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소리내선 안돼."
어둠 속에서 한 소녀의 입이 달싹였다.
"흑.. 훌쩍, 큽..."
"착하지, 내동생. 뚝해 뚝."
간신히 소리만은 참아냈지만, 두 눈망울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멈추지 못했다.
"언니... 밖에 있는 사람들 뭐야? 왜 우리 집에 멋대로 들어와? 엄마랑 이모는 또 어디갔고?"
"나중에, 나중에 저 사람들 다 가면 이야기해줄게. 그러니까 지금은 잠깐만 조용히 하자."
소녀는 어린 동생을 달래며, 좁은 나무의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년들 다 어디갔어?
-아무래도 도망친 것 같아요. 집에서 먹을 거랑 웃가지 전부 챙겨서 나갔네요.
-이런 썩을! 야, 너희들! 느그들 자식 다 어디 숨겼어!
그 후 들려오는 소리는 오직 채찍에 살갗이 터져나가는 소리 뿐이었다.
소녀는 손을 어린 동생의 귀에 가져다 놓으며, 부디 저 소리가 아이에게 닿지 않길 빌었다.
아직 비참한 현실을 알기엔 어린 나이였다.
이 작은 아이의 삶이 비극으로 점철되도록 만들기는 싫었다.
"언니..."
소녀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아이의 귀에는 그 소리가 똑똑히 들린 듯 했다.
"엄, 엄마가..."
텁
소녀의 손이 입을 막았다.
그 손은 꽃봉오리보다 작고 가늘었지만, 소녀조차 되지 못한 아이의 입을 막기에는 충분했다.
어린 아이는 울부짖었으나 그 소리는 그저 조그마한 손바닥 안에서만 울려퍼질 수 있었다.
소녀는 기도했다.
제발, 제발.
이 아이가 무사하기를.
바깥의 흉인들에게 들키지 않기를.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던 마을을 밝은 태양이 탐하며 어둠은 서서히 마을 밖으로 밀려났다.
그때까지도 어린 아이의 입을 막고 있던 소녀는 겨우 긴장이 풀린 듯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아이는 울다가 지쳐 잠들어 있었으며, 바깥에서는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이 적막히 퍼지고 있었다.
사람의 흔적따윈 보이지 않았다.
단지 남겨진 것이라곤, 하얀 꽃잎에 묻어있는 검붉은 핏자국 뿐.
아무도 없다.
부모도, 가족도, 흉인도.
그제서야 소녀의 눈에서 작은 방울이 조심스레 내려와 흐르기 시작했다.
억울했다.
자신이 왜 이런 비극을 겪어야 하는가.
왜, 왜, 대체 왜.
어머니, 이모. 자신과 이 아이의 소중한 사람들.
모두 없어졌다.
행복했던 기억, 짜증났던 기억, 함께 웃고, 떠들며 즐거웠던 기억들까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추억 속에서만 반추할 수 있는 것들.
그 모든 감정들의 잔재는 뒤섞이고 뭉쳐지어, 끝내 한 줄기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그렇게 삶이 산산히 부서진 한 소녀의 비통한 울음소리는, 메아리조차 되지 못한 채 마을 안에서 조용히 스러져가기만 하였다.
소녀와 아이는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이 마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저 원망스러운 흉인들이 쫓아오지 못할 때까지.
끝도 없이 걸었다.
배가 고프면 풀을 뜯어 먹었고, 목이 마르면 연못을 찾아 목을 축였다.
구걸따윈 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았으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뿔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 걸음의 끝에 도착한 곳은 어느 한 골짜기였다.
매우 깊고 어두워, 사람이 숨는다면 평생토록 찾을 수 없어 보이는. 그런 곳.
소녀는 조심스레 골짜기로 걸어가려 했으나, 어린 동생의 발은 움직이지 못했다..
아이는 어둡고 소름끼치는 풍경에 그저 겁에 질린 채 떨고있었다.
성인도 무서워 도망칠 만한 장소다. 어린아이가 겁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은신처로써 가치가 있는 곳이다.
소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입꼬리를 겨우 올리며,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뱉어냈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동생."
아이는 그 날 이후로 말을 하지 못했다.
가족을 잃은 충격이 크기 때문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숨어다닌 탓에 지친 것인지.
어쩌면 둘 모두일 수도 있다.
...자신도 지금 동생을 위해 겨우 웃음을 짜내고 있지 않나.
모두 어린 아이가 견디기엔 가혹한 것들이다.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야, 안쪽에는 훨씬 밝은 장소가 있어. 거기까지만 가면 돼."
물론 거짓말이다. 아이 또한 그 사실을 알았다.
단지 안심의 말이 필요할 뿐이었다.
소녀는 자신에게 안겨있는 아이의 떨럼이 잦아든 것을 느낀 후, 아이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차갑고 어두운 골짜기로,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장소로.
한 발, 한 발. 소녀의 연약한 발은 돌에 찔리고 부딫혀 붉은 피를 뱉어냈지만 소녀는 멈추지 않았다.
소녀는 멈출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계속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걷는 일밖에 없었다, 걸을 때만이 슬픔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걸음을 내딛을수록 소녀의 몸에는 상처가 쌓여갔다.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히고 풀독이 올라 다리가 부풀었으나, 소녀는 발걸음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머리를 비우고, 고통을 무시하고, 정해진 방향도 없이 그저 앞만 보며 걸었다. 깊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누구와도 만날 수 없는 곳으로.
하지만 소녀의 지친 몸에게는 학대와도 같은 강행군이었다. 소녀의 시야는 점점 흐려졌고, 발걸음 또한 흔들렸다. 자잘한 상처 또한 빠르게 늘어났다.
온몸에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곳은 없었으며, 한 발짝을 나아가는 것마저도 힘들어졌다.
쉬고 싶었다. 멈추고 싶었다.
소녀는 언제나 멈출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무엇인가 소녀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다는 두려움인지, 아니면 숲의 동물들이 습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인지.
아니면 이대로 걷다가 탈진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자살충동인지.
소녀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의내릴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소녀는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소녀의 눈앞은 점점 흐려졌다. 생각의 흐름이 끊기는 빈도가 늘어났다.
등 뒤에선 아이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피로에 못 이겨 어느샌가 잠들어버린 모양이었다.
동생.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가족. 아직 어린 티가 풀풀 나는 작은 아이다.
소녀는 생각했다. 이 아이가 혼자서 살 수 있을까.
무심코 떠오른 한 문장이었지만 소녀 자신을 놀라도록 하기엔 충분했다. 스스로에게 경악했다.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한 것일까.
당연히 불가능했다. 이 아이는 홀로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자신이 살아있는 한, 당연히 아이는 혼자가 아닐 것이다. 최소한 아이가 다 클 때까지는 함께일 테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죽기라도 한다고 생각한 걸까.
소녀가 걷는 속도가 점차 줄어들더니, 걸음이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발은 이미 피가 흥건해 핏자국이 없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고, 팔은 멍들었으며, 머리는 어지러웠다.
한눈에 봐도 멀쩡하지 않은 신체였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엉망진창이었다.
소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휴식을 취할 장소를 찾았다.
곧 근처의 곧게 선 바위를 발견하였다. 기대어 쉬기 좋은 형태였다.
바위의 앞으로 다가가 아이를 앞으로 안아 들고, 몸을 뉘였다.
쉬어야 한다. 내가 쓰러지면 안 된다. 자신은 아이의 마지막 가족이었다. 아이가 의지할 곳은 자신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이를 지켜야 했다.
소녀는 바위에 기댄 채로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몸을 멈춘 뒤에야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찢어진 살결에서 쓰라림이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소녀는 걱정스러웠다. 자신이 버틸 수 있을까.
상처가 심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옷을 찢어 지혈할 기운조차 없었다.
후회되었다. 너무나도 어리석은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주제에, 스스로를 학대하는 멍청한 짓을 한 것이.
소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뿐이었다. 소녀는 무녀다. 신의 목소리를 듣고, 전하는 자. 신에게 닿을 수 있는 자.
소녀는 상처투성이인 손을 맞잡고,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에게 기도했다.
신이시여.
부디 제가 버텨낼 수 있게 해주세요.
이 아이를 지킬 수 있도록.
그리고, 그리고...
언젠가, 그 역겨운 뿔인간들에게 복수할 수 있도록.
그것이 소녀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바램이자 소원이었다.
소녀는 기도를 끝맺었다. 그리고 동시에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무나, 누구라도 좋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잠에 빠져들려 하기 직전, 소녀의 눈앞에 하나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나도 밝은 빛, 샛노랗게 타오르는 불길.
경건했으며, 동시에 불경하기 그지없는, 순수한 멸망의 불씨.
소녀는 손을 뻗었다. 언제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그 화염을 향해서,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개의치 않았다. 그저 간절했다.
무엇이든 태워버릴 듯한 강한 열기는 어둠밖에 없는 소녀의 눈 앞에서 홀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것은 소녀의 작은 눈동자 속으로 파고들었다. 소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빛은 소녀의 황금빛 눈을 감싸안았다.
빛은 포근했다. 어머니에게 안긴 듯 따스하였다.
눈을 감고 포근함에 몸을 맡겼다. 이유없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신체의 통증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신께서 응답하셨구나. 신께서 우리를 도와주셨구나.
소녀는 자신이 무녀라는 사실에 처음으로 감사했다.
눈을 감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리고 편안히 정신을 내려놓았다.
소녀가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소녀가 느낀 것은 푹신한 이불과 침대, 그리고 소녀의 옆에 누워있는 동생이었다.
아이는 소녀의 팔을 껴안은 채 곤히 자고있었다.
소녀는 천천히 아이의 품에서 팔을 빼내고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책장에 꽃혀있는 수많은 책들, 그리고 매우 커다란 한 노인의 초상화가 눈에 들어왔다.
"일어났니?"
노인이 읽던 책을 덮으며 말을 건넸다.
"아직 다친 게 완전히 낫진 않았을게야, 너무 무리하진 마렴."
노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의 발에 감긴 붕대의 감촉이 느껴졌다.
저 노인이 해준 것이리라.
"숲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길래 데려왔단다. 그대로 두면 위험할 것 같아서 말이지."
소녀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표정은 매우 인자했고, 악의라고는 티끌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선 통성명이라도 하는게 어떻겠니? 이 쉰네의 이름은 미드라란다."
소녀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제 이름은 나나야에요. 반가워요."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두 눈에는 황금빛 광채 대신, 샛노란 안광을 띈 채.
그러니까 지금 미드라가 키잡충이라 이거지요? - dc App
나나야가 미친 불에 감염되서 일부러 꼬신거에요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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