화톳불에 꽂혀있는 불쏘시개 나선검을 뽑아 들었다. 이미 수천, 수만번을 휘둘렀던 검은 손안에 가볍게 쥐어졌다.
‘증명해보거라, 너의 의지를. 너의 각오를. 너의 자격을!’
왕의 검은 불꺼진 재, 아니 이제 왕사냥꾼이라고 불리는 ‘재’를 거침없이 몰아붙였다.
하지만 '재'도 여기까지 온 것이 단순히 운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듯 막고, 피하며 왕과 맞서 싸웠다.
'재'는 훌륭했지만 왕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타오르는 불꽃을 감아올린 검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아, 겨우 이정도인가. 타다만 불씨만도 못되는군.’
왕은 실망하였다. 하늘 위 떠올라있는 다크링을 보며 이 세계는 정말로 종말을 원하고 있는가, 스스로 자문하였지만 자답은 불가능했다.
자신이 평생동안 쌓아올린 모든 것이 부정당할까.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아직도 마음 한켠안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화톳불 앞에 앉으려던 왕은 입구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재’였다.
‘이건…?’
‘큭큭... 재미있군... 시험따윈 얼마든지 재도전이 가능하다는 건가.’
‘큭, 한때 선택받은 불사였던 우리가 그런 말을 할 처지인가? 그렇다면 이번엔 내 차례다’
챙! 콰가콰광!
‘재’는 몇번이고 다시 죽어가며 시험을 치루기 위해 돌아왔다. 마술과 주술, 기적, 창, 대검, 곡검까지.
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사용해가며 ‘재’와 싸웠다.
‘큿, 멍청한 녀석. 근접해서 싸울거면 나에게 차례를 양보하란 말야!’
‘크하하핫, 재미있군.’
할 일이라고는 어두워만 가는 세상속에서 꺼져가는 불을 지키고 있는 것밖에 없던 왕에게는 새로운 자극이었다. 마치 죽음을 극복하며 신화속 존재들과 대면해나가는 자신의 옛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이거, 점점 힘에 부치는군.’
오랫동안 자신의 모든 힘을 불꽃을 유지하는데 써오던 왕에게 이런 긴 싸움은 무리가 오는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 ‘재’가 왕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그 순간,
‘모두 비키거라! 짐이 나서겠노라!’
왕의 전신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불꽃, 손에 휘감아 올리는 전격. 왕들은 자신들의 남은 힘을 모아 태양빛의 왕에게 전달했다.
불은 꺼지기 직전에 한번 다시 타오른다는것을 증명하듯 ‘재’가 경험한 그 어떤 불보다 화려한 불빛이었다.
비록 화로를 가득 채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